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호등을 건너다, 이제 막 제 발로 걷기 시작한 아이가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땅바닥에 박힌 보도블록 위를 통통 뛰면서 블록 사이에 핀 이끼를 피해 미로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막 어머니가 끄는 유아차를 벗어난 모양인데, 혼잣말을 떠들며 신나게 발을 굴리는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과는 딴 세상 사람 같았다.
이제 막 끝나가는 여름을 벗지 못한 아이의 분홍색 샌들을 지켜보며, 작은 발에 밟히지 않는 새파란 풀들이 어쩐지 저 아이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목에 핀 풀무덤인가 보다 싶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치맛자락이 당겨지는 것이 불편한지 아이의 어미는 풀풀 댔지만, 아이는 이미 딴 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다.
‘눈을 감고 상상해 보세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고 할 때 습관처럼 듣는 말은 사실 저 아이에겐 가당치 않다. 이미 눈앞에 모든 것이 우리가 선 신호등 바깥으로 가는 통로일 테니. 어른이 되면 이런 경험들은 가물가물해진다.
그렇게 고생하는 치마를 다시 부여잡고,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어미의 다른 손에는 오늘 저녁 찬거리가 검은 봉지 안에 들려있다. 바스락바스락. 모녀와 함께 나란히 건너며,검은 봉지 안에 푸른 이끼보다 더 크게 자랄 저 아이의 생명이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아이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이의 가족들 저녁 자리까지 상상하며, 나도 모르게 웃겼다.
어른이 되면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은 가물가물해지니.
고백하자면, 이건 사실 내겐 드문 일이 아니다. 몇 개월 전 아주 몰입해서 쓴 짤막한 미국 서부 배경 소설이 나를 실제 미국 서부에 데려다 놓은 일은 사실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터무니없는 상상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해 마지않던 모든 일은 사실 모두 이루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작과 이별, 서울 상경, 대학원 입학 등등. 사실 더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읍읍-
어른이 되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대부분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는데. 나는 이해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공감할 수 없다. 누군가의 강한 몰입과 상상은 실재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 상상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는다.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만 두 눈 똑바로 뜨고 그저 받아들이라는 듯이.
하지만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뒤집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거대한 몰입을 현실로 만든 경험을 한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사실 세상에 놓여있는 규칙 같은 것은, 내가 건너간, 그다음에 해석되는 것뿐이라는 걸.
오랜만에 칼럼을 다시 써낸다. 강하고 달콤한 꿈을 꾸느라 많이 바빴다. 여전히 내 꿈에 해석틀을 들이미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속하지 않으려 다분히 조심하고, 오늘도 말을 아낀다. 사실 우리는 눈을 감고 상상해 보라는 말보다는, 너무 나쁘고, 지나친 것을 상상하지 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가 이끼를 밟아 죽이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마저 쉽게 허무는 분홍색 샌들을 신은 아이는, 엄마와 함께 오늘 맛있는 저녁을 먹었을 것이다. 분명히.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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