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우리 사회에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은 뚜렷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기혼 여성 고용 동향’에 따르면, 15~54세 기혼 여성의 고용률은 67.3%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다(통계청, 2025년 4월 기준). 미성년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 여성의 고용률도 64.3%에 달해, 과거 결혼과 출산 이후 직장을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보여준다(통계청).
특히 단절된 경력을 가진 전업주부만이 기혼 여성의 전형이라는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2025년 기준, 기혼 여성 중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은 21.3%로 역대 최저 수준이며, 이는 약 110만 5천 명으로 집계된다(통계청). 이는 단순한 통계 변화가 아니라, 성 역할 인식과 노동시장 구조가 동시에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변화 속에서도 “얼마나 많이 일하느냐”보다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느냐”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일·가정 양립 제도와 남성 역할 변화의 성과
기혼 여성의 고용률 상승 배경에는 정부의 일·가정 양립 정책 확대와 더불어 기업 및 사회의 인식 변화가 자리한다. 육아휴직 제도 확충,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 등은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 비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부부 공동의 육아 책임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여성의 경력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구조적 변화이다. 가정 내에서 돌봄과 가사 책임이 점차 분담될수록, 여성에게 집중되던 퇴직 압박과 경력단절 위험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전히 존재하는 경력단절과 고용의 질 문제
그러나 통계의 개선이 곧바로 현실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2025년 기준)에 따르면,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기혼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21.3%로 나타나며, 영유아(6세 이하) 자녀를 둔 여성의 경우 그 비율은 31.6%까지 높아진다. 자녀가 셋 이상인 경우에도 23.9%의 경력단절율을 기록하고 있다(통계청). 이는 여전히 복합적인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기혼 여성의 일자리 질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다. 시간제,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 형태가 확대될 경우, 통계상 고용률은 상승하더라도 소득 안정성이나 사회보험 가입, 경력 개발 측면에서는 취약해질 수 있다. 근무환경의 개선, 장시간 노동 관행의 완화, 유연근무제의 실질적 정착, 일·생활 균형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의 확산이 꾸준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인구·재정 위기 시대의 핵심 정책 축
우리는 저출산·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지방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단순한 여성 고용 정책이 아니라, 국가 노동력과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정책 축이다.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첫째, 가계 소득을 높여 소비와 내수를 진작하고 사회보험료 납부 기반을 넓힘으로써 재정 안정화를 도모하는 효과를 가진다. 둘째, 산업 및 공공 영역에서 축적된 인적 자본을 유지·확대함으로써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셋째, 경제활동을 지속하는 여성의 모습은 성 역할 고정관념을 완화하고 미래세대의 진로 선택과 가족관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은 경제정책이자 복지정책이며, 동시에 교육·인구·지역정책과 긴밀히 연결되는 교차 영역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기혼 여성 고용을 위한 정책 대안
기혼 여성 고용률의 단기적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고용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중소·영세기업의 육아·돌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현재 육아휴직,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등은 상대적으로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인력 여유가 부족한 중소·영세기업에서는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실제로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육아휴직과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경우, 정부가 인건비 지원, 대체인력 지원, 사회보험료 감면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용이 아니라 경력단절을 줄이고 노동공급을 안정시키는 투자인 셈이다.
둘째, 다층적·맞춤형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가족 특성과 근로 상황에 따라 단기·부분 육아휴직, 탄력적 근로시간, 시간제 전환 후 원직 복귀 보장 등 여러 수단을 조합할 수 있는 돌봄 패키지 제도가 필요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초등 돌봄교실, 지역 돌봄센터를 연계하고, 야간·휴일 돌봄, 장애아 및 병원 돌봄 등 돌봄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할수록 기혼 여성의 경력 유지 가능성은 높아진다.
셋째, 경력단절 예방 및 재취업 지원을 체계화해야 한다.
경력이 이미 끊어진 이후의 재취업 지원뿐 아니라, 경력단절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 출산·육아를 앞둔 여성 근로자를 대상으로 경력단절 예방 컨설팅, 맞춤형 직무·경력관리 시스템 제공이 필요하다. 온라인 플랫폼과 AI 기반 직무 추천, 재택·원격 근무 기회 확대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면, 물리적 제약을 줄이면서도 경력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남성 고용 안정과 여성 일자리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제조업·건설업 등 전통적 남성 고용 기반이 흔들리면서 가계 생계 구조도 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경제활동이 보완적 소득 역할을 넘어 핵심 소득원으로 자리하는 사례도 늘어난다. 이때 여성의 고용이 일부 업종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디지털·공공서비스·돌봄·녹색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 친화적 일자리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남성과 여성을 함께 대상으로 하는 직업훈련, 전직 지원 정책을 통해 가계 전체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
기혼 여성 경제활동 확대는 중앙정부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역 산업 구조와 인구 특성에 맞는 돌봄·일자리 생태계를 지방자치단체 및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지역 내 보육·돌봄 인프라 확충,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프로그램 운영, 사회적경제 조직과 연계한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현장 밀착형 정책을 펼칠 수 있다. 특히 지방의회는 조례 입법과 예산 심사를 통해 경력단절 여성 재취업 사업, 돌봄센터 운영 지원, 여성친화기업 인증 및 인센티브 제공, 남성 육아 참여 촉진 사업 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정책이 작동할 때,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단기적 수치 개선을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되는 성과를 낳게 된다.
맺음말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한국 사회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되는 과제이다. 고용률의 상승이라는 숫자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개인의 삶과 가족의 현실, 돌봄 구조와 노동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기혼 여성이 경력단절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한국공공정책신문은 앞으로도 다양한 통계와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성평등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대안을 꾸준히 제시하고자 한다.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때, 우리의 미래 또한 한층 더 단단해질 것이라 본다.
박동명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