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시기에 쓴 『난중일기』에는 매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수를 일일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수백 명에 이를 것이다.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친인척 관계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과거 인물들의 친인척 관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뒷조사(?)를 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종종 상당히 흥미로운 작업이 되기도 한다.
『난중일기』에는 등장인물이 매우 많으므로 이 많은 사람들을 다 살펴볼 수는 없다. 또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난중일기』에 자주 언급된 인물들 가운데 몇 사람의 친인척 관계만을 다룬다.
(1)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 1553~1610)과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1546~1608)
임진왜란 초기 방답첨사를 지낸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과 이름의 구음이 똑같아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조선의 제3대 국왕 태종의 장남인 양녕대군의 6대손이다. 『전주이씨양녕대군파대보』에 따르면 이순신(李純信)의 둘째 아들 이숙(李琡)은 성산배씨 배흥립(裵興立)의 딸과 혼인하였다.
배흥립은 임진왜란 초기 흥양현감을 지냈으며, 충무공과의 친분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성산배씨족보』에 따르면 배흥립은 성산배씨 화당공파(花堂公派) 파조 배규(裵䂓)의 6대손으로서 그의 둘째 딸이 완산군(完山君-무의공의 봉호)의 아들 이숙(李淑)과 혼인하였다. 비록 『성산배씨족보』는 이숙(李琡)의 이름을 오기하였지만, 무의공 이순신과 배흥립이 사돈 관계를 맺은 사실을 명확히 기록하였다.
『전주이씨양녕대군파대보』에 따르면 이숙의 생년은 기묘년(1579년)으로서 그는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에는 만 13살이 된다. 혼인하기에는 매우 어린 나이이므로 임진왜란이 끝날 즈음에나 혼인을 치렀을 것이다. 무의공 이순신과 배흥립이 임진왜란이라는 힘겨운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서로 친분이 생겨 사돈 관계를 맺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혼인은 먼저 두 집안 사이의 사회적 또는 경제적 지위 등을 고려한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신랑과 신부의 부모들 사이의 친분 관계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현재이건 과거이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확실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느껴진다.

(2)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 1546~1608)과 낙안군수 신호(申浩, 1539~1597)
흥미롭게도 배흥립은 임진왜란 초기 낙안군수를 지낸 신호와도 사돈 관계를 맺었다. 신호는 정유재란 시기 남원 교룡산성(蛟龍山城)의 수어장(守禦將)으로서 남원성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인물이다. 『평산신씨대동보』에 따르면 신호는 평산신씨 밀직공파(密直公派) 파조 신아(申雅)의 6대손으로서, 신호의 첫째 아들 신천기(申天紀)의 셋째 딸이 성주배씨 배시망(裵時望)과 혼인하였다.
『성산배씨족보』에 따르면 배시망은 배흥립의 첫째 아들로서 평산신씨 신천기(申天紀)의 딸과 혼인하였다. 『성산배씨족보』는 또한 신천기의 아버지 신호의 이름도 밝혀 놓았다. 『성산배씨족보』에 따르면 배시망의 생년은 병자년(1576년)이고, 배시망의 부인 신씨의 생년은 을해년(1575년)이며, 배시망과 부인 신씨 사이의 아들 배명전(裵命全)의 생년은 갑오년(1594년)이다. 이들 세 사람의 생년을 고려하면, 배시망과 부인 신씨는 임진왜란 발발 전후로 혼인한 듯하다.
배시망과 부인 신씨의 혼인 또한 배흥립과 신호의 친분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신천기(申天紀)'의 이름은 『난중일기』 1594년 8월 25일에도 등장하는데, 신호의 아들이 맞는 것 같다.
(3) 영등포만호 우치적(禹致績, 1560~1628)과 전라우수영 우후 이정충(李廷忠, 1553~미상)
우치적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수영 휘하 영등포만호로 활약한 인물로서, 칠천량해전 때는 순천부사로서, 노량해전 때는 조방장으로 참전하였다. 이정충은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 1561~1597)를 보좌하는 관직인 전라우수영 우후로 활약한 인물로서 「우수영선생안」에 따르면 1592년 2월 ~ 1599년 4월까지 임진왜란 시기 내내 전라우수영 우후를 지냈다. 우치적과 이정충 두 사람 모두 『난중일기』에 수십 차례 등장하는 인물이다.
『평창이씨세보』에 따르면 이정충은 평창이씨 익평공파 파조 이계남(李季男)의 고손자이며, 이정충의 셋째 딸이 단양우씨 우치적(禹致績)과 혼인하여 아들 우홍서(禹弘緖)를 낳았다. 『단양우씨족보』에 따르면 우치적은 부인 청주한씨와 혼인하여 아들 우진서(禹振緖)를 두었는데, 여기에는 평창이씨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평창이씨세보』에 기록된 우홍서(禹弘緖)와 『단양우씨족보』에 기록된 우진서(禹振緖)가 같은 '서(緖)'자 돌림인 점을 고려하면, 『평창이씨세보』의 기록이 거짓으로 생각되진 않는다. 아무래도 이정충의 셋째 딸이 우치적과 혼인한 사실이 족보에서 누락(이정충의 셋째 딸이 서녀이거나 또는 우치적이 혼인을 두 번 하는 등의 이유 때문에)된 것 같다. 어쨌든 우치적과 이정충의 친인척 관계도 친분 관계에서 비롯되었을 듯하다.
지금까지 『난중일기』에 언급된 몇몇 인물들의 친인척 관계를 살펴보았다. 간략히 세 건만 살펴보았지만, 실제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친인척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이러한 관계는 역사적 사건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배경 가운데 한 요소이므로 중요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위에서 서술한 내용 가운데 흥양현감 배흥립과 낙안군수 신호의 친인척 관계는 『이순신과 함께한 명량해전 참전자 연구, 그 문중과 혼맥』(박갑로, 도서출판 한빛, 2024)라는 책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아마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문과 친인척 관계를 연구한 자료는 이 책이 가장 상세할 것이다.
[참고자료]
『전주이씨양녕대군파대보(全州李氏讓寧大君派大譜)』
『성산배씨족보(星山裵氏族譜)』
『평산신씨대동보(平山申氏大同譜)』
『평창이씨세보(平昌李氏世譜)』
『단양우씨족보(丹陽禹氏族譜)』
해남문화원, 『해남문헌집』, 「우수영선생안(右水營 先生案)」, 1989
박갑로, 『이순신과 함께한 명량해전 참전자 연구, 그 문중과 혼맥』, 도서출판 한빛, 2024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