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진짜 나는 누구일까?

홍영수

한낮, 머나먼 길을 가느라 고속도로를 달렸다. 혼자 운전하기에 졸음을 쫓으려는데 곁에는 아무도 없고, 그러던 중 우연히 룸미러를 보았다. 순간,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분명히 내가 내 얼굴을 보는데 내가 보는 얼굴이 내가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더더욱 아니었다. 그 뒤로도 한 참 달리다 다시 보기를 여러 차례. 이러한 낯섦이 단순한 착각일까? 생소함일까? 의문에 의문부호를 룸미러에 매달고 몇 시간 뒤에 도착지에 내렸다. 

 

그리고 늦은 밤 시골 작은방에 혼자 드러누워 룸미러의 의문부호를 떼 내어 방 안에서 살펴보았다. 낯선 룸미러 속의 내 모습, 그 모습에 드는 이질감 등.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이 들고, 변화하는 ‘거울 속 존재가 정말 나일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겪고 보았던 나의 익숙한 사유의 영역이 거울 속의 변화된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고, 또한 낡은 습속에 젖어 살았다는 느낌이 들 때, 차 안의 자그마한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에서 매 순간 변하지 않는 존재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일상 속의 우린 마음과 육체가 변화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특히 신체의 변화는 속도가 더디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거울 보는 순간의 나와 거울을 보지 않는 순간의 나는 이미 수많은 세포가 죽었기에 변화한 것이다. 또한, 탄탄한 몸과 탱탱한 얼굴 피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끼는 것은 나의 뇌가 기억하고 있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 사이의 간극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에서 말한 ‘제법무아(諸法無我)’, 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잠들기 전, 생소하게 느꼈던 룸미러 속 내 모습을 떠올리며 방 안에 누워 자문자답해 보았다. 기억 속 과거의 내가 진짜일까? 아님, 거울에 비친 낯설었던 거울 속의 얼굴이 진짜 나일까? 나만의 결론은 둘 다 진짜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와 지금의 나는 인연에 따라 잠시 나타난 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영원히 변치 않고, 고정된 나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똑같은 너도, 나도, 그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의식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제고 오늘이고 동일한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동일성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닌 고정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에 당혹감이 들기도 했다.

 

들뢰즈가 말한 세상의 본질은 똑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달라지는 것들의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이 올랐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반복된 게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생각과 세포도 다른 차이의 생성이라는 것이다. 우린 잠에서 깨어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잠을 잔다. 겉보기에 똑같은 일상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이처럼 삶은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매번 미세한 다른 것들의 끊임없는 차이의 반복이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걸을 때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미세한 차이들의 반복이다. 이 세상에 고정된 원본이나 정답은 없는 것이다. 오직 끊임없이 변화하는 ‘차이’들만 존재할 뿐이며, 똑같다고 느끼는 ‘반복’은 그 차이들이 잠시 만들어 낸 허상의 규칙임을 알았을 때 차 안의 룸미러 속에 비친 생소한 나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지만, 그 너머에 비친 나란 존재는 매번 반복하는 차이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고정된 본질, 즉 동일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매 순간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르게 태어나는 차이의 삶을 지속해 나가는 반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과거의 나에 갇히고도 말고 집착하지도 말고, 앞날도 확정 짓지 말면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역동적인 삶의 태도 말이다. 

 

연암 박지원은 "까마귀 깃털을 햇빛에 비춰보면 짙은 푸른색, 반짝이는 녹색, 때로는 보랏빛과 황금빛이 감돈다.“ 했다. 까마귀가 검다고만 생각한 우리의 눈과 사고방식에 망치를 들이댄 것이다. 연암이 빛의 각도나 보는 시선, 날씨와 시간에에 따라 까마귀의 색이 다르게 드러난다고 했듯이 같은 잣대로 예를 들면, 들뢰즈 또한, 까마귀의 본질은 검은색이 아니라 빛을 만나는 순간마다 색깔들이 변화하는 그 차이와 생성 그 자체라 했을 것이다.

 

이처럼 연암 박지원과 질 들뢰즈, 시대와 문화가 다르고 200여 년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일치한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제부터 고정된 시선과 생각의 낡은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미세한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 것이다. 그게 진짜 나이기 때문에.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07.13 10:45 수정 2026.07.1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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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