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의외로 똥파리는 많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똥파리가 되고 사랑받지 못해 똥파리가 된다. 그뿐이랴. 불평등한 인생 노력해 보지 않고 똥파리가 되는 사람도 있고 똥파리 옆에 있다가 똥파리가 되는 사람도 있다. 내적 불만이 너무 팽배해서 똥파리가 되고 그도 저도 아닌 인생 그냥 똥파리로 살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똥파리가 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똥파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누구 탓도 아니다. 어느 시대든 어느 사회든 똥파리는 존재하니까.
영화 제목 근사하게 잘 지었다. 그냥 파리도 아니고 똥파리는 얼마나 혐오스럽고 더럽고 소름 돋는가. 그냥 파리라면 에프킬라 한 병 사다가 촥아악 뿌리면 다 죽어 버릴 텐데 똥파리는 쉽게 박멸되지 않는다. 크기부터가 파리와 급이 달라 가만히 보면 위압감마저 든다. 예부터 멀리서도 먹을 것이 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달려오는 사람을 ‘오뉴월 똥파리 끓듯’이라고 놀렸다. 또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끼어들어 아는 체하는 사람을 ‘안다니 똥파리’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똥파리는 사회악으로 치부하며 사람 취급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 정서다.
그런 ‘똥파리’가 사람들을 울린다. 깡패영화 3종 세트인 가난과 폭력과 사랑으로 불편하게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똥파리들은 굳세게 자신의 고통을 타인과 나누지 않지만, 그 고통으로 파생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의 연대를 불러오고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차라리 고통을 나누는 게 인간적이지만, 깡패에게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어느 동네든 동네마다 들끓는 똥파리들에게 애초에 애증 따위는 없지만, 알고 보면 ‘애’보다 ‘증’이 더 인간적인 경우가 많다. 인간은 사랑할 때보다 증오할 때 이상하게도 더 끌린다. 아마 나쁜 남자에게 느끼는 모성 본능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독립영화 ‘똥파리’를 보고 나면 똥파리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상훈은 돈을 받고 폭력을 행사하며 먹고 사는 용역 깡패다. 그는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트라우마는 잔인한 폭력으로 되돌아오고 모든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폭력의 대물림으로 살아간다. 상훈은 우연히 여고생 연희를 만나게 되고 연희의 굴하지 않고 대드는 강한 성격에 이끌려 친하게 된다. 연희도 베트남 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PTSD를 겪고 있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폭력이 대물림 된 남동생에게 시달리며 참담하고 숨 막히는 삶을 살아간다. 상훈과 연희는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며 점점 가까워지고 상훈은 연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상훈은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변화가 시작되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상훈은 분노가 자라날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가 욕하고 실컷 때리지만 그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는다. 아버지를 죽을 만큼 때리는 것을 본 어린 조카에게 죽고 싶을 만큼 너무 미안해하는 여린 마음도 가지고 있는 상훈이다. 사실 상훈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배다른 누나와 누나의 아들만큼은 애틋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자살을 시도하는데 상훈은 죄책감과 슬픔이 폭발하고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감정이 터져 나오게 된다. 만식에게 용역 깡패 일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자 만식은 미워할 아버지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위로하면서 자신도 이제 이 일을 그만하고 식당이나 하나 차려야겠다고 말한다.
상훈은 마지막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치려고 돈을 갚지 않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 마구 부수며 폭력을 행사하는데 그 집 어린 아들이 울부짖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마음이 약해진 상훈은 우물쭈물하는데 그 모습을 본 연희 동생 영재가 이성을 잃고 망치로 상훈의 머리통을 갈기게 된다. 결국 연희 동생 영재에게 죽음을 맞게 되는 상훈, 상훈의 죽음은 연희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게 된다. 연희는 상훈의 죽음을 계기로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가난한 놈이 가난한 놈을 등쳐먹고 사는 세상, 몸뚱이 하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을 양익준 감독은 현미경을 대고 세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양익준이 감독도 하고 주인공 상훈도 연기했는데 생긴 것도 딱 깡패처럼 생겼다. 연기인지 실생활인지 모를 정도이다. 똥파리가 옮기는 병균은 결국 똥파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옮긴다.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누가 구원해 줄 것인가. 세상 엿같아도 마지막 인간애는 가족에게서 완성된다. 핏줄은 더럽고 아프고 슬프고 아련하다. 주인공 상훈의 가슴에는 곧 터질 것 같은 폭탄이 있지만 들어내려고 해도 드러낼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예산의 독립영화 ‘똥파리’는 잘 만든 영화로 호평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청룡영화상 남우신인상, 여우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더불어서 해외에서 상도 많이 받았다는데 수상하러 나갈 돈이 없어서 대부분 수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똥파리’로 돈이 없이 마음껏 영화를 만들지 못했던 양익준 감독의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상훈은 무능하고 찌질한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소리친다.
“이 나라 애비들은 집에만 오면, 지가 김일성인 줄 알아 씨발”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