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아, '초모랑마' 대지의 어머니여!

2부 옥빛으로 빛나는 성스러운 얌드록쵸를 걷다

 

하늘과 산천이 뚜렷이 구별되는 라싸의 아침이 눈부셔라. 오늘은 사흘간 시간을 보낸 라싸를 떠나 초모랑마로 향하는 날이다. 찬란한 햇빛과 함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라싸강을 따라 이어지는 G318 도로를 달린다. 이번 여정은 시작부터 그리 수월하지 않다. 고산증에 시달리며 식욕 없는 식탁을 마주하는 것도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의 지붕 티베트고원, 아무리 높은 고원이라도 하늘 아래 뫼이거늘. 익히 들어 온 고행길, 우리는 흐르는 물처럼 길을 간다. 무겁고 심각한 걱정일랑 내려놓자. 설마 죽기야 하겠어. 

 

라싸 시내를 흐르는 라싸하(拉薩河)

 

시내를 벗어나자 보이는 것은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마이산을 옮겨 놓은 듯 풀 한 포기 없는 바위산들뿐이다. 그리고 거칠고 높은 산 능선과 정상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스투파(stupa, 塔)들이 흰점처럼 군데군데 박혀있다. 거칠게 부는 바람은 스투파에 매달린 타르초를 흔든다. 끝이 갈갈이 찢어져 펄럭이는 타르초의 떨리는 여운을 느끼면서 이런 험지에 타르초를 걸었을 사람들의 정성을 떠올려본다.

 

G318 도로에서 캄팔라 고개로 갈라지는 길에서 넓은 강을 만난다. 야룽장푸강(雅鲁藏布江)은 티베트에서 가장 길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4,000km 이상)을 흐르는 강 중의 하나로 티베트인들이 ″어머니의 강″이라고 부른다. 서쪽의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 호수로부터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린즈(林芝) 지역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인도 갠지스강과 합류하게 되는데, 총 2,900km에 달하는 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을 흐르는 야룽장푸강

 

야롱장푸강대교를 지나자 마침 수장터에서 장례 의식이 진행 중인 모습이 보인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진 후, 사람이 죽으면 시신 처리 방법에 따라서 화장, 천장, 수장, 토장 그리고 탑장의 여러 가지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도 이런 모든 형태의 장례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방법들은 죽은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등으로 결정되어 지는데 이곳 수장터는 요절한 아이들, 과부, 거지 등 신분이 매우 낮은 사람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시신을 물고기에게 먹이로 주므로 자연으로 돌아가 많은 생물에 이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고, 이렇게 하므로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태어날 수 있다는 불교의 윤회설에 따른 것인데, 그래서 티베트인들은 강에서 나는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얌드록쵸 호수로 넘어가는 캄팔라 고개는 강원도 대관령 고갯길을 연상시키는 구절양장이다. 전망대가 있는 정상까지 약 1시간 정도 올라가는데, 구불구불 휘어지는 오르막길을 버스는 힘들이지 않고 잘도 올라선다. 차창 밖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는데 저 끝 제일 높은 곳에 보이는 곳이  캄바 마을이란다. 이런 오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차창 너머로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절양장 캄팔라 고개에서 방목하는 야크 떼 

 

굽이굽이 고개를 돌아 전망대(4,677m)에 올라서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날씨는 거짓말처럼 맑아져 티베트인들이 그토록 신령스럽게 여기는 얌드록쵸의 푸른 호수와 산그리메로 이어진 설산들의 파노라마. 구름을 머리에 인 설산 아래에 푸른 바다 호수가 펼쳐지고 그 끝자락에 드넓은 초원이 자리하고 있다. 해발 4,488m에서 둘레 250km에 달하는 전갈 모양의 호수가 옥빛으로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작다는 것을 느낀다.

 

하늘과 맞붙어 있는 얌드록쵸호수 전망대(4,677m)

 

티베트의 남쵸, 마나사로바와 더불어 현지인들이 3대 성호(星湖)로 여기는 얌드록쵸는 하늘색보다 더 짙고 푸르다. 해발 약 4,441m에 있는 얌드록쵸 호수는 하늘과 가까워 ′하늘 호수′라고도 불리는데, 동서의 길이가 약 130, 70km, 평균 수심은 약 30m에 달한다고 한다. 티베트어로 '푸른 보석', ′분노한 신들의 휴식처′라는 의미를 지닌 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신앙심이 깊은 티베트 사람들은 매년 얌드록쵸를 한 바퀴 도는 순례를 한다. 이 순례는 말로 한 바퀴 도는 데도 약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이 순례 행위는 그들이 라싸로 성지 순례를 가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얌드록쵸는 라마의 환생 영아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신성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의 고위 승려들과 세속 사람들이 환생자를 찾기 위한 의식을 이곳에서 거행한다. 먼저 대승정을 초청하여 점을 치고 무당을 불러 환생자가 있는 대략적인 방향을 가리킨다. 그런 다음 얌드록쵸에 가서 경을 외우고 기도하며, 호수에 카타, 보병, 약재 등을 던지는데, 마지막으로 의식을 주재하는 사람이 호수에서 나타나는 형상을 보고 환생자가 있는 구체적인 위치를 지시한다고 한다. 만약 세 가지 의식에서 지시된 위치가 일치하면, 사람을 보내 그 위치를 따라 환생자를 찾는데 이러한 신성한 의식은 얌드록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라마의 환생자를 찾는 의식이 거행되는 얌드록쵸호수

 

전망대에서 고개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한다. 타르쵸가 펄럭이는 스투파가 있는 5,200m까지 고도를 높여 힘들게 산오름을 한다. 조금만 급하게 걸어도 금방 헉헉거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숨이 차도 희열감이 넘친다. 세찬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타르쵸 옆에 하닥을 걸고 우뚝 선 스투파 앞에서 신이 아닌 자연에게 경배드린다. 

 

 호수의 세찬 바람에 펄럭이는 타르쵸 

 

스투파에서 내려와 호수를 둘러싼 마을 뒤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좀 더 높은 곳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며 아름다운 모습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걷는다. 마치 강처럼 구불구불하게 펼쳐지는 신비로운 호수의 모습과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물빛이 트레킹 내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야크들과 함께 걸은 초원의 호숫길

 

말 그대로 푸른 바다 호수를 찾아가는 길옆은 죄다 초원이다. 푸른 하늘을 보려고 고개를 드니 언덕 위에서 야크 한 마리가 내려다보고 있다. 야크 떼를 보려고 산자락을 급하게 돌아 나오니 푸른 초원에 야크 떼가 점점이 박혀있고,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수십 마리의 야크들이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롭고 한가한 풍경이다. 7, 8월이 되면 이곳 초원을 뒤덮은 노란 유채꽃이 푸른 호수와 어울려 더 없는 장관을 연출한다는 현지 가이드 말을 듣고 잠시 제주도 산방산 자락과 용머리해안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을 떠 올려본다. 

 

언덕에서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야크 

 

초원길에서 야크 떼를 모는 나이가 지긋한 티베트 장족 목동을 만난다. 중국어로 한국인 여행자라고 소개하면서 ″니하오″라고 인사했더니 옅은 미소를 띠며 티베트어로 ″타시델렉(안녕하세요)″이라며 답례한다. 아차! 크게 실수한 것을 깨닫고 다시 티베트어로 ″투제체(감사합니다)″라고 했더니 목동의 표정이 아주 밝아진다. 평생을 초원에서 설렁설렁 막대기를 휘두르며 야크 떼를 몰고 다니며 걷는 게 그들의 일이라니...청정한 고원, 밤에는 또 얼마나 많은 별들이 쏟아지겠는가? 그들은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기만 할까?

 

발 아래로 펼쳐지는 잔잔한 호수 위에 배 한 척이 유유히 물살을 가로지른다. 호수 가운데 있는 섬을 운항하는 선박이란다. 육로로 섬을 들어가려면 차로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하니 이곳 주민들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배가 지나가자 호수에서 흰 물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호수 근처에 살던 어여쁜 처녀가 물에 빠져 죽은 후 처녀의 영혼이 흰 물새로 변했다는 전설 때문인지 방금 본 얌드록쵸 호수의 흰 물새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건너편 섬을 한가로이 운항하는 여객선

 

산기슭을 돌아서면 절경이고 가까이 가면 감탄이어라. 야크 떼 한가롭게 쉬어가니, 멀리 보이는 구름 아래 설산들도 오수에 젖은 듯 말이 없다. 출발할 때 멀리 보이던 설산들이 더욱 가깝게 보인다. 이 산들은 눈 덮인 겨울 산이 아니고 해발 6,000m가 넘는 만년설산이다. 거친 호흡 가다듬다 보니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양, 쌉쌀한 내님 생각마저도 접어두게 되더라. 해발 7,206m 노이징칸산 너머 그 어디에서 초모랑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설산 저 하늘 아래 무언가 있고 또 누군가 기다리겠지. 

 

해발 7,206m의 만년설산 노이징칸산 

 

얌드록쵸호수를 벗어나 307번 도로를 따라 10여 분을 가니 도로 옆에 거대한 빙하 지대가 나타난다. 카뤄라(卡惹拉) 빙하는 랑카쯔와 장체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도로에 가장 가까운 있는 빙하여서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해발 5,500m에서 7,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빙하에 덮여 있는 이곳은 햇빛의 각도 때문에 빙하의 색깔이 수시로 변하고, 설경 속에서 나부끼는 다채로운 타르쵸의 깃발들이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해발 5,400m에 있는 전망대까지 가려면 고산증 예방을 위하여 산소캔을 반드시 준비해야 된단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전망대까지 올라가지 않고 해발 4,900m인 도로 주변에서 빙하를 감상하고 있다.

 

 카뤄라(卡惹拉) 빙하 앞에 우뚝 선 스투파

 

빙하 지대를 출발하여 펠체르테사원(백거사)이 있는 장체(江孜)로 향한다. 고산을 사이에 두고 고개를 넘어서니 다시 평지처럼 쭉 뻗은 길을 달린다. 평원에는 청보리밭이 파란 풀처럼 펼쳐져 있고, 구름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한 높이에 떠 있어 손오공처럼 휘파람을 불면 구름이 스르륵 땅으로 내려올 것만 같다.

 

장체로 들어가는 삼거리 검문소에는 검문을 받기 위해 오토바이와 차들이 줄을 서 있다. 여기서부터는 부탄과 인도, 네팔과의 국경이 가까워 이동 중에 자주 검문을 받게 된다. 장체는 인도, 네팔, 부탄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인 탓으로 옛날에는 티베트에서 시가체 다음으로 큰 도시였는데, 1904년 영국군이 이곳을 침략하자 티베트인들이 완강하게 저항하였으나 신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을 이기지 못하고 진지의 언덕에서 영국군에 항복하지 않고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공원에 세워져 있다.

 

요새를 방불케 하는 백거사 입구의 성채 사원

 

백거사(白居寺)라고도 불리는 펠코르체사원은 1,418년에 세워진 라마불교 사원이다. 사원은 시내 공원에서 바라보이는 언덕에 있는데, 입구가 요새처럼 성벽으로 둘러싸인 풍광이 평범한 사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탑 중에 절이 있고 절 중에 탑이 있어 탑과 사찰이 결합된 전형적인 라마불교 사원 건축물인 사원 안에는  대전당과 백거탑 2개의 큰 건물이 있다. 대전당은 중앙에 석가모니 불상이 놓여있고 전당 내 벽화와 불상은 인도와 네팔 양식이 융화되어 있다. 이 사원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법당 옆에 있는 백거탑 때문이다. 이 탑은 9층 탑으로 꼭대기는 황금색으로 위엄있게 장식되어 있는데, 탑 내부에는 108개의 작은 암자가 있고, 그 속에는 만 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어 만불탑이라고도 부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위로 오르는데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탑 중에 절이 있고 절 중에 탑이 있는 백거사의 백거탑

 

해발 3,950m 산 위에 당당하게 서 있는 거대한 백거탑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출항을 앞둔 큰 배처럼 보인다. 그 출항의 시간이 언제인지가 실로 궁금해진다.

 

 

탑을 오르니 

그 속은 깊고 어둡다

사람들은 합장하고 지전을 바친다

 

이승의 중생들을 

서방 극락정토로 실어 갈

이 배는 언제쯤 떠나갈까

 

 

장체를 떠나 시가체로 가는 길에 초모랑마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에 적힌 지명들이 마치 전생과 후생을 가리키는 방향처럼 느껴진다. 후생은 전생의 운명 같고, 그들은 서로 관통하는 앞뒤 같은 인(因)과 연(緣)과 과(果)의 연속. 지금 내 생도 나의 후생이며 전생이 아닐까.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5.06.18 10:29 수정 2025.06.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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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