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꼰대, 라떼’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원조 꼰대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를 오래된 어느 한 영국 수녀의 기도문이 떠오른다.
“오, 주여,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늙어버릴 것을 당신께선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지요. 나이 먹고 늙어가면서 내가 때마다 시시콜콜 매사에 꼭 한마디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못되고 몹쓸 버릇 들이지 않도록, 모든 사람의 일을 바로잡아주고 싶은 간절한 욕망에서 날 벗어나도록, 생각은 깊되 기분은 울적하지 않도록, 친절하되 나서서 설치지 않도록, 내가 갖고 있는 많은 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기는 서운하고 아쉽지만, 오, 주께서는 아시지요. 인생 마지막 날에 몇 사람의 벗이 있기를 내가 바란다는 것을, 오, 주여, 끝없이 하찮은 일에 내가 얽매이지 않도록, 사소한 일들로부터 벗어나 사는 데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 그 뜻과 보람을 찾아 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십시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더 우는 소리를 즐겨 하게 되지만 오, 주여, 살면서 늘어만 가는 내 고민과 고통에 대해서는 내 입을 굳게 다물게 해주십시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넋두리를 반기지는 못할지언정 이해와 동정으로 감싸 들어줄 수 있도록 날 도와주십시오. 나이 들면서 점점 흐려지고 약해지는 내 기억력을 더 좋게 해달라고 빌고 바라지는 않지만 간구하옵기는 내가 기억하는 게 다른 사람들의 기억보다 정확하다고 자신만만하게 고집부리지 않도록, 때로는 내가 잘못 생각하고 틀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또 간절히 간구하옵기는 내게 약점이 있어 기분 좋고 유쾌하도록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날 지켜주십시오. 나는 성인 성자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어떤 성인 성자들과 가까이 지내기는 아주 힘들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술 궂은 노인은 악마의 최고걸작품이지요. 끝으로 빌고 바라옵기는 예기치 않았던 곳에서 경이롭고 아름다움을 기대치 않았던 사람에게서 훌륭하고 좋은 점을 내가 발견할 수 있도록 찬사를 아끼지 않도록 내 눈을 밝게 해주시고 내 가슴을 열어주십시오. 아멘”
굳이 이 수녀의 기도문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더할 수 없이 황홀하도록 행복했던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열두남매 형제 중에 벌써 다들 세상 떠나고 나 혼자만 아직 남아 이 지구별 땅을 밟고 하늘 숨을 쉬고 있지만, 그가 살아생전 방랑 김삿갓처럼 평생토록 ‘도(道) 닦던’ 나보다 열 살 위의 둘째 형님의 5남매 중 막내 조카의 다음과 같은 어릴 적 회상에서처럼 말이어라.
“걸음마도 하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시골집 마루에서 혼자 뒹굴며 온종일 놀던 때가 있었어요. 엄마는 장에 가시고. 햇빛의 색깔과 촉감이 달랐어요. 아침의 햇살과 한낮의 더운 기운 그리고 저녁에 지는 해의 스며드는 느낌이. 구름과 바람, 하늘과 별과 달, 새와 벌레 소리, 주위의 모든 것이 나 자신과 분리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난 조금도 무섭다거나 외롭다는 것을 모르고 그냥 즐겁고 편안했어요. 또 좀 컸을 때였어요. 보리밭 옆 풀숲에 깔아 논 포대기에서 일어서다간 넘어지고 몇 걸음 걷다간 넘어지고 하면서 길을 따라 언덕배기까지 아장걸음을 했었나 봐요. 그때 내 키보다 큰 보리 줄기들이 흔들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어요. 솨, 솨 하는 소리도 들리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하나의 장엄한 ‘황금나무숲’이 내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어요. 하늘과 땅, 세상천지가 다 함께 웃음소리를 내며 춤을 추는 듯했어요. 나도 한가지로 어우러져 온 우주와 더불어 흥겨웠던 것 같아요.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듣고 본 아니 체험한 대자연의 음악이며 교향시였어요. 그때 그 황홀했던 기분과 느낌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어요.”
마치 어떤 스님의 얘기 같이 말이다. 산속으로 나 있는 오솔길을 가다가 그 주위의 경관이 너무도 아름다워 지필묵으로 온 정성을 다 기울여 거의 완벽하도록 그대로 그려 놓고 보니 그 그림에는 생명이 없더란다. 산골짜기 시냇물 소리도, 솔내와 풀꽃 향훈도, 그 아무런 정취도 없어 절망 끝에 스님께서는 그 그림을 찢어버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렇다면 이것이 바로 내 조카가 말하듯이 석가모니가 처음과 마지막으로 하셨다는 말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그 참뜻이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돌아가 돌아갈거나 원점으로!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칼 융(1875-1961)은 선사시대로부터 지금의 미국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주에서 농사짓고 살아온 토인부락을 뜻하는 푸에플로란 아메리칸 인디언촌으로 여행 중 한 추장을 만났다.
“당신은 아시오? 백인들이 우리 눈에 얼마나 잔인하게 보이는지. 입술은 얇고 콧날은 날카로우며 얼굴은 밭고랑 같이 주름지고 뒤집혀 있지 않소. 눈으로는 무엇인가를 노려보며 늘 찾고 있단 말이오. 도대체 무엇을 찾는 것이오? 백인들은 언제나 뭘 원하고 항상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소. 백인들이 무엇을 그토록 탐내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오. 우리가 보기에는 백인들이 미친 것 같소.”
“왜 그렇게 백인들이 미쳤다고 생각하시오”
“다들 그러는데 백인들은 머리로 생각한다고 합디다”
“아니 무슨 말이오.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지 당신들은 무엇으로 생각한다는 말이오?”
“우리는 가슴으로 생각한다오”
1990년 나온 ‘가슴으로 하는 생각’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루이스 헤이(1926-2017)는 책 서두에 이 책을 ‘당신 가슴에 바치노라’며 이렇게 적었다.
“우리 가슴은 모든 힘의 중심 사랑의 원천이다. 이 가슴에서 우리 생각의 무지개 떠오를 때 우린 쉽게 힘 안 들이고 어떤 기적도 일으키고 뭣이든 창조할 수 있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빌건대 당신도 이 무궁무진한 힘의 신비로운 샘물을 이제 지금 당장 거침없이 뿜어내고 아낌없이 뽑아 쓰시라.”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는 “학생이 배울 준비가 되는 순간 스승이 나타난다.”라는 노자(老子)의 말을 원용,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내가 찾는 것은 이미 다 내 안에 있다.”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준비가 되면 우리는 필요한 모든 도움을 다 얻게 된다.”
“나의 무한한 삶에서 모든 건 다 완전무결하고 삶은 항상 변하고 있다.”
이를 내가 한 문장으로 요약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 삶의 천지조화 무궁무진을 믿을 수밖에 없어라.” 아, 그래서 나는 열 살 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바다’라는 동시를 하나 지어 지난 80여 년을 두고 지금껏 밤낮으로 주문처럼 외어 왔으리라.
바다
영원과 무한과 절대를
상징하는 신의 자비로운
품에 뛰어든 인생이려만
어이 이다지도 고달플까
애수에 찬 갈매기의 꿈은
정녕 출렁이는 파도 속에
있으리라
인간의 마음아
바다가 되어라
내 마음 바다가 되어라
태양의 정열과
창공의 희망을 지닌
바다의 마음이 무척 부럽다
순진무구한 동심과
진정한 모성애 간직한
바다의 품이 마냥 그립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
The Sea
Thou symbolizing eternity
Infinity and the absolute
Art God.
How agonizing a spectacle
Is life in blindness
Tumbled into Thy callous cart
To be such a dreamy sod!
A dreamland of the gull
Of sorrow and loneliness full,
Where would it be?
Beyond mortal reach would it be?
May humanity be
A sea of compassion!
My heart itself be
A sea of communion!
I envy Thy heart
Containing passions of the sun
And fantasies of the sky.
I long for Thy bosom
Nursing childlike enthusiasm
And all-embracing mother nature.
Although a drop of water,
It trickles into the sea.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하루는 하늘을 열심히 쳐다보며 길을 걷다가 시궁창에 빠지는 것을 본 하녀가 웃음을 터뜨렸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철학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철학자들이란 그 해답은 모르지만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가 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철학자일 수밖에 없다면 나 또한, 한두 가지 의문을 품어보리라. 결코, 정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수수께끼 중에서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지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랑과 섹스, 성의 진실에 대해 말이다.
몇 년 전 보도된 한 미혼모의 증언이 있다. 12살이던 2004년 멕시코 시市에서 납치당한 후 성매매를 강요당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30명씩 4년간 4만 3200번이나 강간당했다고 칼라 하신토(당시 23)는 CNN에 밝혔다. 목표와 숫자를 세우지 못하거나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싶다고 하면 구타가 잇따랐고, 1년쯤 지나 13살이던 때 한 호텔에서 손님을 받고 있는데 경찰이 호텔을 급습해 손님을 쫓아낸 일이 있었다. 하신토는 자신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에게 음란한 포즈를 취하게 하며 이를 비디오로 촬영했다. 미성년자인 그녀가 구해달라고 울고불고 매달려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살이던 2007년에는 뚜쟁이와의 사이에서 딸도 한 명 낳았으나 뚜쟁이는 딸마저도 그녀를 옥죄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녀가 할당된 손님 수를 채우지 못하면 딸을 해치겠다고 위협했다. 하신토는 2008년 멕시코 경찰의 인신매매 일소 작전으로 4년에 걸친 성매매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성매매 일소를 위한 싸움에 앞장서고 있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 세계인권소위원회에서 인신매매의 피해에 대해 증언했고, 그녀의 증언은 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유하도록 하는 하원 결의안 통과에 도움이 됐다.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인신매매 근절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것이 한 소녀의 수난기라면 중세 유럽의 교회 성당 성가대 소년들은 소프라노 음성을 유지하기 위해 변성기 전에 거세당했고, 노래를 잘할 수 없게 되면 남창男娼 노릇밖에 다른 생활수단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12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한번 출전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십자군 기사들은 나 이외의 모든 놈이 내 여자에게 접근을 못 하도록 하겠다는 지극히 단순 무식한 욕망에서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야 한다는 의미로 자신의 아내나 애인에게 정조대를 채우는 것이 대유행이었다고 하지 않나.
오늘날에도 아프카니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지역에서는 딸이든 누이든 아내든 엄마든 여자가 자유연애를 하거나 강간을 당하면 그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그 피해자 남자 가족들이 ‘명예살인’을 자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는 어린 아동들까지 지하드라 불리는 성전이나 부족 간 전투에 동원해 전사나 자살폭탄 테러리스트로 희생시키고 있다.
이처럼 여호와니 알라니 하는 신의 이름을 빙자한 살육지변과 ‘사랑’이란 미명하에 성차별과 성폭행이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저질러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또는 사회주의다 하는 인위적인 이념 이데올로기에 세뇌되고 중독되어 진정한 사랑과 인성을 상실해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생의 마지막에 남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나는 비즈니스업계 성공의 최정상에 올랐다. 사람들 보기엔 내 인생은 성공의 표상이다. 하지만 일 외엔 네겐 별 기쁨이 없다. 부富란 내게 익숙한 일상사일 뿐이다. 지금 병상에 누워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이 순간, 그동안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던 사회적인 인정과 부富는 내가 직면한 죽음 앞에서 희미한 그림자로 그 의미가 없어짐을 깨닫는다. 어둠 속에서 난 생명 연장 기구의 초록색 빛을 보고 웅웅거리는 기계음을 들으면서 죽음의 신 저승사자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난 알게 됐다. 충분히 살 만큼 부를 쌓았다면 부와는 무관한 걸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부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면 그건 어쩜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그도 아니면 젊은 날의 꿈, 끝없이 부를 추구하다가는 나처럼 삐뚤어진 인간이 되고 만다.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니고 가슴 속에 사랑을 느끼도록 신神은 우리에게 감성을 주셨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재산을 난 갖고 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사랑으로 키운 아름다운 기억들뿐이다.
이런 기억들이야말로 언제나 너와 함께하고 네가 버틸 힘과 희망의 빛을 주는 진정한 보배이다. 사랑엔 거리가 없고, 삶엔 경계가 없다. 가고 싶은 데로 가고, 오르고 싶은 대로 오르라. 모든 것이 네 가슴 속에 네 손 안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무엇일까? 병상이다. 넌 네 차를 운전하고 널 위해 돈 벌어 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어도 너 대신 병을 앓아 줄 사람은 없다. 잃어버린 물질은 찾을 수 있어도 한 번 잃으면 되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곧 ‘생명’이란 것이다.
사람이 수술실에 들어갈 때 그가 절실히 깨닫는 게 있다. 그가 아직 다 읽지 못한 한 권의 책이 있다는 것을. 다름 아닌 ‘건강한 삶의 독본’이다. 우리가 현재 인생 어느 시기에 있든 간에 우리 인생무대의 막이 내리는 시점을 맞게 된다. 뭣보다 가족 간의 사랑을, 부부간의 사랑을, 친구 간의 사랑을 가장 소중히 여기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하고, 다른 사람을 귀히 여기라.
아, 이것이 우리 모든 코스미안의 진정한 삶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