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문학 동호인 모임 자리에서 있었던 사연 한 토막이다.
현직 의사이면서 작가인 P 선생은 진료 현장에서 일어났던 상황에 대해 참을 수 없다는 듯 분개에 찬 마음을 쏟아놓았다. 그의 표정은 평상심을 잃고 있었고, 열에 들뜬 목소리에는 가느다란 굴곡이 일었다. 그가 좌중에서 들려준 사연인즉슨 대략 이러이러하다.
아이를 업은 한 마흔 안팎의 아주머니 한 분이 어느 날 진료를 받으러 와서는, 원장인 P 선생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아저씨, 오늘 영업합니까?”
너무 이른 시각인 탓이었으리라. 대기실이 자기 말고는 환자가 한 명도 없이 썰렁했고, 그래서 혹여 휴진이 아닌가 하고 착각이 되었던 모양이다. 느닷없이 내뱉는 여인의 그 한마디에 P 선생은 그만 체면이 구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여기가 어디 장삿집이요, ‘영업’이라고 하게. 그리고 또 의사를 보고 아저씨가 뭐요, 아저씨가. 원, 무식도 유만부동이지…….”
이런 볼멘소리를 주워섬기며 마구 면박을 주어 돌려보내 버렸다는 것이다.
잠자코 전후사를 듣고 있으려니, 나는 심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불현듯 그끄러께 가을이었던가, 어느 TV 카메라 앵글에 잡혔던 언짢은 광경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에 관한 법이 막 시행될 시점을 목전에 두고 있었을 무렵, 의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근 한 달 가까이나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단 연좌농성을 벌였던 일 말이다.
거기서 그들이 보여준 추태는 우리를 적이 실망의 늪으로 빠뜨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머리에다 ‘~쟁취’니 ‘~사수’니 하는 글귀가 적힌 붉은 띠를 두르고 목에 잔뜩 핏대를 세운 그 볼썽사나운 모습에서,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품위는 눈 닦고 살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가운데 더러는 삭발까지 한 거북살스러운 인상이 아니던가. 어쩌면 생존권을 수호하자고 목을 내거는 육체노동자들의 투쟁적인 항거와 조금도 진배없어 보였다. 그들은 애써 변해하려 들지도 모른다, 국민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신들의 충정衷情에서 나온 불가피한 항변이었다고.
따지고 보면 그러한 측면도 전연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여태껏 우리의 의약품 오남용이 얼마나 극에 달해 왔던가. 가벼운 감기몸살 같은 경우 약을 먹으면 칠 일, 먹지 않으면 일주일을 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하여간 그런 질병 같잖은 질병에도 무분별하게 항생제를 투여하는 행위가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할 정도로 심히 약물에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부끄러운 현주소이다. 이러다 보니 병원균의 내성률耐性率이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시한폭탄 같은 잠재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러한 폐해를 마침내 의료계가 경고하고 나섰다고 보겠다.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이 문제는 그냥 대충 얼버무려 버리고 넘어가도 좋을 그런 가벼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의약품에 관한 우리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게 될 것은 시쳇말로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사정이 이러함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의료권 밖에 있는 대다수 사람은 의사들의 그 같은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절박한 이유에서라기보다는 필시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님비의식의 표출에 다름 아니며, 좀 더 가혹하게 얘기하자면 시중의 장사치보다도 한술 더 떠 물질에의 집착을 보인 치졸한 행위였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의사라고 집단농성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느냐고 대든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나 역시 그래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그럴싸한 변해辨解의 말을 끌어다 붙인다 하더라도 그리 후한 대접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직분이며 품격에 어울리는 행동이 있고, 그렇지 못한 행동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닌가.
이런 위인爲人들을 두고 ‘선생님’이란 호칭이 나온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노릇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던 새내기 의사 시절의 초발심初發心은 어디다 죄 팽개쳐 버렸는가. 그래 놓고도 ‘선생님, 오늘 진료합니까?’ 하는 소리는 또 그리도 듣고 싶은 모양이다.
P 선생이 꼭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묵묵히 인술仁術을 베푸는 참 의료인까지 도매금으로 떠넘겨지는 것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또한 마땅히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됨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요사이 일부 의사들의 행태가 직분을 망각한 꼴불견으로 여겨졌다는 이야기일 따름이다.
권위를 세워 주지 않는다고 남에게 원망의 화살을 겨눌 일이 아니다. 환자들로부터 ‘선생님’이니 ‘진료’니 하는 등속의 품위 있는 언사言辭를 듣지 못함도 다 자업자득으로 돌아온 부메랑인 셈이다. 사실 그들의 저간의 행위를 놓고 따지면 ‘아저씨’나 ‘영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장사해요’ 소리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오히려 다행일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어디 비단 의사에 한하겠는가, 우리들 누구에게나 결국 마찬가지인 것을……. 존경은 애써 받고 싶다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권위는 억지로 강요한다고 저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서리 같은 몸가짐이며 올곧은 마음 자세며 비상한 도덕적 용기, 거기에다 겸손한 태도 같은 것들이 어우러질 때 그때서야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저 형식적이 아닌,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올 수 있는 따뜻한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선생님, 오늘 진료합니까?”
이 품위 있는 한마디가.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