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박목월과 조지훈의 화답시 읽기

신기용

1. 들어가기


화답시(和答詩)는 “다른 사람이 지은 시(詩)에 응하여 대답하는 시(詩)”이다(《우리말샘》). 박목월과 조지훈은 시를 통해 교유하며 화답했다. 
 

대표적인 예로 「완화삼」과 「나그네」가 있다. 조지훈은 「완화삼」을 박목월에게 헌정했고, 박목월은 이에 화답하여 「나그네」를 조지훈에게 헌정했다. 두 시 모두 『청록집』에 실렸고, 전통적 운율과 향토적 정서를 공유한다. 「완화삼」의 부제 ‘목월에게’, 「나그네」의 부제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지훈’은 그 화답 관계를 분명히 보여 준다.
 

박목월의 「청노루」와 조지훈의 「피리를 불면」은 자화산(紫霞山)을 매개로 서로를 화답한 시로 추정할 수 있다. 명시적인 근거는 없지만, 상호보완적인 요소를 분석하여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 글은 박목월과 조지훈이 주고받은 시를 중심으로, 그들이 시를 통해 교감하고 이상향을 함께 그려 낸 방식을 ‘읽기’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특히 「완화삼」과 「나그네」, 「청노루」와 「피리를 불면」을 통해 두 시인의 시적 공명과 이상적 정서를 짚어 본다.

 

2. 「완화삼」과 「나그네」 읽기

 

차운산 바위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理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고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냥하여
달빛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조지훈, 「완화삼(玩花衫)」 전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청록집』, 을유문화사, 1946, 56-57쪽.


조지훈은 「완화삼」에서 전통적 7·5조 운율을 바탕으로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 세계를 그려 낸다. 그는 “차운산 바위우에 하늘은 멀어 /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는 시구로 고적한 자연 정서를 그리며, 낙동강 칠백리의 긴 물길과 나그네의 감정을 겹쳐 표현한다. 특히 ‘긴 소매’는 정한의 이미지일 뿐 아니라, 감성적 풍류인의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3연 1행의 ‘나그네 긴 소매’는 낙동강 칠백리의 그 긴 정한(情恨)의 거추장스러움, 그 어진 마음이 거미줄이 되어 나비 같은 이 시인을 구속한다는 뜻” (심재언, 『청록파 시평론』, 민중서각, 1988, 146쪽) 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목월은 이에 응답해 「나그네」를 지었다. 그는 조지훈이 만들어 낸 정서적 분위기를 이어받아, ‘강나루 건너 밀밭 길’,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라는 상징을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정한을 변주한다. 비록 일부 평론가는 이 시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제로는 자연과 인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정서적 응답에 가깝다.


박목월은 조지훈의 고적한 자연과 감정에 응답하면서, 보다 서정적이고 함축적인 상징을 통해 나그네의 여정을 그려 낸다. 두 시는 서로를 모티프로 삼아 상호보완적 정서를 구성하며, 시적 공명을 실현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전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앞의 책, 16-17쪽.


박목월은 조지훈이 보낸 「완화삼」의 화답으로 「나그네」를 조지훈에게 헌정했다. 박목월의 「나그네」는 함축의 미가 흐르는 전통적 7·5조 운율의 상징시이다. “1연 1행의 강나루는 현실적으로 낙동강이고 상징적 의미는 이제 경찰이 지켜 주니 밀 이삭이나 부벼 먹고 연명할 수가 있다는 뜻이다. ‘길은 외줄기 / 남도 삼백리’에서 외줄기는 단독 정부를 말한다. ‘술 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놀’은 그대로 남로당의 조직이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많이 넘어간 형편을 말한다.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는 하늘과 인간의 조화가 그림과 같이 그려지고 그냥 밀고 나가자는 뜻” (심재언, 앞의 책, 89쪽)이다.
 

‘강나루’,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 등은 해방 이후 시대적 정황을 느낄 수 있는 배경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정치적 코드나 특정 이념적 지향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인의 의도가 아닌 비평가의 과잉 해석일 가능성이 있다. 박목월이 조지훈의 시 「완화삼」에 화답한 시가 「나그네」이므로 당연히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박목월의 「나그네」는 단순한 응답이 아니라, 조지훈의 시에 담긴 정한을 받아 안아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 시적 회답이다. 조지훈이 자연 속에서의 고적함과 감정의 깊이를 그려 냈다면, 박목월은 어떤 방식으로 그 감정에 화답했을까?

 

3. 「청노루」와 「피리를 불면」 읽기


박목월의 「청노루」와 조지훈의 「피리를 불면」은 자화산(紫霞山)을 매개로 서로를 화답한 시로 볼 수 있다. 이 시들에서 자화산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의 공간이다. ‘보랏빛 노을이 드리운 산’이라는 어원을 가진 자화산은 현실을 넘어선 고요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상징한다.
 

박목월은 「청노루」에서 청운사와 자화산, 청노루의 눈빛, 구름과 봄의 정경을 통해 자연 속의 고요함과 생명력을 조화롭게 그려 냈다. 그는 느릅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장면, 열두 구비를 도는 구름을 청노루의 맑은 눈으로 바라보며 이상적 자연 세계를 형상화했다.
 

조지훈은 「피리를 불면」에서 ‘다락에 올라 피리를 불면’, ‘萬里 구름길에 학이 운다’는 시구로 자연과 내면의 감정을 조화롭게 묘사한다. 그는 피리 소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자연에 실어 보내고, ‘자화산 열두 봉우리’를 바라보며 평화롭고 애잔한 내면세계를 드러낸다. 싸리나무 새순을 뜯는 사슴조차 우는 장면에서 자연과 인간, 생명과 감정이 하나로 어우러진 정서를 보여 준다.
 

두 시인은 ‘자하산’이라는 이상향의 공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에 대한 감각과 정서를 시적으로 교류한다. 이들은 시를 통해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가며, 정서의 공명을 구현한다.
 

특히, 박목월 시 「청노루」에 나오는 청운사(靑雲寺)와 자하산(紫霞山)은 고요한 옛 절과 그 주변 자연이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의 평화와 순수함, 생명력과 신비를 상징한다. 다음으로 두 편의 시를 읽어 본다.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 느름나무속ㅅ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 청노루맑은 눈에 도는 구름
― 박목월, 「청노루」 전문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앞의 책, 12-13쪽: 정호운 외 5인, 『고등학교 문학』, 천재교과서, 2025, 19쪽.
 
박목월의 「청노루」는 그 자체가 한 편의 정갈한 수묵화 같다. 시가 가진 고요한 격조와 깊은 여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정적미(靜的美)의 대표적 사례이다.
 

청운사(靑雲寺)는 푸른 구름(청운)을 이름으로 한 사찰이라는 뜻으로, 낡은 기와집으로 표현해 옛 고요한 산사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자하산(紫霞山)은 위에서 말했듯, 실제 산 이름이 아니라, ‘보랏빛 노을이 드리운 산’이라는 시적인 이미지이다. 자연 속 이상향의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봄눈 녹으면 // 느름나무 / 속잎 피어 가는”은 겨우내 덮였던 눈이 녹고, 느릅나무 속에서 새싹이 돋는 봄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열두 구비를 // 청노루 / 맑은 눈에 / 도는 / 구름”은 ‘열두 구비’의 산길의 굽이를 뜻한다. 그 산길을 청노루의 맑고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며, 구름이 산을 감도는 모습이 어우러진다. ‘청노루’는 순수하고 맑은 눈빛을 가진 산짐승으로, 자연과 하나 된 순수함과 신비로움을 상징한다.

 

다락에 올라서
피리를 불면
萬里 구름길에
鶴이 운다
이슬에 함초롬
적은 풀잎
달빛도 푸른 채로
산을 넘는데
물 우에 바람이
흐르듯이
내 가슴에 넘치는
차고 흰 구름
다락에 기대어
피리를 불면
꽃비 꽃바람이
눈물에 어리어
바라뵈는 자화산(紫霞山)
열두 봉우리
싸리나무 새순 뜯는
사슴도 운다
― 조지훈, 「피리를 불면」 전문 위의 책, 49-51쪽.
 

‘다락’은 시인의 내면 깊은 곳, 혹은 고요하고 높은 곳을 상징한다. 피리를 부는 행위는 감정을 표현하는, 혹은 자연과 하나 되는 순간을 나타낸다. ‘만리(萬里) 구름길’과 ‘학(鶴)’은 넓은 자연과 고요함, 그 자연의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슬에 함초롬 / 적은 풀잎”, “달빛도 푸른 채” 같은 표현은 섬세하고 청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차고 흰 구름”은 시인의 순수한 감정이나 마음의 평화를 상징한다. 마지막에 “싸리나무 새순 뜯는 / 사슴”이 운다는 묘사는 자연과 생명의 연약함과 순수함, 그 안에 깃든 슬픔을 암시한다. 전체적으로 시인은 자연과 내면의 감정을 섬세하고 맑게 표현한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애잔함과 평화를 그려 낸다.
 

두 시 모두 자연의 순수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그려 낸다. “열두 구비”(「청노루」)라는 산길의 굽이와 “열두 봉우리”(「피리를 불면」) 같은 구체적인 자연의 요소를 통해 자연 속에서 경험하는 삶의 깊이와 변화(새싹이 돋고, 동물이 움직이는 모습 등)를 담고 있다. 시인이 머무는 ‘다락’과 ‘청운사’ 같은 공간은 내면의 평화와 명상, 이상을 추구하는 장소로 기능하다.
 

따라서 자화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시인이 꿈꾸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자연과 내면세계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상향은 자연과 인간, 생명과 정서가 하나로 어우러진 평화롭고 순수한 세계이다. 
 

이처럼 박목월과 조지훈은 시를 통해 서로에게 응답하고, 그 안에서 자연과 이상을 함께 노래했다. 두 시인의 시는 단순한 교유를 넘어, 당대의 정서와 한국적 자연미, 그리고 문학적 이상을 공유한 공명의 기록이다.

 

4. 화답시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박목월과 조지훈의 화답시는 단순한 교유를 넘어서, 서로의 시와 맥락을 끌어안으며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한 바와 같이, 텍스트는 독립적이지 않고 언제나 다른 텍스트와 얽혀 있다. 두 시인은 명확하게 서로를 참조하고 인용하며, 시적 심상과 정서를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한다.
 

예컨대, 조지훈이 「완화삼」에서 그리고 있는 낙동강 칠백 리는 박목월이 「나그네」에서 다시 다루는 배경이 된다. 박목월은 그 물길을 따라 나그네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재현하며, 이전 텍스트를 확장하고 변주한다. 이는 시 간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새로운 해석 공간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나. 시적 대화(Poetic Dialogue)
화답은 단지 시의 형식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정서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응답하는 대화 행위이다. 바흐친의 ‘대화주의’ 이론처럼, 시인은 타자의 말에 반응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만든다. 박목월과 조지훈은 각자의 시에서 고적함, 향토성, 이상향 같은 정서를 중심으로 서로의 언어에 응답하고 있다.
 

조지훈이 「완화삼」에서 고요한 자연과 인간의 정한을 노래했다면, 박목월은 「나그네」에서 그 정한을 이어받아 남도의 길을 떠나는 존재로 변주한다. 이처럼 두 시는 서로 다른 음성을 내면서도 하나의 공통된 정조 위에서 다성적 대화를 펼친다.

다. 시적 공동체와 상징망의 형성
 

두 시인은 단지 친구 이상의 문학적 동지로, 시를 통해 정서를 나누고 세계를 구성하는 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들은 자화산, 청운사, 술 익는 마을, 열두 구비와 같은 이미지들을 공유함으로써, 독자가 그들의 시적 세계를 하나의 상징망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러한 상징망은 단순한 반복이나 오마주가 아니라, 정서적 이해와 응답을 기반으로 한 의미의 확장이다. 두 시인의 화답은 시를 매개로 감정과 사유가 공명하는 공동의 공간을 창조한다.


5. 나가기: 시적 화답의 의미론적 확장


박목월과 조지훈의 화답시는 단지 형식적 응답이 아니라, 시를 통한 대화이자 공동의 정서를 길어 올리는 ‘공명의 시학’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전통 운율에 근거해 향토성과 이상향을 공유하면서도, 시인을 넘어선 텍스트 간 대화, 시대의 정서를 감싸는 상징망을 구축했다. 
 

따라서 이들의 시는 단절이 아닌 연속, 고립이 아닌 공생의 공간을 보여 주는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상호텍스트적 실천이라 평가할 수 있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09.10 09:09 수정 2025.09.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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