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중에 접두사 '참'과 '개'의 쓰임새가 아주 재미있다. 참은 진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고 개는 진짜보다 못한 B급 정도로 쓰인다. 요즘은 여기저기 개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개 맛있다'는 아주 맛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본래 우리말의 참과 개는 진짜와 진짜보다 못한 것을 가리는 말이다.
초봄에 피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하고, 늦은 봄에 피는 철쭉은 개꽃이라고 했다. 아름답기로 치면 연분홍 진달래가 희끗한 철쭉보다 훨씬 아름답다. 잎이 나오기 전에 꽃부터 피는 진달래가 진짜 순정한 꽃이며, 잎과 꽃이 섞여서 피는 철쭉은 잡탕 B급 정도로 여겨진 듯하다. 보릿고개가 닥쳐 배가 고플 때는 참꽃인 진달래를 따서 먹기도 했다. 그러나 개꽃인 철쭉은 독이 있어 먹지 못한다. 두견화라고도 했던 진달래를 노래한 시인은 많았지만, 철쭉을 소재로 쓴 시는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대표적이다.
나리도 참나리와 개나리가 있다. 진짜 나리는 참나리이고 B급 나리가 개나리라는 뜻이다. 이른 봄 노랗게 피는 개나리는 화사해 보이긴 해도 가짜다. 진짜 나리인 참나리는 여름에 핀다. 나리는 종류가 많다. 참나리 외에도 말나리, 하늘말나리, 섬나리 등 수많은 나리가 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그러나 개나리는 꽃의 모양이나 색깔이 전혀 다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 비밀 결사의 집회가 열리면, 사복을 입고 감시하는 일본 형사들이 있었다. 그럴 때 "저기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구나"라고 외친 투사도 있었다.
떡도 맛이 없는 B급 떡은 개떡이라고 했다. 진짜 떡은 찰떡인데 참떡에서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찰떡은 찹쌀로 만든 떡으로 쫄깃쫄깃 맛이 좋다. 보리 겨로 만든 개떡은 색깔이 검다. 꺼칠꺼칠 식감도 좋지 않으며 맛도 없다. 춘궁기에 배가 고파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었던 것이 개떡이다.
그런데 참에 대응하는 개가 없는 말도 있다. 바다에서 나는 고동 중에서 가장 맛이 좋은 놈이 참고동이다. 제주도에서는 참고동을 보말이라고 하며, 미역국을 끓이면 일품이다. 이런 참고동에 대응되는 개고동이란 말은 없다. 소라고동, 멀미고동, 게고동 등이 있을 뿐이다. 민물에 사는 게 중에서 제일로 치는 게는 참게다. 참게에 대응되는 개게는 없다. 농게, 도둑게, 갈게 등이 있지만 이들을 B급으로 보지는 않았나 보다. 참깨와 들깨도 이런 경우다. 들깨를 개깨라고는 하지 않는다. 깻잎은 들깨에서 나오고 들기름을 참기름보다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와서 참과 개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기나긴 겨울 끝에 봄의 전령사인 개나리꽃이 피면 얼마나 반가운가. 개꽃이라고 했던 철쭉이 만발할 때면 지리산과 소백산에는 철쭉제가 열린다. 맛없는 개떡도 웰빙 식품이 되었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참은 없다. 언젠가는 참이 개가 되고 개가 참이 되기도 한다. 인생과 세월만 무상한 것이 아니고 우리말도 끝없이 변천한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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