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아, '초모랑마' 대지의 어머니여!

3부 초모랑마를 보며 걷는 자우라산 트레킹

 

해발 3,850m의 시가체(르카쯔시)는 티베트어로 '고향의 산봉우리'라는 뜻을 가진 인구 70만의 티베트 제2의 도시다. 라싸를 출발한 여행자들이 여기에 와서 서로 만났다가 네팔 카트만두 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그리고 구게왕국과 카일라스산(수미산)으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쪼개지는 ′만남과 헤어짐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심은 2차선 왕복 도로로 교통이 번잡하지만 중국화가 많이 진행된 라싸에 비해 상가 건물과 가옥, 현지인들의 의복 등 티베트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고 한족들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 한편으로 다행스럽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호텔로 들어서니 종업원들이 모두 나와 일일이 흰 천의 하닥을 목에 걸어주고, 저녁 식사 시간에는 티베트의 민속 공연도 해주면서 멀리서 온 여행자들을 반겨 준다. 

 

티베트를 제대로 느낀 시가체 호텔의 민속 공연 

 

시가체는 매우 작은 도시라 천천히 걸어 다녀도 하루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도심 한복판에는 매일 많은 티베트 불교도들이 오체투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이 바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타쉬룬포 사원이다. 이 사원은 1447년 겔룩파(황모파)를 창시한 쫑카파의 제자 달라이 라마 1대가 창건한 절로, 티베트 6대 사찰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전성기 때는 승려의 수가 4,800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900여 명이 있다고 한다. 3개의 대웅전과 크고 작은 많은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볼만한 것은 판첸 라마 9대 때 황금과 구리를 혼합해서 만든 미륵동 불상으로, 26m의 높이에 무게가 275kg이다. 이 외에 11m 높이의 금과 은도금으로 만든 판첸 라마 4대의 불사리탑이 볼만하다. 

 

시가체 도심에서 오체투지하는 티베트 불자들

 

사원이기도 하면서 라마의 궁전이기도 한 타쉬룬포 사원의 주지는 판첸 라마다. 달라이라마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면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둘 다 활불(活佛)이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를 교육시키고 보살피며, 다음 대에서는 반대로 달라이 라마가 판첸 라마를 교육시키고 보살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새롭게 태어나면 그것을 판별하는 역할을 판첸 라마가 하게 된다. 둘은 전생, 현생, 내생을 통해서 계속 이어지는 관계이다. 그런데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달라이 라마 14대가 인정한 판첸 라마 10대와 그 가족이 중국 정부에 의해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고, 대신 중국 정부가 내세운 판첸 라마 10대가 주로 베이징에 머물고 있다. 문제는 달라이 라마 14대가 죽고 나면 중국의 조종을 받는 판첸 라마 10대가 달라이 라마 15대를 선택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그가 성장하는 동안 판첸 라마가 섭정하면서 권력을 쥐게 된다. 

 

판첸 라마 10대가 주지로 있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

 

이를 막기 위해 인도 망명 정부의 달라이 라마 14대는 이제 전생활불(轉生活佛) 제도, 즉 대를 이어서 부처가 환생하는 제도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14대 달라이 라마와 중국 정부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현지에 사는 티베트인들의 고민은 짙어만 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판첸 라마 10대가 주지로 있는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이봉수 이순신 전략연구소 소장이 고산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라마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특강을 해준다. 평소 티베트 불교에 관심이 많은 이소장은 라마 불교와 관련하여 영문판과 한국어판 번역 서적을 출간할 정도로 티베트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다. 

 

라마 불교에 대해 특강 중인 이봉수 ‘한국티베트명상원 불사위원장 / 이순신전략연구소원장'

 

초모랑마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시가체의 호텔에서 출발한다. 시내를 벗어나니 좌우로 황량한 바위산이 끝없이 펼쳐지고 산에 점점이 박힌 하얀 스투파가 눈길을 끈다. 도로 좌우로 황량한 황무지에 군데군데 식목을 흔적이 보인다. 잠시 후 버스는 허허벌판에 서 있는 휴게소에 도착한다. 이곳 휴게소는 상해 인민 광장에서 출발하여 네팔 국경인 티베트의 장무까지 이어지는 중국에서 가장 긴 318 국도(G318, 총 5,476km)의 5천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G318 도로(총 5,476km)의 5천km 지점에 위치한 휴게소

 

G318은 중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며 고산 협곡, 빙하 및 호수, 원시림 등등 풍부한 자연 및 문화경관과 티베트의 인문경관을 가진 매우 전형적인 산악 관광도로다. 또한 고대 중국과 남아시아의 중요한 교역로였던 차마고도(茶马古道)가 이 도로의 전신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카일라스산(수미산)과 초모랑마로 갈라지는 라쯔현 삼거리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도로 건너편에 컨테이너 숙소들이 많이 보인다. 지난 1월 초에 우리가 가는 에베레스트산 북쪽 팅그리(定日)에서 진도 7.1의 지진이 발생하여 큰 피해가 있었는데, 당시 지진 피해민들을 위한 임시숙소라고 한다. 

 

지난 1월 발생한 지진으로 피해가 심했던 팅그리

 

라쯔현 삼거리는 네팔 방향으로 가는 G318와 카일라스로 가는 G207로 나누어지는 분기점이다. 검문소를 지나 G318로 들어서니 직선도로의 연속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의 도로를 달리다 보면 목동들이 양 떼와 야크 떼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과 야영하는 움막들, 돌담으로 양과 야크를 가둬 놓는 울타리 등을 볼 수가 있다. 그 너머에는 저 멀리 눈을 이고 있는 설산이 우리를 부르는 듯 반겨준다.

 

팅그리로 가는 길은 지난 1월에 발생한 지진 여파 때문인지 곳곳이 새로 도로를 개설하고 있는 공사 현장이 보이고 무너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는 포장과 비포장 길을 연속으로 지나간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네팔 국경의 장무와 초모랑마로 갈라지는 뉴팅그리의 삼거리 앞에 대형 검문소가 나타난다. 이곳 검문소에서는 중국인을 포함한 모든 여행객들이 차에서 내려 신분증과 여권 그리고 여행 허가서를 제시하고 출입 절차를 받아야 하는데, 줄을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야 다시 차를 타고 초모랑마 방향으로 출발한다.

 

초모랑마로 들어가는 뉴팅그리의 검문소

 

뉴팅그리에서 초모랑마로 향하는 길은 생명체라고 보이지 않는 거칠고 험한 협곡의 연속인데 마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연상케 한다. 자우라산 전망대로 올라가는 108배 고개에는 안개가 가득하고 비까지 내린다. 히말라야 산군을 볼 수 있을까? 조바심을 지닌 채 눈 덮인 해발 5,000m의 팡라 고개에 도착했는데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다. 고개 노상에는 기념품을 파는 초라한 가판대가 여러 개가 있고 여행자들이 도착하면 상인들이 우르르 모여드는데 오늘은 날씨가 궂은 탓인지 아예 인기척조차 없다. 

 

자우라산 트레킹의 시작점, 팡라 고개

 

팡라 고개에서 모두 하차하여 자우라산 정상을 향해 트레킹을 시작한다.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14개 봉우리 중 초모랑마(에베레스트, 8,848m), 마칼루(8,463m), 로체(8,516m), 초오유(8,201m), 시샹팡마(8,027m) 등 5개의 봉우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에베레스트 전망대(5,248m)로 가기 위해 악명높은 자우라산의 팡마 고개에서 힘겨운 등반을 시작한다. 

 

자우라산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무겁기 그지없다.

 

바람아! 뒤에서 우릴 좀 밀어주면 안되겠니? 저 고개에 오르면 에베레스트 전망대, 바로 초모랑마가 보인단다. 고단한 순례자들은 고산증으로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한다. 초모랑마의 여신이 우리가 힘들게 산오름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던지 서서히 눈보라를 걷어내면서 멀리 히말라야 설산들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니 거친 호흡에도 불구하고 모두 탄성을 내지른다. 

 

자우라산 정상의 전망대 너머로 보이는 히말라야 산군

 

해발 5,248m에 있는 자우라산 전망대(加乌拉山口观景台)에 도착하니 그새 눈보라는 사라지고 멀리 히말라야 설산들이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우라산 정상의 이정표 너머로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마루금은 가히 장관이다. 시선 왼쪽에서부터 마카루, 로체,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초오유, 시샹팡마 등 5개의 8,000m 이상 설산들이 구름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하며 여행자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형형색색의 타르쵸가 초모랑마를 향해 바람에 휘날리고 있고 근처에서 양 떼와 야크 떼가 어우러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까지 더해지니 더 이상 말과 글로 표현해서 무엇하리요. 70이 코앞인 이 나이에도 떨리는 설렘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진하게 밀려온다.

 

설렘과 감동으로 마주한 히말라야 산군의 초모랑마와 로체

 

모두 정상의 에베레스트 전망대에 서서 산 밑에서 가져온 카닥을 타르쵸 옆에 걸면서 마음에 담아 온 염원을 간절하게 기도한다. 나도 우리 가족의 건강과 투병 중인 친구의 쾌유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염원을 하닥에 담아 대지의 어머니 초모랑마에게 날려 보낸다. 

"친구야! 훌훌 털고 일어나 담에 같이 오세!“

 

하닥에 염원을 담아 대지의 어머니 초모랑마에게 날려 보낸다.

 

 

자우라산은 구름을 부르고 

그 산을 오르는 사람은 구름을 품었어라

 

바로 앞에 초모랑마가 보이건만

우리 갈 길은 아득하게 머네

 

여기서 멈춰 영원히 쉬고 싶은데 

타르쵸에 실린 바람이 내 등을 떠미네. 

 

 

거친 호흡으로 심장은 터질 듯 하지만 꿈꾸는 여행자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또 다른 미지의 땅을 여행하기 위해서 남보다 잘 견딘다. 그래서 아름다운 꿈은 보약인가 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여기서 마음껏 놀고 즐기다 가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초모랑마로 떠나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와 혼줄을 놓게 만드는 굽이굽이 아리랑길을 따라 108배 고갯길을 내려서는데 너무 긴장한 탓인지 심장 뛰는 소리가 말발굽 소리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울린다. 

 

108배 고갯길 너머로 보이는 히말라야 산군의 파노라마

 

오후 늦게서야 초모랑마 산자락에 있는 해발 5,000m의 바송춘(巴松村) 마을에 도착한다. 고산 평원에 떠 있는 구름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고, 그 너머로 초모랑마가 하얀 머리만 내밀고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 초모랑마는 낮에는 엄하고 단호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땅거미 내려앉는 밤의 문턱에 이르니 자애롭고 다정한 어머니 모습으로 바뀐다. 저 포근한 모습을 보니 아마 오늘 밤은 고산증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 것 같다.

 

바송춘 마을에서 바라본 초모랑마의 하얀 머리

 

이윽고 밤이 되자 날씨가 맑아서 숱한 별들이 히말라야 마루금 위에 은하수를 만든다. 별들이 초모랑마의 너른 지평선 위로 쏟아져 내린다. 그래서 밤이 되면 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별이 된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저 별들처럼 나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5.06.23 09:57 수정 2025.06.23 11:25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여계봉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6월 21일
2025년 6월 21일
2025년 6월 21일
2025년 6월 21일
2025년 6월 20일
2025년 6월 20일
2025년 6월 20일
2025년 6월 19일
[ESN쇼츠뉴스]콩고 영화 ‘La Vie est Belle’, 인천국제민..
[ESN 쇼츠뉴스]한국, 키르기스스탄 전기차 충전 인프라 수출 지원! O..
[ESN쇼츠뉴스]DMZ에서 치유를 그린 양서경 작가의 15년 예술 기록 ..
카라음악학원 개원 5주년 이벤트#카라음악학원 #음악학원추천 #개원5주년 ..
2025년 6월 19일
2025년 6월 19일
2025년 6월 18일
2025년 6월 18일
2025년 6월 17일
2025년 6월 17일
2025년 6월 17일
피아니스트 양명진, 2025 독주회 개최#양명진 #피아니스트양명진 #피아..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