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서 배우는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역사는 그 자체로 가장 거대하고 엄중한 '삼일행'의 현장이다.

-위대한 스승에게서는 '태도'를 배우고, 반면교사에게서는 '성찰'을 배우며, 이름 없는 스승에게서는 '공감'을 배운다.

-'삼인행필유아사'는 역사를 어떻게 대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현재적 질문이다.

▲ AI 이미지 (제공: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안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

 

공자(孔子)가 남긴 이 말은 시대를 넘어 인간관계와 배움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로 여겨진다. 이 말의 진정한 울림은 단순히 '세 명 중 한 명'이라는 산술적 확률에 있지 않다. 그것은 내가 만나는 모든 존재로부터 배울 점을 찾으려는 겸손한 태도, 그리고 세상을 스승으로 삼으려는 열린 마음을 촉구하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한 사람은 선(善)함으로 나를 이끌고, 다른 한 사람은 불선(不善)함으로 나를 반성케 하니,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삼인행'의 지혜를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가 걸어온 거대한 궤적인 '역사'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역사는 그 자체로 가장 거대하고 엄중한 '삼인행'의 현장이다. 그 속에는 위대한 스승(善)이 있고, 처절한 반면교사(不善)가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미처 스승이라 부르지 못했던 이름 없는 스승(凡)이 함께 걷고 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이 세 종류의 스승과 함께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보는 행위이다.

 

첫 번째 스승은 '위대한 성취'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선다. 우리는 역사가 빚어낸 빛나는 인물과 그들의 시대를 통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배운다.

 

가장 대표적인 스승으로 우리는 세종(世宗)을 떠올린다. 그가 단지 뛰어난 군주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삼인행필유아사'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위대한 학습자였다. 세종은 신하들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앉아 일방적으로 명하는 대신, 경연(經筵)을 통해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밤낮없이 토론하고 질문했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집현전 학자들과 수없이 머리를 맞댄 일화는, 그가 '함께 걷는 이들'의 지혜를 얼마나 존중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반대하는 신하, 최만리(崔萬理)의 격렬한 상소마저도 묵살하지 않고 끝까지 토론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아가 그는 백성을 스승으로 삼았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을 편찬할 때, 그는 궁궐의 학자들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 각 도의 경험 많은 농부들을 직접 찾아 그들의 '살아있는 지식'을 구했다.

 

세종이라는 스승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순히 '애민'이나 '창의'가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배움이란 가장 낮은 곳의 소리까지 스승으로 삼는 '겸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이처럼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선(善)한 가치'를 향한 나침반을 제시한다.

 

두 번째 스승은 '처절한 실패'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선다. 이 스승은 우리에게 무엇을 경계하고 버려야 하는지 가르치는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우리는 종종 '삼인행'의 의미를 좋은 것을 배우는 데에만 한정 짓는다. 하지만 공자는 분명히 '불선(不善)한 자를 보고는 속으로 스스로 반성한다(見不善而內自省也)'고 했다. 나쁜 사례야말로 우리를 가장 날카롭게 담금질하는 스승이 될 수 있다.

 

조선 후기, 세도(勢道) 정치의 암흑기는 우리에게 가장 아픈 스승이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했던 시기, 그들은 '배움'을 멈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백성은 스승은커녕, 수탈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이라는 성(城) 안에 갇혀, 밖에서 밀려오는 서구 열강의 파도 소리를 듣지 못했다.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읽으려 하지 않았고, 곪아 터지는 민초들의 신음을 외면했다.

 

그들이 '삼인행'의 지혜, 즉 타인(백성)과 타자(외부 세계)로부터 배우려는 겸손함을 가졌더라면, 역사의 물줄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모든 것을 가진 자'로 규정했고, 배움을 거부했다. 그 오만(傲慢)의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국가는 쇠락했고,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으며, 결국 나라를 통째로 빼앗기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역사는 이처럼 실패한 권력, 오만한 시대를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오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지, 변화를 거부하는 아집이 얼마나 무서운 파국을 초래하는지, 이 '불선(不善)한 스승'은 피와 눈물로써 가르친다.

 

마지막 세 번째 스승은, 우리가 가장 자주 잊는 스승, '이름 없는 민초(民草)'들이다.

 

'삼인행'의 세 사람은 왕이나 장군, 위대한 학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쩌면 역사 책에 단 한 줄 이름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과 공감은 종종 이 이름 없는 스승들로부터 온다.

 

동학(東學) 농민군은 누구인가? 그들은 양반들에게 '스승'으로 대접받기는커녕, 사람으로조차 취급받지 못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라는, 시대를 뒤흔든 새로운 가르침을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낡은 신분제의 굴레를 끊고,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위대한 사상을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하려 했다. 비록 그들의 혁명은 좌절되었으나, 그들이 던진 '사람 답게 살고 싶다'는 외침은 3.1 운동을 거쳐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은 어떠한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암흑의 시대에,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희망'을 가르쳤다. 위안부로 끌려가 처참한 고통을 겪었던 할머니들은, 그 지울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안고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증언하는 살아있는 스승이 되었다.

 

이들은 교과서 속 위인들처럼 화려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가장 절박한 순간에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평범한 스승'들은 우리에게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삶의 토대임을 깨닫게 한다. 그들의 고통과 저항에 공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와 진정으로 '함께 걷게' 된다.

 

우리는 지금 역사라는 거대한 '삼인행'의 길 위를 걷고 있다. 우리의 한쪽에는 세종과 같은 위대한 선각자가, 다른 한쪽에는 세도 가문과 같은 실패한 권력자가, 그리고 우리의 발밑에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민초가 함께 걷고 있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이 세 스승 모두의 목소리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위대한 스승에게서는 '태도'를 배우고, 반면교사에게서는 '성찰'을 배우며, 이름 없는 스승에게서는 '공감'을 배운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혼란은, 어쩌면 우리가 이 세 스승 중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혹 우리는 위인의 업적만 찬양하며 그들의 '겸손한 태도'를 잊고 있지는 않은가. 

 

혹 우리는 실패한 역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며 치열한 '자기 성찰'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혹 우리는, 지금 우리 곁에서 신음하는 평범한 이웃들의 목소리, 즉 '살아있는 스승'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삼인행필유아사'는 과거에 갇힌 박제된 교훈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대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현재적인 질문이다. 역사라는 스승 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학생일 수밖에 없다. 그 스승들의 손을 겸손히 마주 잡고 걷는 한, 우리는 적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작성 2025.11.02 01:38 수정 2025.11.0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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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