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럭서스가 무엇인가를 딱히 설명하기 힘들다. 이유는 평가를 시도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플럭서스 이후 세대의 화가나 작곡가, 연출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게 연구 검토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조직적으로 협력하여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라 당시 예술시장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자유로운 아웃사이더들의 모임이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고 했던 요셉 보이스의 선언이 말해주고 있듯이. 관객을 직접 예술 창작 과정에 직접 참여시키기도 했다.
1962년 독일에서 결성되어 1970년대 초까지 활동한 극단적으로 반예술적이고 실험적이었던 미술 운동 및 그 예술가들의 무리인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움직임’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미술사가들은 플럭서스를 이해하는 데 아직도 혼란을 겪고 있다. 이유는 플럭서스는 일정한 범주에 안으로 제한하거나 목록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4년 이래 플럭서스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각국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미국엔 존 케이지, 매키어너스, 조지 브레히트 등, 프랑스엔 장 자끄 르벨 등, 네덜란드와 덴마크엔 빌렘 데 리데, 에릭 안데르센 등, 독일에는 백남준, 보이스, 일본에서는 오노 요꼬, 시오미 이에꼬 등, 그 외도 많다.
초기 집회 장소인 뉴욕에서 존 케이지가 강의했고, 독일 라인지방에서는 스톡하우젠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플럭서스 출현 후 25여 년 동안은 플럭서스란 무엇인가? ,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등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진 백남준과 무어만의 공연을 보면 금속 부품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여자 로봇을 만들고 그것을 원격 조정 장치를 통해 인사를 하게 하고 확성기로 소리를 낼 수도 있게 했다. 또한,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을 등에 태운 채 로봇의 뒤를 쫓아서 기어다니게 하면서 백남준은 좀 떨어진 곳에서 지휘하면서 ”대중을 죽여라(kill Pop Art)“ 라는 아래와 같은 선언문을 군중들에게 나눠줬다.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는 시시하다/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는 지루하다/ 카라얀은 너무 바쁘다/ 칼라스는 너무 시끄럽다/ 선(禪)은 너무 힘에 겹다/ 백남준은 너무 유명하다/ 마약은 너무 지루하다/ 섹스는 너무 시시하다.”
특히, 무어만이 <생상스 주제에 대한 변주곡>에 의한 연주를 하면서 연주 도중에 옷을 벗고 꽤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커다란 드럼통의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서는 젖은 다리 사이에 첼로를 끼고 연주를 계속했다. 이때 이를 본 베를린 경찰이 공연을 중지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몇 달 후 뉴욕 공연에서는 공연 도중 백남준과 무어만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작년 이맘때쯤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구청의 복지센터에서 ‘문예창작’ 강의 시간에 ‘플럭서스’에 대한 얘기를 잠깐 했었다. 그때 ppt 영상에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독일의 현대 음악가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헬리콥터 현악 4중주’였다.
3악장으로 된 ‘4분 33초’의 제목은 전체 연주 시간에서 가져왔다. 각 악보에는 1악장 TACET(침묵), 2악장 TACET(침묵), 3악장도 TACET(침묵)으로 적혀 있을 뿐, 오선지 위에는 어떤 음표도 없다. 음악을 들으러 온 청중들은 침묵의 음악에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몇 분 뒤 다시 닫았다. 사실 이러한 것도 음악인가? 하는 의문점이 갖게 된 것은 당연했다. 이토록 소리 없는 조용한 침묵도 음악일까? 관객의 기침과 숨소리, 불만을 표시하는 소리 주변의 소음 등이 음악이 된 것이다.
존 케이지는 불교의 선, 주역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동양 사상을 음악으로 가져왔다. 침묵의 소리는 불교 경전 등에서 영감을 받았고, 더불어 에릭 사티, 마르셀 뒤샹 등이 플럭서스의 주요 개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헬리콥터 현악 4중주’는 오스트리아의 공군의 도움을 받아 초연하려고 했으나 그 나라의 녹색당에서 공기를 오염시킬 수 있다며 반대했기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초연했다. 헬리콥터의 기체 소리와 프로펠러 소리 등의 소음 때문에 목소리도 악기 소리도 내기 힘든, 그야말로 처음 보고 듣는 생소한 음악을 만들었다. 30여 분 연주하는데 사실 끝까지 듣는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다.
이처럼 플럭서스는 다다의 반예술 정신과 마르셀 뒤샹의 예술철학, 그리고 존 케이지의 실험 음악에 영향을 받은 20세기 가장 급진적 형태의 예술 그룹이자 정신이었다. 이러한 형성 배경에는 마르셀 뒤샹의 영향이 컷으며, ‘우연성’, ‘비결정성’의 개념을 새롭게 내세우고 실천한 실험적인 음악가 존 케이지의 영향도 크다 플럭서스는 하나의 예술운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었으며, 그러한 정신을 가진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담는 도가니였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