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문의 시 가운데 1960년 『세계』 7월호에 발표한 「육성」이라는 시가 있다. 그 전문을 읽어 본다.
오월달 물 오른
내 정신의 묘상(苗床)에
그날 피빛
네 육성을
한알씩 한낱씩 씨 뿌린다
뿌리는 씨알마다에
축도로서 명목하면
아직도 눈물젖은 눈시울 가득히
펼처오는 처절한 비-죤,
와—
와—
서울 한복판
통의동 거리
와—
와—
해일처럼 넘치는 군중속을
앰브란스 날망에 실려나오면서
숨길을 막는
피거품 사이사이
부르짖던 네 소리,
흰자위 덮여가는
눈동자를 부릅뜨듯 굴리면서
웨치던 소리
그 네 소리,
경련하는 외팔을 허우적이듯
半만치 겨우 흔들며
부르짓던 네 소리,
기진하는 힘을 다 모아서
마지막 외마디로
목을 떠러트리며
웨치던 소리
그 네 소리,
내 네 차 꽁무니를
미친 듯 탕 탕 주먹치며
몇발작 따라가다
눈물에 눈물에 분통에 막혀
시름에 시름에 억울에 막혀
땅에 주저 앉고 못 듣겠던
네 그 목소리
네 그 목소리
“뭣들 하세요! 아저씨들”
“나가세요!”
“나가 싸우세요!”
그날 그대로
오늘도 내 귓전에
역역히 듣는다
마음으로 다짐하며
肉聲으로 듣는다,
들으면서 이제는
억울해도 분해도
그날만치 슬퍼도
이것을 참는다
그날처럼 주저앉는
무위가 될가 싶어
이것을 참는다,
겨우 반치 기리 밤송이 머리의
애띤 얼굴로서
그 무슨 신화 속의 어린 율법자처럼
못나고 어리석은 우리들 선두에서
生命의 기빨을 내 흔들며
역사를 규정하던
네 목소릴
민족에게 지침하던
네 목소릴
인간을 주장하던
네 목소릴
그 소리
마디
마딜
오늘의 명제로서 결행한다
참회하듯 삭발하듯
네 머리 모습으로
젊은 모습으로
머리도 깎고
의욕의 자랑으로
머리를 깎고
어깨를 펴며
팔을 내저으며
네 목소릴 외우며
이젠 망명 아닌
내 거리 내 나라인
통의동거리에 서서도 보며
서울 한복판을 활보한다
“뭣들 하느냐”고
“뭣들 하느냐”고
담뿍이 물 오른
내 정신의 묘상에
그날 선혈졌던
네 육성을
한알씩 한낱씩 씨뿌리면서.
— 「육성」 전문
인용 시 「육성」은 4.19 혁명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에 창작한 회고적 시점의 시이다. 1연의 “5월달 물 오른 / 내 정신의 묘상에 / 그날 피빛(핏빛)”이라는 시행이 이를 증명한다. 1연 4~5행의 “네 육성을 / 한알씩 한낱씩 씨뿌린다”와 2연 마지막 행에서 “네 육성을 / 한알씩 한낱씩 씨뿌리면서.”는 반복적 강조이면서 수미상응을 유지한다. “한알씩 한낱씩 씨를 뿌린다”처럼 반복법과 수미상관법을 채택하여 강조한 것은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과 「학생들의 주검이 시인에게—아, 4월 19일이여」에서의 “총알 총알 총알”처럼 시어의 반복을 통해 시어의 긴장미는 물론이고 내용의 긴장미를 고조시킨다. 4.19 혁명 그날의 종로구 통의동 거리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 내고 있다. 결국, 「육성」은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학생들의 주검이 시인에게—아, 4월 19일이여」와 함께 4.19 혁명에 대한 현실 참여시로서 맥을 같이한다.
2연의 “그 무슨 신화 속의 어린 율법자처럼”은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에 등장하는 다윗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화적 상상력으로 창작한 신화적 풍자시이다. 신화적 서정성도 내재해 있다. 「육성」의 주제는 부정 의식이고, 리얼리즘 계열이 아닌 모더니즘 계열의 기독교 신화적 상상력의 현실 참여시이다.
1960년 4.19 혁명 후 그해 「학생들의 주검이 시인에게—아, 4월 19일이여」는 『새벽』 6월호(1960. 5. 15.)에,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은 『사상계』 6월호(1960. 6. 1.)에, 「육성」은 『세계』 7월호(1960. 6. 25.)에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학생들의 주검이 시인에게—아, 4월 19일이여」은 1963년에 발표한 산문 「김주열의 부두」에 이 시의 2연과 6연의 일부를 삽입했다. 그 산문에 “그날 서울 거리의 가두에서 호외를 보며 중얼거렸던 시구절이 생각난다.”라며 호외 발행과 배포 날짜임을 암시했다. 그날이 4월 11일이다. 따라서 그날 쓴 시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렇다면 부제가 ‘아, 3월 15일이여’가 아니라 ‘아, 4월 19일이여’로 붙인 이유는 추정컨대 『새벽』 6월호의 특집이 ‘4.19 민권 혁명’이었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즉, 4.19 혁명 기념 특집이라는 점이다. 이와 더불어 3.15 학생 의거는 4.19 혁명의 발단이라는 점과 4.19 혁명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고 제출과 편집 과정에 수정했을 것이다. 「육성」은 1연의 “5월달 물 오른 / 내 정신의 묘상에 / 그날 피빛(핏빛)”이라는 시행을 보면, 4.19 혁명 다음 달인 5월에 쓰고 7월에 발표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보다 「학생들의 주검이 시인에게—아, 4월 19일이여」가 먼저 창작하고, 5월에 먼저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시문학사적 의미가 있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