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재란 시기인 1597년 9월 전라도 울돌목(명량)에서 벌어진 명량해전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극적인 전투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종종 영화나 TV드라마 등으로 제작 및 방영되어 명량해전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명량해전에 관한 사료는 『난중일기』와 『선조실록』이 대표적이다. 특히 『난중일기』는 명량해전의 전투 경과를 자세히 서술한 중요한 사료이다. 명량해전의 전투 경과는 『난중일기』 가운데 1597년 일기를 기록한 「정유일기」에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정유일기」는 2권의 책이 존재한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일기를 두 번에 걸쳐 기록하였다.
첫번째 「정유일기」는 4월 1일 ~ 10월 8일 일기를 기록하였고, 두번째 「정유일기」는 8월 4일 ~ 12월 30일 일기를 기록하였다. 첫번째 「정유일기」는 7월 2일 ~ 10월 3일 일기의 간지(干支)를 잘못 표기하였는데, 아마 7월 2일 간지를 착각으로 잘못 적어서 그 이후의 간지가 쭉 밀려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정유일기」는 이들 간지를 바로잡아 다시 제대로 기록하였다.
명량해전에 관한 기록은 2권의 「정유일기」에 모두 나타난다. 다음은 명량해전에 관한 『난중일기』의 기록 가운데 일부를 옮겨 놓은 것이다.
『난중일기』, 두번째 「정유일기」, 1597년 9월 16일(음력)
(갑진) 맑았다. 이른 아침에 별망군이 와서 “부지기수의 적선이 명량으로 들어오는데 곧장 [우리 수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고 보고하였다. 곧바로 여러 배들로 하여금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130여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둘러쌌다. <<후략>>
[원문] 十六日甲辰 晴. 早朝 別望進告內 賊船不知其數 鳴梁由入直向結陣處云. 卽令諸船 擧碇出海 則賊船百三十餘隻 回擁我諸船. <<후략>>
위 『난중일기』 기록에 나타난 바와 같이 1597년 9월 16일(갑진-甲辰) 일기에 명량해전 전투 기록이 나타나기 때문에, 당연히 명량해전은 이날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와 달리 명량해전이 실제로는 9월 17일에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는 『난중일기』에 기록된 일부 월·일 표기가 잘못되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 조선, 명, 일본은 모두 태음력(太陰曆)을 사용했다. 태음력을 사용할 경우 한 달은 29일(작은달) 또는 30일(큰달)로 이루어졌으며, 한 해는 약 354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사용한 음력 월·일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사료는 『선조실록』이다. 그런데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에 나타난 1597년의 월·일을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8월~9월 두 달 동안 서로 다른 부분이 발견된다. 다음은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의 1597년 8~9월 주요 날짜와 간지(干支)를 비교한 표이다.

『선조실록』 월·일·간지
『난중일기』 월·일·간지
8월 1일(기미-己未)
8월 2일(경신-庚申)
…
8월 28일(병술-丙戌)
8월 29일(정해-丁亥)
8월 1일(기미-己未)
8월 2일(경신-庚申)
…
8월 28일(병술-丙戌)
8월 29일(정해-丁亥)
8월 30일(무자-戊子)
9월 1일(무자-戊子)
9월 2일(기축-己丑)
…
9월 16일(계묘-癸卯)
9월 17일(갑진-甲辰)
…
9월 28일(을묘-乙卯)
9월 29일(병진-丙辰)
9월 30일(정사-丁巳)
9월 1일(기축-己丑)
9월 2일(경인-庚寅)
…
9월 16일(갑진-甲辰)
9월 17일(을사-乙巳)
…
9월 28일(병진-丙辰)
9월 29일(정사-丁巳)
10월 1일(무오-戊午)
10월 1일(무오-戊午)
『선조실록』은 1597년 8월을 29일(작은달)로, 9월을 30일(큰달)로 표기하였다. 이에 비해 『난중일기』는 1597년 8월을 30일(큰달)로, 9월을 29일(작은달)로 표기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1597년 9월 한 달 동안의 날짜가 서로 하루의 차이가 발생하며, 10월 1일이 되어서야 다시 『선조실록』과 『난중일기』의 날짜가 같아진다. 만일 『선조실록』에 나타난 날짜가 맞는 기록이라면, 명량해전이 벌어진 실제 날짜는 9월 16일이 아닌 9월 17일이 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 개인 기록인 『난중일기』보다 관찬(官撰) 사료인 『선조실록』에 나타난 월·일 표기가 옳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흥미롭게도 다른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조선은 공식적으로 명나라의 책력(冊曆)을 사용하였으며, 이에 따라 음력의 월·일 구분도 두 나라가 일치한다. 조선이 사용한 명나라 책력은 시기에 따라 다른데, 1370~1652년의 기간 동안에는 대통력(大統曆)이라는 명나라 책력이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시기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은 이 대통력에 비망기를 적기도 하였는데, 그 자료가 현전하여 보물 제160-10호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이라는 유물로 남아있다.
명나라에서 사용한 대통력 등의 책력에 나타난 월·일 표기는 인터넷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음의 표는 1597년(만력 25년) 즈음의 월과 간지를 정리한 표이다.

위 표에 나타난 간지 표기는 각 월 1일의 간지를 말한다. 1597년 각 월을 살펴보면 8월 1일은 기미(己未), 9월 1일은 기축(己丑), 10월 1일을 무오(戊午)이다. 이에 따르면 8월은 30일(큰달)이 되며, 9월은 29일(작은달)이 된다. 즉, 위 표에 나타난 1597년 8~9월 월·일과 간지 표기는 『선조실록』이 아닌 『난중일기』와 일치한다.
국사편찬위원회의 『명실록·청실록』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명나라에서 사용한 음력 월·일을 확인할 수 있다. 『명실록』은 1597년 8월 1일을 기미(己未)로, 9월 1일을 기축(己丑)으로, 10월 1일을 무오(戊午)로 표기하였다. 『명실록』의 1597년 8~9월 월·일과 간지 표기 또한 『난중일기』와 일치한다.
『선조실록』의 1597년 8~9월 월·일과 간지 표기가 틀렸다는 것이 선뜻 믿겨지지 않아서 임진왜란 시기 여러 당대 사료에 나타난 날짜 표기를 확인해 보았다.
조응록(趙應祿, 1538~1623)의 『죽계일기』는 『난중일기』와 마찬가지로 1597년 9월 1일을 기축(己丑)으로 표기하였다.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의 『난중잡록』은 1597년 8월을 30일(큰달)까지 표기하였는데, 이 또한 『난중일기』의 날짜 표기와 일치한다. 정경운(鄭慶雲, 1556~1610)의 『고대일록』은 1597년 8월 일기를 1일~30일(큰달)까지, 9월 일기를 1일~29일(작은달)까지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이들 날짜뿐만 아니라 이 두 달 동안의 일기에 나타난 간지(干支) 또한 『난중일기』와 똑같이 기록하였다.
훗날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의 날짜 표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선조수정실록』의 1597년 날짜 표기를 살펴보면 9월 1일을 기축(己丑)으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선조실록』이 아닌 『난중일기』의 표기와 일치한다.
명량해전이 벌어진 날짜는 일본측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명량해전 결과를 히데요시에게 알리는 보고서를 수록한 『모리고동문서(毛利高棟文書)』가 바로 그 자료이다. 이 자료는 국내에도 널리 소개된 자료로서, 여기에는 명량해전이 벌어진 날짜가 9월 16일로 기록되어 있다.
과거 일본에서 사용된 책력은 조선이나 명나라와 약간 차이가 있다. 1597년은 일본의 경장(慶長) 2년에 해당한다. 다음은 1597년 즈음 일본의 월과 간지를 명나라의 월과 간지와 비교한 표이다.

위 표에 나타난 1597년(경장 2년) 각 월의 간지 표기는 총 12개월 중 6개월의 간지가 앞의 표에서 살펴본 조선·명나라의 것과 다르다. 하지만 9월 1일은 기축(己丑)으로 표기하여, 조선과 명나라의 9월 1일 간지와 일치한다. 이는 9월 1~29일 간지가 조선, 명, 일본 세 나라 모두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즉, 『모리고동문서』에 기록된 명량해전 날짜 9월 16일은 『난중일기』의 9월 16일과 동일한 날짜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하면, 『난중일기』에 기록된 명량해전이 벌어진 날짜 1597년 9월 16일은 정확한 날짜라고 말할 수 있다. 『선조실록』의 1597년 8~9월 날짜 오류는 실록이 편찬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듯하다.
참고로 앞에서 명량해전이 실제로 9월 17일에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를 주장하시는 분의 입장을 생각하여 굳이 그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명실록·청실록』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160-10호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
한국고전종합DB, 조경남(趙慶男), 『난중잡록(亂中雜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응록(趙應祿), 『죽계일기(竹溪日記)』
남명학연구원, 『역주 고대일록(孤臺日錄)』, 2009, 태학사
도쿠토미 소호(徳富猪一郎), 『근세일본사』 풍신씨시대 무편, 1922년, 民友社 明朝(1368~1644) 朔閏表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