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 거짓 뉴스, 거짓 정보…. 거짓은 누군가에겐 생존이고 누군가에겐 권력 찬탈이고, 누군가에겐 습관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쉽게 속는다고 히틀러는 말했다. 그렇다. 오늘 영화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한 유대인 ‘질’에 관한 이야기다. ‘페르시아어 수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잔혹한 밑바닥까지 드러냈던 세계 2차대전 중에 일어난 일이다. 인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유대인 학살을 저지른 히틀러 집단의 광기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질의 거짓말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히틀러 같은 미치광이들이 종종 나온다. 미치광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데는 선수들이다. 그 유명한 독일의 히틀러가 그러했고, 문화혁명을 일으킨 모택동이 그러했다. 자국민을 몰살시킨 캄보디아의 폴포트가 그랬고 러시아의 푸틴도,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도, 북한의 김정은도, 미국의 트럼프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치광이들이다. 미치광이들이 판치는 세상을 겨우겨우 건너온 사람들, 그 사람들의 생존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하다.
‘페르시아 수업’을 받기 위해 독일군 장교 ‘코흐’는 유대인 ‘질’을 찾으면서 대 서사가 시작된다. 질은 독일군에게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던 중 트럭 옆자리에 앉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는 몹시 배가 고팠는지 먹이 있으면 자기 책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질은 수용소로 끌려가는 와중에 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거절하자 남자는 귀한 페르시아어 책이라며 애처롭게 자랑하자 안쓰러운 나머지 가지고 있던 샌드위치를 주고 책을 받는다. 질은 수용소인 줄 알고 간 곳은 처형장이었고 그곳에서 군인들은 유대인을 한데 모아놓고 총을 갈겨댔다.
공포에 휩싸인 질은 자기는 페르시아어책을 보여주며 유대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라고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마침 대위 하나가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었고 다행히 질은 대위의 페르시아어 선생이 되어 목숨을 건지게 된다. 요리사였던 대위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 가서 독일 요리 식당을 차릴 것이니 일상 대화만 할 수 있도록 하루에 단어 4개씩만 가르쳐 달라고 한다. 질은 온갖 위기를 넘기면서 가짜 페르시아인 흉내를 내며 페르시아 수업을 이어나지만 결국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것이 발각되어 채석장으로 대위는 질을 채석장으로 보내 버리고 만다.
죽을 만큼 힘든 노동에 쓰러진 질은 혼수상태에 빠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지껄이는데 채석장 관리는 대위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대위는 혼수상태에서도 ‘엄마 집에 가고 싶어’라는 가짜 페르시아어를 계속 외우는 걸 보고 질을 다시 믿게 된다. 질은 대위의 특별 보호로 치료를 받고 다시 원래 업무인 대위의 페르시아 수업을 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가짜 페르시아어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대위는 자신의 비밀 하나를 이야기한다. 대위의 동생은 반나치주의자이었고 테헤란으로 도망쳤으며 전쟁이 끝나면 대위가 테헤란으로 가려는 이유도 동생이 테헤란에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전쟁이 끝나가고 연합군이 몰려오자, 모든 포로는 처리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처형이 시작되자 대위는 위조여권과 돈을 들고는 포로 숙소에서 질을 급히 데리고 나와 안전한 지대에 이르자 이제 제각기 갈 길로 가자고 하며 가짜 페르시아어로 ‘잘 살아’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이란 입국심사장에 도착한 대위는 벨기에 여권을 내밀고 질에게 배운 가짜 페르시아어로 말하다가 탄로가 나 체포되고 만다. 질은 연합군에게 붙잡혀 조사하는 과정에 수용소에서 총살당한 희생자의 서류가 다 파괴되어 없자 그동안 가짜 페르시아 단어를 만들면서 같이 외우게 된 수용소에 있던 2,040개의 이름을 되뇌면서 영화를 막을 내린다.
미치광이들이 지배했던 세상, 그 세상에서 살아나온 질에게 우리는 거짓말을 왜 했냐고 따질 것인가. 그 거짓말은 생존이고 증언이며 역사의 질곡이다. 미치광이, 루저, 찌질이들의 광란의 질주를 눈 뜨고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고통을 참고 죽음의 공포를 겪어 냈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다. 살기 위해 언어까지 창조해 가면서 죽음의 구덩이에서 살아온 질의 그 공허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페르시아 수업’은 볼프강 콜하제의 소설 ‘언어의 발명’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책 한권에서 시작된 위험한 거짓말을 연기한 아르헨티나의 배우 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의 연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죽어있는 것 같으면서도 살고자 하는 욕망의 커튼으로 가린 아련한 눈빛이었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의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고 그 전쟁이 끝나면 또 시작된다. 싸움이 동물들의 영원한 생존 본능이라면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질이 대위에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혼자 읊조리던 말이 떠오른다.
“지긋지긋해 두려워하는 거”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