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 1597년 12월에 등장하는 전라우수사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당대의 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관직이 나타난다. 그러한 인물들 가운데 이름 없이 관직만 기록된 경우는, 관련 사료를 찾기가 어려워 그 이름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사례도 있다. 또한 이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난중일기』 번역서에 해당 인물의 이름을 잘못 소개하기도 한다. 『난중일기』 1597년 12월에 등장하는 전라우수사의 이름이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다음은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12월 11일

 

맑았다. 경상수사(무의공 이순신-李純信)와 조방장(배흥립)이 와서 만났다. 우수사도 왔다.

 

[원문] 慶水及助防將來見. 右水使亦來.

 

위 일기에 등장하는 '우수사'는 '전라우수사'를 가리킨다. 충무공은 『난중일기』에서 '전라우수사'를 가리킬 때 종종 '우수사'로 기록하였다. 같은 전라도 소속이므로 그러했을 것이다. 또한 위 일기에서 언급된 '경상수사'는 '경상우수사'를 말하는 것이니, 위 일기에 나타난 '우수사'가 '전라우수사'임은 틀림이 없다.

 

노산 이은상은 『이충무공전서』 번역본을 출간할 때 위 일기에 등장하는 우수사를 '이시언(李時言)'이라고 서술하였다. 아마도 이은상이 『선조실록』의 1597년 11월 12일 기사(『선조실록』 권94, 선조30년-1597년 11월12일 기해 4번째 기사)에 등장하는 '전라우수사 이시언(全羅右水使 李時言)'에 관한 기록을 참조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까닭으로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난중일기』 번역본들도 이은상의 번역을 따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조실록』의 1597년 11월 12일 기사에 언급된 '전라우수사 이시언(全羅右水使 李時言)'은 명백한 오류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이시언(李時言)'을 검색해보면, 그는 1596년 8월 ~ 1598년 11월의 기간에 줄곧 '충청병사'로만 나타니고 있다. 오직 1597년 11월 12일 기사에만 '전라우수사'로 언급되어 있다. 『난중잡록』에도 이시언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그는 1596년 7월경 충청병사로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전라우수영지』의 「선생안」에 따르면 김억추(金億秋)가 1597년 8월 7일 ~ 1598년 1월 5일까지 전라우수사를 지냈으므로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우수사는 김억추로 보아야 한다. 즉, 『선조실록』의 1597년 11월 12일 기사는 오류임이 더더욱 명백해진다.

 

​필자가 굳이 이번 칼럼에서 이시언을 다룬 이유는 『선조실록』의 오류 때문만이 아니다. 이시언은 임진왜란 시기 뛰어난 활약을 펼친 주요 장수들 가운데 하나이다. 『선조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면 140여 건의 상당히 많은 관련 기사가 검색된다. 『난중잡록』이나 『서애집』 같은 여러 당대 사료에도 그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임진왜란 시기 그의 활약상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조선왕조실록』이나 한국고전종합DB 사이트를 직접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이시언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중(季仲), 생몰년은 1557~1624년이며, 조선 2대 국왕 정종의 6남 진남군(鎭南君) 이종생(李終生)의 5대손이다. 최근(2020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기묘문무과방목』이 등록되어 이 자료를 통해 이시언의 신상 정보를 더욱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시언은 노량해전 이후 1599~1601년까지 통제사를 지내고, 1601년에는 영의정 이항복의 계청에 따라 왕명으로 여수 충민사(忠愍祠)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이시언은 많은 치적을 세운 인물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비참하였다. 인조 때 발생한 이괄의 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공신들의 정치적 혼란 때문에 1624년에 일어난 반란 사건이다. 1624년 후금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조선 조정은 이괄을 부원수로 임명하여 북방으로 보냈다. 이괄이 북방에 있을 때 이괄, 이괄의 아들, 기자헌, 한명련, 정충신, 이시언 등이 역모를 꾸몄다는 무고가 조정에 들어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조정은 역모의 단서를 찾지는 못했지만 이괄을 압송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데, 이괄이 이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사건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았다.

 

조정은 이괄과 내응할 염려가 있다는 명분으로 기자헌을 비롯한 4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처형해였는데, 이때 이시언도 함께 처형되었다. 많은 전공을 세운 전쟁 영웅이 명확한 증거도 없이 허무하게 죽은 셈이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수 충민사 - 자료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한국고전종합DB

『전라우수영지(全羅右水營誌)』의 「선생안(先生案)」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기묘문무과방목(己卯文武科榜目)』

『선원속보(璿源續譜)』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6.27 10:36 수정 2025.06.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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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