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문단에서는 마침표를 생략하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몇몇 문예지에서는 시인이 마침표를 찍어서 원고를 제출할 경우, 편집자가 전화하여 마침표를 생략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잦다. 때로는 반복적으로 설득한다. 나아가 마침표를 제거하지 않으면 게재할 수 없다며 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인이 표현의 일부로 신중히 선택한 마침표에 대해 형식적 잣대를 들이대는 현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시 창작이 어떻게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마침표를 생략하는 현상 자체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이를 찍거나 생략하는 선택은 시인의 창작 의도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때로는 시의 정서나 리듬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과 신경림의 시집 『농무』는 마침표를 대체로 찍은 편이다. 일부 마침표 사용을 생략하여 의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가며 독자의 사유와 상상력을 확장해 나갔다. 반면에, 안도현은 『그리운 여우』에서 마침표를 생략하였다. 문장 종결 혹은 문법적 닫힘을 유예하는 듯한 열린 형식을 통해 다층적인 해석의 여지를 제공했다. 이러한 의도는 시 표현의 영역을 넓히는 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형식이 하나의 시적 전략으로 존중받는 수준을 넘어, 암묵적인 기준이나 유행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침표를 찍은 시가 ‘닫힌 시’로 평가받고, 여운이나 해석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져 가는 현실은 형식을 내용보다 우위에 두는 위험한 판단을 드러낸다. 형식이 자유로울 때 창작은 빛난다. 그것이 틀에 박히거나 강요로 굳어지면, 시인은 본연의 감각을 잃기 쉽다.
시의 여운은 마침표의 유무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시어 사이의 긴장, 이미지 간의 조응, 언어 배열의 정교함과 상징의 밀도 등, 언어적 구조 전체가 의미의 여지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황동규의 시집 『연옥의 봄』에는 마침표가 존재하며, 오규원의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모두 시어가 만들어 내는 긴장감과 이미지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단순히 문장 부호의 기술적 선택을 넘어, 시 창작의 언어적 전략과 철학적 입장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열린 결말(open ending) 역시 단순히 마침표를 지우는 것으로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결말을 유예하거나 변형하여 독자가 사유와 상상할 공간을 확보하는 언어적 전략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마침표를 생략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여운이 생기거나 열린 구조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시적 긴장을 회피하는 형식적 편법으로 기능할 위험도 있다. 마침표 생략은 열린 종결의 개념이지, 열린 결말, 열린 시의 개념이 아니다.
시의 완성도는 단일한 기호나 기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침표 하나도 시인은 의도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시 전체의 구조 속에서 정합성과 긴밀히 연결해야 한다. 마침표는 단순한 시각적 장식이 아니라, 언어 표현 행위의 일부로 기능해야 한다. 마침표를 생략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것이 하나의 미학적 당위로 굳어지는 순간, 시는 언어의 본질을 잃고 형식의 관습에 스스로 갇힐 위험에 처한다.
형식 실험은 언제나 시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그러나 그 실험은 내용과 필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외부 강요나 유행에 휩쓸려 확산하는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시 창작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고유한 작업이다. 언어적 감각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발현한다.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지울 것인가? 이는 개인의 선택이자 개별 시의 문제이다. 언제나 시인의 판단과 의도, 언어 구조에 의해 결정할 문제이다. 마침표는 때로 문장에 마무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의 여백을 호흡으로 변환하는 핵심 장치이다.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산문에서는 마침표가 문장의 구성 요소이므로 찍는 것이 좋다. 미학적 전략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생략이 가능하다. 실험성의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있지만, 산문 고유의 명료한 전달력과는 충돌할 여지가 있다.
오늘날은 탈경계 시대이다. 현대의 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언어의 경계를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묻는다. 무엇이 하나의 형식이며, 언제 그것이 습관이나 관습으로 전환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시가 지향해야 할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