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 비망록에 기록된 사천해전 시기 충무공 이순신의 부상

윤헌식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조선 수군은 네 차례에 걸쳐 경상도 해역으로 출전하였다. 이들 네 차례의 출전 가운데 둘째 출전 시기 가장 처음 벌어진 전투가 사천해전이다. 조선시대 사천은 지금의 경남 사천시에서 곤명면, 곤양면, 서포면을 제외한 지역에 해당한다. 사천해전은 임진왜란 시기 거북선이 처음으로 활약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 전투 때 충무공 이순신이 어깨에 총상을 입은 사건도 그러하다.

 

충무공이 부상 당한 일은 그가 조정에 올린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당포파왜병장」

 

접전할 때 적의 철환이 신(이순신)의 왼쪽 어깨를 맞히고 등을 뚫고 나갔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으며, 신의 군관 봉사 나대용도 철환을 맞았고, 전 봉사 이설도 화살에 맞았으나 모두 죽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원문] 接戰時 賊之鐵丸 中臣之左肩 貫于背而不至重傷 臣軍官奉事羅大用 亦中鐵丸 前奉事李渫 逢箭 幷不致死.

 

​「당포파왜병장」에 언급된 충무공의 부상 관련 기록은 위에 나타난 바와 같이 간략하다. 이러한 까닭으로 큰 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될 소지도 있다. 그런데 충무공의 총상이 언급된 또 다른 기록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그 부상의 경중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충무공이 직접 쓴 기록인 『난중일기』에는 일기뿐만 아니라 비망록 형태로 쓰인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비망록은 편지, 장계 초안, 선물 목록 등으로서 일기와는 성격이 다른 글이고 글을 쓴 날짜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까닭으로 일기만을 번역하여 시중에 출간된 대부분의 『난중일기』 번역본에서는 이들 기록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사실 '비망록'이라는 용어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적절한 용어를 찾기 어려워 이를 사용하였다.)

 

​『난중일기』의 비망록을 가장 처음 번역하여 출간한 사람은 최두환 교수이다. 그가 출간한 『초서체 난중일기』(1997, 해군사관학교)와 『충무공이순신전집』(제1권 『완역 초서체 진중일기』, 1999, 우석)이 그 비망록을 처음으로 수록한 『난중일기』 번역서이다. 최두환 교수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 분의 서예 전문가를 찾아 다니면서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그 열정이 존경스럽다.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 가운데에는『『이순신의 일기』(박혜일 외 3명, 2016, 시와진실), 『난중일기』(박종평, 2018, 글항아리) 등 3~4종류의 책이 그 비망록을 수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순신의 일기』의 경우는 비망록을 원문만 수록해 놓았으며, 같은 제목으로 개정판(박혜일 외 3명, 2022, 북코리아)도 나왔으므로 원문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이 책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천해전 시기 충무공의 총상이 언급된 기록은 『난중일기』의 1593년 3월과 5월 사이에 수록된 비망록에 나타난다. 여기에는 여러 통의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 편지 가운데 충무공의 총상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가뭄과 더위가 혹심한데 잘 지내셨는지요? 전에 앓으시던 이질은 지금 어떻습니까? 삼가 뵙고 싶은 마음 그지없습니다. 곧바로 찾아가 뵙고 싶지만, 지난번에 접전할 때 분투하여 조심하지 않고 화살과 탄환을 무릅쓰고 먼저 나아갔다가 탄환을 맞은 곳이 매우 위중하였습니다. 비록 죽을 만한 상처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견정대골까지 깊이 다쳐 진물이 많이 흘러 옷을 입을 수가 없으며, 온갖 약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아직 차도가 없습니다. 또한 활시위를 당기지도 못하여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원문] 旱炎太酷 伏未審 體候若何. 前日患痢 今則如何. 伏慕之至 無任下誠. 某伏欲卽進探候 而頃日接戰 奮不顧護 先登矢石 中丸處甚重. 雖不至死傷 深犯肩井大骨 惡汁長流 未能著衣 百藥調治 尙未差效. 又未控弦 伏悶伏悶.

 

* 위 번역문과 원문은 『충무공이순신전집』(제1권 『완역 초서체 진중일기』, 1999, 우석)에 수록된 번역문과 『이순신의 일기』(박혜일 외 3명, 2016, 시와진실)에 수록된 원문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위의 글은 전라감사를 지낸 이광(李洸, 1541~1607)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비록 편지를 받는 사람의 이름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글 뒷부분에 "이, 백 두 장수(용인전투에서 전사한 백광언-白光彦과 이지시-李之詩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의 죽음은 이들 모두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 점을 통해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용인전투 패배의 책임이 있는 이광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광은 본관이 덕수이씨로서 충무공과 먼 친척 관계이며, 1592년에는 충무공의 직속상관인 전라감사를 지냈다. 이광은 충무공보다 나이가 4살 많지만, 족보의 항렬로는 1세대 아래이다. 이러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친분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위의 글은 충무공이 입은 총상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였다. 비록 어느 전투에서 입은 상처인지는 나타나지 않지만, 「당포파왜병장」의 기록을 통해 사천해전 때 총에 맞은 상처임을 알 수 있다. 위의 글은 총상을 입은 자리를 '견정대골(肩井大骨)'로 서술하였는데, 이는 '어깨 위 중앙에 있는 움푹 파인 곳의 뼈'를 의미한다고 한다. 총상 자리를 꽤 명확히 알려주는 기록으로서, 충무공이 뼈까지 상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또한 진물이 심하게 흐르고 약을 써도 잘 낫지 않는 등 부상 이후의 상태까지 언급하였으며, 활시위를 당기기 어려울 정도로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후유증이 발생한 점도 기록되어 있다.

 

『난중일기』 비망록에 언급된 '견정대골'(붉은 네모) -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난중일기』에 적힌 일기 원문에서는 사천해전 때 입은 총상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 후유증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텐데, 전혀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친분이 있는 이광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 글을 통해 개인적인 고통과 심정이 가까스로 드러난 것이다. 이점을 고려하면, 충무공은 평소 절제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기를 쓸 때도 그러한 마음이 유지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자료]

한국고전종합DB, 『이충무공전서』

조성도, 『임진장초』, 2010, 연경문화사

최두환, 『초서체 난중일기』, 1997, 해군사관학교

최두환, 『충무공이순신전집』, 제1권 『완역 초서체 진중일기』, 1999, 우석

최두환, 『새 번역 진본 초서체 난중일기』, 2022, 한국문학방송

박혜일·최희동·배영덕·김명섭, 『이순신의 일기』, 2016, 시와진실

박혜일·최희동·배영덕·김명섭, 『이순신의 일기』, 2022, 북코리아

박종평, 『난중일기』, 2018, 글항아리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9.05 10:00 수정 2025.09.0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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