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윤성희의 '어느 밤'에서 만나는 삶의 고통과 희망

민병식

윤성희(1973~ ) 작가는 경기도 수원 출신으로 1999년 동아일보에 레고로 만든 집으로 당선되어 등단했고 이후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 다수를 수상한 작가다.

 

이 작품은 2019년 김승옥 문학상 수상작으로 킥보드를 훔친 할머니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는 은퇴한 남편과 단둘이 산다. 남편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후 화가 많아졌다. 틈만 나면 소리를 지르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이유 없이 혐오하고 욕설을 한다. '나'는 남편과 아침밥을 함께 먹는 것을 괴로워할 정도로 단둘이 있는 것이 싫고 어떨 때는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결국 이러한 상황들에게서 도피를 하기 위해 새로운 취미를 만들게 되는 데 그 취미란 것이 특이하게도 며칠 전 훔친 킥보드를 타고 온 동네를 활보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리막길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가다가 넘어졌는데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서 꼼짝없이 바닥에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때 '나'는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나'는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아무렇게나 지어온 '덕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말이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해진 이후로는 술만 달고 살았고 술만 먹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늘 아버지를 피해 숨어 다녀야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아버지가 먹는 술에 약을 타는 것을 본 뒤로, 나는 엄마의 뜻을 헤아려 아버지가 우물에 빠져 죽는 것에 적극적인 협조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나'에게 못된 년이라고 말하고, 오히려 나를 비난한다. 그러던 엄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나'를 버리고 도망간다. 고아와 다름없이 살던 '나'는 결혼 후 내 딸만은 성공시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산다. 딸은 전교일등을 할 정도로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이로 성장하지만 미국 유학을 가서 그곳에 정착한 뒤 연락도 뜸하고 기념일일 때는 선물만 보내줄 뿐이다. 지금은 엄마와 얼음땡 놀이를 하고, 넓은 집으로 와서 좋아했던 어린 딸의 모습만 더듬어 볼 뿐이다. ​

 

회상이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하고 한참 후 청년이 다가와 나에게 점퍼를 덮어주며 청년과 이야기를 나눈다. 독서실에서 밤을 새우고 엄마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고 가끔 동생이 없으면 방은 자신이 쓸 거라는 생각을 하는, 남들에게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청년이었다. ​그 청년에게 나는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 것이고 지금은 술래를 피해 얼음이 된 것이며 곧 누군가 '땡'하고 외쳐줄 것이라고 얼음땡 놀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해준 후 킥보드를 원래 있던 제자리에 가져다 놔 달라고 말한다. 몇 분 후에 구급대원이 도착하고 '나'는 청년에게 자네도 ‘땡’이니 어서 집에 가라고 말한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외로움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나’를 이해해 줄줄 알았던 주인공의 엄마, 한때 좋았던 주인공의 부부관계,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주인공의 딸, 그리고 주인공, 세상의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이 있고 서로 언젠가는 또 헤어져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주인공은 외로움, 공허함, 허무함을 느낀다. 그 감정들로 인한 괴로움이 아무 걱정 없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킥보드를 타려는 행동으로 형상화되었고 킥보드를 훔쳐서 탄 행위는 가장 행복했던 추억과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나'의 욕구를 상징하는 거라고 보인다. 

 

얼음과 땡, 지금이 힘들고 얼어있는 고난의 겨울일지라도 언젠가 얼음이 녹는 봄이 오지 않을까. 작가는 얼음땡 놀이를 표현함을 통해 힘들기만 한 지금의 삶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닌 얼음땡 놀이처럼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녹을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05.14 10:34 수정 2025.05.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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