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응징에서 돌봄으로-새로운 공동체의 길

이진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두 갈래의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하나는 공동체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세력에 대한 단호한 태도, 다른 하나는 다수의 약자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돌봄의 구축이다.

 

진영논리를 떠나서 타자 혐오를 선동하고 끝없이 갈라치기를 일삼는 이들의 '두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들의 언행은 이미 도를 넘어 공동체의 최소한의 상식마저 파괴하고 있다. 이런 이들에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응징이 필요하다. 응징은 단순한 정치보복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훼손하는 행위를 제도적으로 단죄하고, 다시는 재생산되지 않도록 막는 민주적 장치다. 정의구현이며 동시에 공동체 회복의 전제이다.

 

그러나 응징만으로는 사회가 건강해질 수 없다. 구조적으로 배제된 다수의 약자들을 제도적 차원에서 돌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누구나 예외없이 늙고, 병들고, 예측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된다. 고통과 상실, 빈곤과 질병, 고립은 특정 소수의 불행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 그 자체다. 

 

그렇기에 국가권력이나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을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수용해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제도적 돌봄은 시혜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권리이며,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식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의 본질을 “함께-있음”에서 찾았다. 인간이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것은 강자가 약자를 보호한다는 위계적 질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약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취약성을 돌보는 평화로운 삶의 구축이다. 응징이 공동체를 해체하려는 폭력을 멈추게 하기 위한 장치라면, 돌봄은 그 공동체를 다시 지탱하게 하는 토대다. 이 둘이 맞물릴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부디, 새 정권이 과거 권력과 다르지 않은 경쟁적 ‘발전주의자’가 아니길 바란다. 성장과 경쟁의 논리 위에서 또 다른 강자만을 길러내는 정치가 아닌 모두의 삶을 평화롭게 지탱하는 돌봄의 정치를 사유하고 실현하는 유례없는 권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응징은 정의의 최소 조건이지만, 돌봄은 언제나 공동체적 삶의 최대 목표여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분열을 꾀하는 ‘압도적 악’의 세력을 넘어서서 새로운 공동체의 길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9.04 10:22 수정 2025.09.0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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