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에 기록된 용어 '세물'의 의미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는 400여 년 전에 쓰인 책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당시 조선 중기에 사용되던 우리말은 지금의 우리말과 적잖은 차이가 있다. 4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차가 있으니 문법, 용어, 발음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난중일기』에 나타나는 용어를 살펴보면 지금의 용어와 의미가 다르거나, 더 나아가 그 의미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것들도 있다. 『난중일기』의 1592년 1월 1일에 등장하는 '세물(歲物)'이 바로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용어 가운데 하나이다. 다음은 용어 '세물'이 언급된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2년 1월 1일

 

병사(전라병사)의 군관 이경신이 와서 병사의 편지와 세물, 장편전 등 여러 물건을 납부하였다.

 

[원문] 兵使軍官李敬信 來納兵使簡及歲物長片箭雜物.

 

​위 기록은 『난중일기』에서 가장 처음 나타나는 일기의 일부 기록이다. 여기에 보이는 용어 '세물'의 의미에 대해 대부분의 『난중일기』 번역서는 '선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마 대표적인 『난중일기』 번역서인 노산 이은상의 번역서를 참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위 일기를 처음 보았을 때 '선물'이라는 설명이 조금 의아스럽다고 생각하였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도무지 '선물'이라는 설명을 납득할 수 없었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첫날 일기부터 고심거리가 생기니 나머지 일기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하였다.

 

​참고로 위 기록에 언급된 '장편전'은 '장전'과 '편전'을 함께 일컫는 말이다. '장편전'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종종 나타나는 당시의 보편적인 용어였다. 장전은 유엽전(柳葉箭) 또는 마전(磨箭)으로도 불리던 전투용 화살로서, 길이가 긴 화살 중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장전이라 불렸다. 편전은 통전(筒箭) 또는 애기살 등으로 불리던 짧은 화살로서, 단면이 U형인 통아(筒兒)라는 나무 대롱에 넣어서 발사하였다.

 

최근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장전과 편전을 비롯한 화살류가 자주 등장하여 이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편전'을 '긴 화살'이나 '길이가 긴 편전' 등으로 해석하는 『난중일기』 번역서도 있었다.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활쏘기 - 자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다시 이 글의 주제 '세물'로 돌아가서, '세물'이 '선물'이라는 설명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던 까닭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용어 '세물(歲物)'은 글자의 뜻으로 보면 '매년 무엇인가를 하는 물건'이라는 의미이다. 이에 비해 '선물'은 매년 해야 하는 물건이 아니다. '선물'은 좋은 일이 생겼거나 어떤 필요가 발생했을 때 등 비정기적으로도 할 수 있는 물건이다. 용어 '세물'의 글자 뜻은 '선물'의 의미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둘째, '세물'을 보낸 전라병사는 종2품 관직이고 충무공 이순신의 관직 전라좌수사는 정3품이다. 설 즈음에 선물을 보낸다면, 품계가 더 높은 전라병사가 전라좌수사에게 보내기보다는 그 반대가 되어야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당시 전라병사는 충무공보다 나이가 더 많은 최원(崔遠)이라는 인물이다. 최원은 『명종실록』에도 이름이 나타나고, 『선조실록』의 1592년 기사에는 '연로(年老)'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 『화순최씨세보』에 따르면 최원의 생몰년은 1529~1606년이다.

 

​셋째, 『난중일기』에 언급된 '세물, 장편전 등 여러 물건(歲物長片箭雜物)'이 '세물과 장편전 등 여러 물건'이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세물로서 장편전 등 여러 물건'이라는 뜻인지 모호하다. 장편전은 화살이므로 일종의 무기이다. 만약 전자의 의미이고 '세물'이 '선물'을 의미한다면, 선물을 무기와 같이 보낸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닌가? 후자의 의미도 마찬가지이다. 선물로서 무기를 보낸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넷째, 『난중일기』는 '세물'을 전달한 것을 '納'으로 표현하였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목재, 군량, 화살, 철 등 공공재를 전달하는 경우 대체로 ‘納’으로 표현하였다. 이에 비해 개인적인 물품을 전달하는 경우 ‘呈’, ‘進’, ‘獻’ 등의 표현이 사용되었다. '세물'이 '선물'을 의미한다면 이를 전달하는 것을 '納'으로 표현했을 것 같지 않다.

 

​다섯째, 조선시대에 개인적인 심부름은 주로 친인척, 노비, 아전 등을 시켰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살펴보면 충무공 또한 개인적인 심부름은 조카나 노비 등을 시켰으며, 공적인 물건은 주로 군관(軍官)을 통해 전달하였다. 『난중일기』에는 용어 '군관(軍官)'이 130여 차례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공적인 편지나 물건을 전달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세물'을 가져온 사람이 전라병사의 군관이었던 사실로 보아 '세물'은 '선물'이라기 보다는 공적인 물건으로 보인다.

 

위 의문점들에 대하여 거의 한 달 가까이 고민하다가 가까스로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였다.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시기 조정에 보낸 장계 가운데 하나인 「장송전곡급방물장」(1592년 12월 25일)이 그 해당 기록이다.

 

『임진장초』, 「장송전곡급방물장(裝送戰穀及方物狀)」

 

신이 따로 봉하여 진상하는 장편전 등의 여러 물건과 탄신일(선조의 생일), 동지, 설날을 위 방물의 진상도 정사횡과 본영의 진무 김양간에게 맡겨 의곡을 실은 배에 함께 실어 올려보내었습니다.

 

[원문] 臣所封別 進上長片箭等雜物 及誕日冬至正朝方物進上 鄭思竑及營鎭撫金良幹 一時準授 義穀所載船 同載上送.

 

위 장계의 기록은, 임진왜란 전란 중에 지방 선비들과 충무공 및 그 휘하 고을 수령들이 각자 준비한 진상물과 곡식을 모아 배편으로 보내는 일을 보고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조선시대 진상물 제도에 대해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는 관찰사,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 등의 지방 수령이 국왕에게 정기적으로 여러 가지 물품을 예물로 올려보냈다. 이는 공납의 일종으로서 보통 '진상(進上)'으로 불렸다. 진상의 명목은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연말과 연초에는 명일방물(名日方物)로서 토산물(方物) 등을 정례적으로 진상하였다(명일은 명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종실록』의 기사(252권, 성종22년-1491년 4월 19일 갑자 4번째 기사)에는 장편전이 명일(名日)의 진상물로 언급된 기록이 있다.

 

위 「장송전곡급방물장」의 기록은 충무공이 전쟁 시기에도 명일 진상물로서 장편전 등의 여러 물건을 올려보낸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진상물 등을 모아서 보냈으므로 그 분량이 적지 않아 선박을 이용하여 운반한 것으로 생각된다. 위 기록은 진상물을 '進上長片箭等雜物'로 표기하였다. 이는 『난중일기』에 언급된 '歲物長片箭雜物'이라는 표기와 거의 일치한다. 둘 다 충무공이 쓴 문구이므로 전자의 '進上'과 후자의 '歲物'이 같은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난중일기』에 언급된 '세물(歲物)'을 '진상(進上)'으로 바꾸어 보면, 위에서 고민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모두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자.

 

첫째, 용어 '세물(歲物)'은 '매년 무엇인가를 하는 물건'이라는 의미이다. '진상(進上)'은 매년 정례적으로 바치는 물품이므로 '세물'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조선시대 매년 대마도에서 오는 무역선을 '세견선(歲遣船)'으로 불렀는데, '세물'은 이와 비슷한 용례로 생각된다.

 

둘째, 전라병사(병마절도사) 최원 또한 매년 진상물을 올려보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그가 '세물'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낸 것은, 전라좌수영의 선박을 통해 진상물을 조정에 올려보내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셋째, 조선시대에는 장편전이 명일 진상물로서 조정에 바쳐졌으므로 『난중일기』에 언급된 '세물, 장편전 등 여러 물건(歲物長片箭雜物)'은 '진상물로서 장편전 등 여러 물건'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넷째, 『난중일기』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공공재 전달은 주로 ‘納’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세물'을 '진상'으로 해석하면 『난중일기』가 '세물'의 전달을 ‘納’으로 표현한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다섯째, 전라병사 최원은 군관을 통해 세물을 전달하였다. 군관이 가져온 물품 '세물'은 사적 물품인 '선물'보다 공적 물품인 '진상'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난중일기』에 언급된 용어 '세물'과 그 해당 내용은 언뜻 보기에 간단한 기록으로 생각되지만, '세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조선의 공납제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조선전기 공납제 연구』(박도식, 2011, 도서출판 혜안)의 내용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한가지 여담을 말해두어야 할 듯하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물'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한 달 가까운 시간을 고민하였다. 그 뒤 2020년경 한 책에서 세물의 의미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세물'을 '진상물'로 해석한 『난중일기』 번역서를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충무공 진중일기』(임기봉, 2007, 범우)라는 제목의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의 존재를 미리 알았다면, 상당한 시간을 절약하였을 것이었으므로 매우 속이 쓰렸다! 이 책은 지금 필자의 책장에 꽂혀있다. 『이충무공 진중일기』는 역자의 번역 방식이 독특하여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 책이다. 다만 이 책은 역사와 관련한 여러 가지 좋은 정보를 담고 있으므로 굳이 소개하여둔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민승기, 『조선의 무기와 갑옷』, 2004, 가람기획

강성문, 「조선전기 편전에 관한 연구」, 『학예지』 제4집, 1995,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박도식, 『조선전기 공납제 연구』, 2011, 도서출판 혜안

조성도 역, 『임진장초』, 2010, 연경문화사

임기봉, 『이충무공 진중일기』, 2007, 범우

『화순최씨세보(和順崔氏世譜)』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9.19 09:50 수정 2025.09.1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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