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지 칼럼] 1%를 위한 99%의 가축화

조윤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루한 매일을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평범한 직장 생활만큼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내가 얼마 전 직장인 체험을 할 기회를 얻었다. 사무보조직 일자리를 구하게 된 것이다.

 

하는 일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세상에 존재하는 오만가지 자격증들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도록 사이트를 운영 중인 모 스타트업인데, 조사해 놓은 자격증 자료를 사이트에 업로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손가락 아프게 자격증 정보를 정리해 업로드하던 도중 축산물품질평가사 시험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라는 곳인데, 단어의 조합들에 구역질이 일었다. 살아있는 동물을 축산물이라는 단어 하나로 일축시키고 품질이니 뭐니를 따져가면서 평가하겠다는 저 단어들이 '우리는 생명을 살아있는 것 보듯 하지 않겠다. 식육을 위한 동물들은 그저 공산품에 불과하다'는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연이 낳은 소산인 동물들을, 우리와 같은 생명체인 동물들을 도살하고 도려내어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장식해 놓고 마치 공장에서 나온 생산품을 대하듯 그 품질을 따지고 등급을 매기겠다는 발상 자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생명에게 품질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다는 게 어이 없고 화가 나서 작업하다 눈물이 다 났다.

 

반대로 놓고 생각해보자. 인간을 생산 공장 위 컨베이어 벨트에 진열해 놓고 품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며 평가하는 장면을.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매체 혹은 작품이 있다면 우리는 이를 디스토피아 장르로 분류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을 대상으로는 이미 이와 같은 행위를 벌이고 있다. 내가 당하면 디스토피아지만 다른 동물이 당하면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된 감수성일까. 생명을 공산품으로 대하는 이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자각이 없다면, 이는 필히 인류 스스로에게도 파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도 이 생명의 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들을 데리고 저지르는 행위는 그 세계관을 고쳐먹지 않으면 인간 자신들에게도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살아있는 것을 죽은 물질 취급하고, 자본 생산을 위해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해지는 일은 인간들의 자학이다.

 

동물이 언제부터 기계처럼, 그저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것처럼 취급당하기 시작했을까? 이 일련의 행위들은 모두 자본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고기라는 상품을 팔아 치우기 위해서, 돈을 만들기 위해서 생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 다른 종족의 삶을 희생시킨다. 인간은 동물을 좁디 좁은 축사에 가두고 단지 돈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살다 죽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삶이 문득 익숙하게 느껴졌다. 인간이 동물을 저렇게 대하니, 인간은 곧 인간 스스로를 자본 생산을 위한 도구로 대하기 시작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단지 자본 생산이라는 목적 하에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평생 하다 죽는다. 언젠가 네모 박스처럼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문득 돼지 우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인간을 전부 똑같이 생긴 네모 박스 안에 가둬두고 평생을 그곳에서 살게 만든 건 다름아닌 인간 자신이다. 인간은 그곳에서 잠만 자고 아침이 되면 네모 박스 같은 사무실에 끌려가 하루 종일 발이 묶여 돈을 만들기 위한 일을 한다. 그러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누이고 쓰러져 잠을 잔다. 친구에게 직장 생활 후기를 들려주었더니 이런 말을 하더랬다.

 

"이건 뭐 잠만 다른 곳에서 자다 아침 되면 울타리 쳐진 자기 축사로 끌려가는 가축이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는 표현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자본에 삶을 희생당하고 처참하게 생을 마치는 그 애환이, 현대 도시적 삶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대하고 얻은 결과다. 인간은 동물을 축사에 밀어넣어 그들을 저답게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 아닌 자본 생산을 위한 도구로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자본 생산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동물 우리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동물 우리같은 일터에 나가 무의미한 노동에 삶을 바치게 되었다. 인간이 동물에게 한 일은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돌아온다.

 

닮은 것은 다만 삶의 방식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인간을 대상으로 품질 평가 따위를 하고 있다. 스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그렇다. 사람이 생명 그 자체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본을 얼마나 잘 생산해 낼 수 있는 도구인지로 측정당한다. 인간의 쓸모는 돈벌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돈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 생산성에 인간의 모든 가치와 쓸모가 있는 것처럼 스펙을 따지고 등급을 매긴다.

 

이 정도 대학 나와서 이런저런 자격증이 있고, 이만한 회사에 다니며 이 정도 연봉을 받는데 어떤가요, 하며 스스로를 매대 위의 상품 대하듯 품질을 평가한다. 현대 사회 자체가 인간품질평가원인 셈이다. 현대 도시는 그야말로 잘못 만들어진 인간 동물원에 불과하다. 현대 도시에는 인간이 어떤 종족인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현대인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은 잘못된 환경에 스스로를 가둔 데서 나온 정형행동이라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다운 삶을 전부 잃었으니 범죄와 우울, 피로, 정신질환이 만연해질 수 밖에 없다. 동물들이 맞지 않는 좁은 환경에서 정형행동을 하듯, 인간도 그렇게 소비와 쾌락 중독, 범죄, 우울, 번아웃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돈을 위해서, 상위 1% 자본가를 위해서 오늘날 지구의 99%를 차지하는 인간과 소, 닭, 돼지 등은 가축화되었다. 가축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생명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본이 지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작금의 행태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재난이 닥쳤을 때 카드를 씹어먹고 연명할 순 없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이 만든 규칙일 뿐, 우리가 기본적으로 먹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식물공장이나 스마트팜 같은 허황된 소리도 같은 세계관에서 나온다. 식물도 당연히 생명이기 때문에 햇빛을 받고 토양의 미생물들이 작용하여 만들어주는 양분을 먹고 자라야 한다. 그런 식물을 LED 조명 아래에서 키우겠다니. 인간도 LED등 밑에만 있으면 비타민D 합성이 안 되는데 웃기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가 생명이라는 자각조차 잃어버렸다. 인간의 먹거리는 공장이 아니라 논, 땅, 밭에서 나온다. 기업이나 연구실, 슈퍼마켓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 주는 것이 인간의 참음식이다.

 

우리의 위기는 배양육을 만들거나 스마트팜을 만들거나 GMO 종자를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양육, 스마트팜, GMO 모두가 지금의 위기까지 인간을 몰고 온 바로 그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 발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과학으로 분석하여 분해할 수 있고, 생명을 자본의 입맛대로 조작하겠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본과 기술을 쫓지 않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와 똑같은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돈에 끌려다니는 현대적 삶을 멈추고 진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간은 실존적,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조윤지]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대상

이메일: younji0621@naver.com 

 

작성 2025.05.14 10:18 수정 2025.05.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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