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유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다. 그곳에서 깨복쟁이 친구들과 노닐면서 부모와 친구, 이웃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잠든 곳이기도 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골을 가끔 내려간다. 도시적인 일상 탈출에서 만나는 장소, 고향이면서 지금도 그 자리에 큰 변화 없이 자리한 농가가 있고, 내면에 잠재된 존재이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골집은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단순한 고향과 풍경 그 너머의 것으로 다가온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아파트와는 다소 이질적이면서 또한, 삶의 저변에 깔린 기억과 감각들이 겹친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향 집은 나의 체험적 요소와 서정적인 향수가 함께 살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감성이 함께 겹친 공간, 바로 나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이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으로, 일상적 공간과는 다른 독특한 기능과 의미를 가진 공간을 의미한다. 그리스어로 '다른'을 의미하는 '헤테로(Hetero)'와 '장소'를 의미하는 '토피아(Topia)'가 결합된 용어이고, 일상 공간과는 다른 규칙과 역할이 적용되는 특별한 공간을 뜻한다. 푸코는 이러한 공간은 때론 현실에서 비정상적 행위나 일탈적인 활동 등이 가능한 장소로 설명했다. 한마디로 그 어떤 규범을 잠시 벗어나게 하는 일상탈출의 공간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사회의 다양한 맥락과 연결된 특성을 지닌 공간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만, 늘 그 공간에 살면서 또 다른, 공간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비록 그 꿈이 멋진 여행일 수도 있고, 때론 가혹한 현실일 수도 있다.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간인 유토피아적 개념과 다른 현실에 존재하는 유토피아이다.
이렇듯,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평소와 다른 공간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일상의 삶을 벗어나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곳이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경험하게 하면서 사회적인 가치를 다시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두 세계나 상황이 서로를 비추며, 각기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현실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현실과는 다소 떨어진, 질서 속의 무질서라든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지진 공간.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회적인 현실과는 좀 더 떨어지면서 여전히 지금의 현실로 통하는 공간이다. 푸코의 말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코스모스적인 질서가 유지되는 기존의 유토피아를 해체한다고 한다.
우린,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 살면서도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떤 구속과 감시와 익숙한 질서와 체제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누구든 살아가는 체제의 질서에 익숙할 수밖에 없기에 자기만의 방식대로 살기 힘들기에 독창적 사유가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공간이 헤테로토피아이다. 글을 쓰는 작가나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언어와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고, 보다, 깊은 사유와 의미를 찾아야 하기에 자신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이 바로 현실 속 다른 공인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이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느끼고 가슴에 와닿지만, 시골집은 나에게는 헤테로토피아 의 장소이다. 평소에 살고 있는 현실 속 공간의 집을 지우고, 중화시키며 정화해 주는 장소로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푸코는 아래와 같이 공간을 3개의 범주로 나눴다.
“호모토피아는 현실적인 공간이고,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공간, 헤테로토피아는 자기만의 특이한 공간이 있다. 호모토피아(homotopia)인 현실적인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의 공간으로, 여러 가지 규칙들 속에서 사람들이 일상을 영위하는 세계이다. 유토피아(utopia)는 비현실적인 공간이자 이상적인 공간이다. 실재하지 않는 상상력의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꿈꾸는 공간이다. 약속의 장소이자 미완성의 현실태라고도 한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일상을 영위해 가는 세계로서의 장소이긴 하지만, 일상적 공간과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공간이다. ”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