
전쟁이 남긴 상처는 단지 도시의 폐허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산림은 사실상 사라졌다. 전국토의 65% 이상이 산지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산은 벌거벗은 민둥산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헐벗은 산자락은 매년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 식량 부족, 농경지 황폐화를 야기했다. 그야말로 생태적 재앙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림녹화는 단순한 환경보호 차원을 넘어서 생존의 문제였고, 국가 재건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렇게 황폐한 땅에 다시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선 속에서도 정부와 국민은 함께 ‘다시 숲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땀 흘리며 삽을 들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산림 복원이 이뤄졌고, 대한민국은 숲이 살아 숨 쉬는 나라로 다시 태어났다.
1950년대, 한국은 극심한 산림 황폐화에 직면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나무는 폭격과 방화로 사라졌고, 생존을 위한 무분별한 벌목은 남은 산림마저도 갉아먹었다. 석탄이나 연탄이 널리 보급되기 전까지 땔감 확보는 가정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주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베어 불을 지폈고, 목재는 건축과 농기구 제작에 쓰이면서 더욱 귀해졌다.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진행된 산림 파괴가 전쟁으로 절정을 찍은 셈이다.
산림 황폐화는 환경 파괴로 이어졌다. 비가 내리면 나무가 없는 산지에서 흙이 쓸려 내려가 하천을 메웠고, 이는 하류 지역의 홍수와 가뭄을 반복시키는 악순환을 낳았다. 농경지의 생산력은 저하되었고, 식량난은 가중됐다. 단순한 자연훼손을 넘어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던 셈이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1967년, 박정희 정부는 ‘치산치수’를 핵심 국정 과제로 삼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산림녹화 정책을 추진했다. 1973년에는 ‘국토녹화 10개년 계획’이 수립되며 체계적인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이 시기부터 국방부, 교육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합세해 '전 국민 나무심기 운동'이 본격화되었고,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나무를 심으며 ‘내 나무 갖기 운동’에 참여했다. 이렇게 산림녹화는 국민 모두의 국가적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은 단지 나무를 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산림청은 초기부터 ‘심자, 가꾸자, 지키자’라는 명확한 3단계 전략을 세웠고, 이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는 숲이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1단계 '심자'는 1970년대 초부터 본격화됐다. 이 시기에는 전국적인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졌다. 봄이면 학생, 군인, 공무원, 기업인, 심지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묘목을 심었다. 전국에 10억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졌고, 주요 품종은 소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였다. 식수종 선정은 조림효율성과 기후 적응력을 기준으로 했다.
2단계 '가꾸자'는 1980년대 들어 집중적으로 추진됐다. 심은 나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가지치기, 풀베기, 솎아베기 등이 실시됐으며, 이는 조림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과정이었다. 이 시기 산림청은 산림기술자 양성, 산림교육 확대, 지역별 산림관리 체계 구축 등을 통해 숲 관리의 과학화를 도모했다.
3단계 '지키자'는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불법 벌목과 산불 방지, 산림 병해충 관리 등 보호활동이 강화됐다. 특히 산불은 산림 파괴의 가장 큰 원인이었기에, 전국적인 산불감시 체계가 구축됐고, 드론과 위성 기술 등 첨단 장비도 도입됐다. 더불어 시민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산림교육은 산림의 소중함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3단계 전략은 ‘나무를 심고, 제대로 키우고, 끝까지 지키는’ 장기적 관점의 정책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60년대 초 35%에 불과하던 산림률은 현재 63%까지 회복됐고, 산림자원 가치 역시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
세계가 주목한 산림녹화 모델, K-포레스트의 미래
대한민국의 산림녹화는 단순한 국내 성공 사례를 넘어 이제는 전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산림복원 성공국가’로 지정했으며, 세계은행과 UNDP는 한국의 산림정책을 개발도상국의 교육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K-포레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식 산림녹화 전략은 베트남, 몽골, 필리핀 등으로 전파되며 녹색 ODA(공적개발원조)의 중심이 됐다.
이러한 국제적 성과의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집행과 국민 참여가 있었다. 산림청은 2009년 ‘녹색성장 기본법’을 통해 산림을 국가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격상시켰으며, 2010년대에는 ‘국가산림자원조사’와 같은 빅데이터 기반 산림 관리도 도입했다. 또 4차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드론, 인공지능, 위성사진 등을 활용한 스마트 산림관리 시스템이 활성화되고 있다.
하지만 K-포레스트의 미래는 여전히 과제도 많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소나무재선충, 산불, 병해충 피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도시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숲이 다시 위협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탄소중립 산림경영’을 미래 전략으로 제시하고, 나무를 심는 것을 넘어 생태계 복원, 산림 바이오매스, 탄소 흡수원 확대 등을 중심으로 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 중이다.
이제 산림녹화는 단순한 ‘녹색화’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기후대응, 경제, 복지의 핵심 축이 되었다. 과거에는 땔감을 얻기 위한 산이었다면, 이제는 기후위기를 막고 후손에게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생명의 보고가 된 것이다.
탄소중립 시대, 산림녹화의 미래 과제와 우리가 해야 할 일
산림녹화는 단지 과거의 성공담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탄소중립 2050을 선언하며, 전 산업 분야에서 탄소 감축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심에 다시 ‘숲’이 서 있다. 산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하며, 기후조절과 생물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처럼 국토의 60% 이상이 산지인 나라는 산림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이제 숲마저 위협하고 있다. 잦은 산불, 병해충, 극단적 기후는 산림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복원된 숲도 다시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단순한 ‘숲 조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적극적인 산림경영, 도시숲 확대, 탄소흡수량 측정 기반의 산림정책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도 여전히 중요하다. 산림은 정부 혼자 가꿀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꾸는 일, 숲을 소중히 여기는 시민의식, 산불을 예방하는 책임감이 모일 때 ‘숲의 기적’은 계속된다. 어쩌면 산림녹화의 가장 큰 자산은 기술도, 예산도 아닌 ‘함께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산림녹화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과거는 산을 복원하는 시기였다면, 미래는 숲을 지키고 확장하는 시기다.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신화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