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도봉산 문사동(問師洞) 계곡

여름에는 가까운 수도권 계곡으로 3

 

무더위가 극성인 7월의 주말, 이른 시간인데도 도봉계곡 초입에는 염천의 열기를 식히러 나온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다. 빼어난 경치와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도봉산 골짜기에는 어김없이 청량한 물소리를 내뿜는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들이 걸려 있다. 그런데 도봉계곡에는 선인(先人)들이 암반에 새긴 각석(刻石)들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오늘은 도봉계곡을 따라 걸으며 더위를 식히면서 계곡 암반에 새겨진 각석들을 찾아 그 뜻을 음미해 보기로 한다.

 

'물 반 사람 반' 도봉계곡 초입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광륜사 쪽으로 가다 보면 산악박물관 아래 왼쪽 옆에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도봉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알리는 우암 송시열의 친필이다. 글씨의 위치가 도봉계곡의 초입에 있다는 점에서 도봉계곡을 사랑하던 송시열이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선경(仙境)이 시작됨을 알리기 위하여 썼다고 전해진다.

 

우암 송시열이 남긴 '도봉동문(道峰洞門)' 각석 바위

 

문사동 계곡은 도봉산 입구에서 용어천계곡이 있는 상류까지의 계곡인데 흔히 도봉계곡이라도 부른다. ′문사동(問師洞)′은 ′스승을 모시는 곳′ 또는 ′스승에게 묻는 곳′이란 뜻으로, 예를 갖추고 스승을 맞아 초대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문사동은 도봉동천(道峯洞天) 가운데 경치가 특히 빼어나, 도봉서원의 선비들이 스승을 이곳까지 모시고 와 함께 학문을 논하며 산수의 경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경치가 빼어난 도봉산 문사동 계곡

 

계곡의 푸른 숲 맑은 물을 보고 걷다 보면 도봉서원 앞 계곡에서 만나는 '고산앙지(高山仰止)' 각석 바위는 곡운 김수증이 스승 조광조를 위해 새긴 것이다. 고산앙지(高山仰止)’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차할편(車舝篇)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이다. 도봉서원은 시대를 앞서간 정암 조광조를 향사(享祀)하고 후학들을 기르기 위해 세운 서원인데, 지금은 빈터에 잡초만 무성하다.

 

곡운 김수증이 남긴 '고산앙지(高山仰止)' 각석 바위

 

'도봉(道峰)'은 '도선국사가 도를 닦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국립공원 북한산에는 모두 100여 사찰이 있을 정도로 불국토인데, 그중 도봉산 지구에만 35개 사찰이 있다. 맑디맑은 계곡물을 ′물멍′ 하느라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산사 가는 계곡 길을 따라가면 금강암, 구봉사, 성도원이 차례로 나오는데, 계곡 주변에 서 있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향기가 절집에 그윽하다. 그중에서도 금강암은 지친 마음에 쉼표를 그려주는 동네 여염집 같은 절이다. 

 

 단정한 비구니 도량 금강암

 

금강암에서 다시 오르면 구봉사에 도달하게 되는데, 구봉사 일원은 문사동의 핵심으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구봉사에서 위쪽으로 더 오르면 서광폭포가 나오고, 좀 더 올라가면 우이암과 용어천계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도봉산 입구에서 여기까지가 문사동계곡인데, 근처 물이 완만하게 흐르는 바위에 ‘문사동(問師洞)'이 각석되어 있다. 이렇듯 도봉계곡 암반에는 스승을 존경하고 추모하는 글귀들이 새겨져 후세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문사동(問師洞)' 각석 바위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흐르는 용어천계곡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어 산오름을 계속하면 마당바위가 기다린다. 이곳에 서면 시원하게 전망이 트이면서 정면으로 멀리 떨어진 우이암과 인수봉이 뚜렷하게 다가선다. 좌로 시선을 돌리면 불암산과 수락산도 어서 오라 손짓한다. 잠시 마당바위에 걸터앉아 당실당실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솔바람 숨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산과 하늘의 밝음과 소리의 맑음을 마음에 담으니 잠시나마 선인이 된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우이암과 인수봉

 

마당바위에서 용어천계곡으로 내려와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골짜기에서 신발 끈을 풀고 옥류에 발을 담근다. 물소리에 귀를 닦고 흐르는 물에 눈을 씻으며 걱정과 불안의 더께를 흘려보낸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만물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동시에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무는 물을 보니 최고의 삶은 역시 '상선약수(上善若水)'임을 실감한다. 너른 암반에 누워서 흐르는 물이 서로 다투지 않는 모습을 보며 도가(道家)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흉내 내어 잠시 시 한 수를 읊어본다. 

 

 

짙은 솔향 숲 가득한 도봉동문 들어서니

문사동 계곡 암반 위로 청정옥수 넘쳐 나네

옥류천에 시름 담아 저잣거리 내보내니

세속 번뇌 사라지고 도봉선원 신선되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5.07.18 10:21 수정 2025.07.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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