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내가 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조선소에 피부 색깔이 까무잡잡한 20대 중반의 젊은 이방인 여러 명이 있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지났으니 한국말은 대부분 듣기는 가능하고 업무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도 곧잘 한다. 그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40여 년 전의 처지를 떠올려 본다. 그때의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들의 나라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대빈곤을 겨우 벗어났던 시절. 부모님들의 높은 교육열의 덕택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육을 받아 그 학력을 이용하여 외국회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국내기업에 비해 높은 임금이었다. 중동으로, 일본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 등지로. 그러나 외국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선진화된 나라의 사람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견디기 쉽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 대부분이었다. 가족들과 헤어져야 하고 항상 육지와 떨어져 있기에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험부담이 많은 선박에 근무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선박 관련 학교를 졸업한 나는 일본해운회사의 선박에서 승선 근무를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벌기가 녹록지 않았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여기에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이 엄습해 오면 견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우리나라도 시간이 흐르면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고 외국 근로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예측은 적중했다. 한편으로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힘들었던 과거가 덕으로 돌아오는 아이러니가 있기도 하다. 일본회사를 거쳐 미국해운회사에서 일을 했던 경험은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현직에서 퇴직 전까지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되고 세계적인 조선 경기의 호황기에 넉넉한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외국 근로자들은 한국인이 일하기 꺼리는 작업을 잘해 내고 있다. 철판을 자르고 불꽃을 튕기며 용접을 하고 쇳가루를 맞으면서 일한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베트남에서는 고학력(전문대졸 이상) 출신이고 집안도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거쳐 왔던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많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달력에 하루하루를 동그라미 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받는 봉급은 그들 나라에서의 봉급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들이 서툴게 말하는 한국말을 들어보면 선진기술을 배워 자신의 나라에서 사업을 할 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들뿐 아니라 외국 근로자 모두의 생활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1년이 지나고, 2년을 보내며 한국의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해도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표시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을 비교해 비슷한 생활 수준을 가진 필리핀이 미국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인해 외국인에게 배타적이다. 하지만 베트남은 동양 고유의 가족애가 깊어 외국인에게도 호의적이다. 필리핀인이 나라의 수준에 비해 생활 패턴이 조금 낭비적이고 개인적이라면 중국인은 남이야 죽든 말든 나 자신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사고가 팽배해 있다. 이에 비해 베트남인의 국민성은 부지런하고 오랫동안 미국과 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적을 불러들이는 세련됨과 관용을 베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근로자로 나가서 일을 했던 때가 그다지 오래전의 일은 아니다. 온갖 설움을 딛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남의 나라의 돈을 열심히 벌었던 때가 불과 40여 년 전의 일이다. 타국에서 벌어 보내 준 돈으로 동생들 공부를 시켰는가 하면 부모님께 논밭이라도 사드렸다. 베트남 근로자들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안아야 한다.
피부색이 검고 우리 보다 못 사는 나라라고 멸시해서는 더욱 안 된다. 그들은 분명 우리나라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 분야에서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함부로 한다거나 임금을 주지 않는 등의 불이익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를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현재 처해 있는 그들의 조국의 현실이 경제적으로 가난할 뿐이지 개인적인 인간이 잘 못 된 것은 더욱 아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젊은이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중년이 될 즈음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조국도 국민소득이 충분히 올라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의 나이쯤에 외국에서 생활하고 돌아오니 우리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한층 올라가 있었던 것처럼. 현직에 있을 때 열심히 일하는 베트남 근로자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 줬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여주었다.
“너희들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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