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박두진의 역사의식 앞에서 1

신기용

순수시를 지향한 청록파 시인 박두진도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표출한 시를 발표했다. 1960년 4.19 혁명 때 희생당한 학생의 편에 서서 객관적 시선으로 절규했다. 「우리들의 기빨을 내린 것이 아니다」와 「당신들은 우리들과 한 핏줄이었다」라는 시가 대표적이다. 「우리들의 기빨을 내린 것이 아니다」는 한국시인협회가 엮은 『뿌린 피는 영원히』(춘조사, 1960)에 발표한 뒤, 세 번째 시집 『거미와 성좌』(대한기독교서회, 1962)에 수록하였다. 널리 알려진 시이다.

 

반면에 「당신들은 우리들과 한 핏줄이었다」는 김종윤과 송재주가 공동으로 엮은 『불멸의 기수』(성문각, 1960)에 발표했다. 그해 월간 『여원』 6월호에도 재발표했다. 박두진은 살아생전 이 시를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박두진 시 전집』(홍성사, 2018)에도 실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4월 민주혁명 순국학생기념시집’이라는 부제를 단 『불멸의 기수』에서 긴 잠을 자던 「당신들은 우리들과 한 핏줄이었다」라는 시를 깨워 세상 밖으로 소개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2024년 12.3 불법 비상계엄 선포(내란) 상황과 겹쳐 읽힌다.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그날 당신들은 우리를 총으로 쏘지 않았다.

그날 당신들은 우리를 탱크의 트랙으로 깔아 밀지 않았다.

그날 당신들은 우리들 충천(沖天)하는 의(義)의 불길

불을 뿜는 피의 절규를 억누르지 않았다.

 

금시 어느 강원도 깊은 두매산골 쯤에서

범이라도 사로잡다 서울로 내려왔을

얼굴은 태양볕에 거슬려 구릿빛

복장은 땀 먼지에 가죽처럼 찌들은

순박하고 늠름한 대한민국 용사여!

묵묵하고 맹용(猛勇)한 민주무장 국군이여!

 

그날 우리들의 대열이

자유, 민주, 정의, 인도, 젊은 애국 불의 노호(怒號)가

노도(怒濤)처럼 밀칠 때

그 불의한 총탄 앞에 귀축(鬼畜)의 맹사(猛射) 앞에

어린이, 중고등학생, 부녀자, 맨주먹의 시민들이

차례 차례 피를 흘려 죽어 넘어져 쓰러질 때.

 

국군이여! 의(義)의 용사여! 중무장한 군대여!

당신들 만은,

이 붉은 피의 생명들이,

한 알 당신들의 총탄보다

얼마나 더 귀한가를 보여 주었다.

얼마나 더 값진가를 보여 주었다.

 

하늘로 입을 연 그 탱크의 포구는

우리들의 피의 외침, 충천하는 불의 노호를,

정의, 애국, 인도, 자유 피로 쌓는 민주혁명의 불의 외침을,

우리들을 대신하여 뿜어 줄 것 같았고

우리들과 같은 열(熱)로

소리 없이 분노(忿怒)하여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째서 안 그러냐!

당신들과 우리들은 한 피인 것을,

당신들과 우리들은 한마음인 것을,

한 겨레 한 핏줄 한 몸인 것을,

한 정의, 한 인도, 한 나라를 사랑하는 한 국군이여. 

 

용사여! 길이 두고 찬란할 민주대한 국군이여!

당신들은 참으로 영용(英勇)하였다.

적에게는 노(怒)한 사자, 동포에겐 순한 소,

불길 같은 용맹을 나랄 위해 간직하고

노도 같은 분노를 의(義)를 위해 간직한,

 

그 거지(擧止), 태산처럼 진중하고 불길처럼 맹렬한

의지는 동철(銅鐵), 군율(軍律)은 지엄(至嚴).

이성은 얼음 같고 정(情)에 덥기 봄볕 같은

아, 당신들은 참으로 영용(英勇)하였다.

당신들은 우리들과 한마음이었다.

새 나라의 간성이여! 민주혁명 국군이여!

 

- 박두진, 「당신들은 우리들과 한 핏줄이었다」 전문

 

인용 시는 4.19 혁명 그해 ‘4월 민주혁명 순국학생기념시집’으로 엮은 『불멸의 기수』에 유명 시인과 학생 대표들의 시를 수록하였다. 순국한 학생들의 의기와 넋을 기리는 시편이 대부분이다. 이는 ‘추모시’이면서 ‘참여시’이기도 하다. 

 

인용 시에서 박두진은 국군과 국민을 향해 직접 정서의 언어로 목소리를 낸다. 참여시는 간접 정서의 언어보다 직접 정서의 언어가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참여시가 때로는 간접 정서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직접 정서의 언어로 표현한다. 유명 참여시 가운데 직정(直情)의 언어로 표현한 사례가 많다. 인용 시를 현시점에서 읽어 보면, 2024년 12.3 계엄 사태 상황과 겹쳐 읽힌다. 이런 점에서 유기체와 같은 시의 생명력을 체감한다. 

 

인용 시를 통해 당시 경찰의 총부리와 억압 앞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아수라판일 때도 국군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했음을 읽을 수 있다. 박두진 시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군의 사명을 확고하게 수행한 국군의 참모습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이번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 상황에서 출동한 국군의 절제된 모습과 겹쳐 읽히기도 한다. 그 반대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한 비뚤어진 국군통수권자와 지휘관의 모습도 겹쳐 읽힌다. 이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술할까? 역사의 평가는 뻔하다. 헌법 기관을 습격하고,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댄 행위만으로도 내란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 기술의 원칙이자 상식이다.

 

시인이여, 순수시를 지향했던 박두진 시인도 역사 앞에서는 냉철하게 시를 썼다. 그게 시인의 책무임을 망각하지 말자.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으로 똘똘 무장한 진짜 시인이라면, 비뚤어진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으로 지옥의 문을 열어젖히려고 한 자들을 향해 단죄와 함께 미래지향적 목소리를 토해 내야 한다. 진정한 시인 정신과 시 정신으로 재무장할 시점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6.04 10:28 수정 2025.06.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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