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가 부활했다. 예수도 부처도 아닌 시골선비가 부활했다. 정신의 문학이자 자연문학의 꽃인 ‘시’를 들고 시골선비가 우리 곁으로 다시 왔다. 유쾌한 기적이다. 죽은 인본주의가 무덤을 열고 뛰쳐나와 디지털 과부하에 걸린 21세기를 치유하려고 한다.
시골선비 이은춘이 사랑한 삶은 지극히 평범했다. 때를 맞춰 농사를 짓고 가을이면 곡식을 거둬들이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자연을 경외하고 인간을 사랑했다. 그러나 한 인간이 태어나 살다가 죽는 평범한 과정 속에 놀랍도록 비범한 코드가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성’이다.
현대인들은 삶에 대한 판타지와 망상에 사로잡혀 자연에 인간에 삶에 창조적인 반응을 하지 못한다. 속도전에 희생당한 우리는 유행병처럼 번지는 디지털 치매에 걸려 온종일 이메일을 확인하고 트위터로 속살거리며 블로그에 좌불안석한다. 그것도 모자라 동영상으로 눈을 버리고 게임으로 뇌를 혹사시키며 핸드폰 없는 불안한 세상을 견디지 못해 쓸데없이 전파를 낭비한다. 그토록 잘사는 것과 잘 죽는 것에 목숨 걸면서도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에 대한 통찰이 없다.
시골선비 이은춘은 우주로 통하는 감각을 열어놓고 자신 안으로 늘 진보하고 혁명했다. 학문을 향해 뜨겁게 열정하고 사람을 통해 진실하게 사랑했다. 자연을 스승삼아 시를 짓고 그 시를 통해 다시 사회와 소통했다. 자발적 가난으로 욕망의 통로를 차단하고 정신의 낙원을 이루어 진정한 참살이를 실천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선비 이은춘이 힘들고 지친 우리들에게 벼락같은 눈빛으로 말한다. 욕망의 신발을 신고 소유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는 발걸음을 멈추라고, 땟국 물 질질 흐르는 꼬질꼬질한 삶일랑 저 시궁창에나 던져 버리라고, 백화점 폭탄세일 같은 저질 인생에서 빠져 나오라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