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독일어로 ‘als ob (영어로는 as if)의 철학’이란 평론을 읽었다. 수학상의 정의로 직선이란 두 점 사이에 가장 가까운 거리이고, 점이란 전혀 면적이 없는 하나의 위치인 까닭에 이러한 직선이나 점은 정의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이런 직선을 긋거나 점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근사치 비슷한 것을 편의상 마치 정의대로의 직선과 점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선미의 개념도 그렇듯이 우리 인간 사회에서 언제나 무엇이든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으랴. 그 한 예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가 사형수의 처지와 입장에서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자라 그렇게 살아왔었다면 그도 별수 없었을 텐데도 마치 별수 있었던 것 같이 단죄하고 처벌한다는 것이다. 벌 받는 죄인을 보면서 옛날 영국의 한 법관이 ‘신의 은총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바로 저 죄인이었을 텐데. (But for the grace of God, there go I.)’라고 했다지 않나.
현대 교육심리학자들의 공론이 어린아이의 성격과 인격 형성이 일곱 살, 아니 심지어 다섯 살이면 거의 완성되어 끝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세 살 적 버릇이 여든 간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말 모든 것이 다 그렇다면 ‘치기’ 아닌가.
손쉽게 소매치기 이야기 한마디 해보리라. 남의 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 눈엔 털 주머니밖에 안 보이고, 턴 지갑 속에서도 돈밖에 안 보이는가 보다. 내가 젊어서 신문기자로 직접 취재하여 보도한 기사들 가운데 소매치기에 관한 것이 있다.
1966년 6월 26일 자 한국일보 자매지 영자신문 코리아 타임즈에 나간 기사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혹시 앞으로 재수 없이 소매치기를 당하거든 잃어버린 지갑 속에 들어있는 신분증 같은 중요한 서류를 찾기 위해 경찰서에 갈 것이 아니라 우체국에 가보라고 했다. 왜냐하면, 소매치기도 그들 나름의 호의와 선의를 갖고 있어 그들이 필요한 돈만 뺀 후 나머지 것은 그대로 지갑 속에 남겨둔 채 우체통에 넣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가지 특기 사항으로 빈 털털이로 다니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권고했다. 돈 한 푼 안 들어있는 지갑은 허탕 친 분풀이로 아예 쓰레기통에 쳐넣으면 넣지 정중하게 우체통에 넣어주지 않는다고. 돈이 정말 한 푼도 없는 경우에는 돈 대신 사진이라도 한 장 갖고 다니라고 그 기사에 부기했다.
천진스럽고 귀여운 어린애나 사랑스러운 애인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조금은 감동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신용카드가 생겨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그때만 해도 본인 이외의 딴 사람이 찾을 수 없는 수표 등은 주인에게 돌려줬다. 그 당시 경찰 추산으로는 전국에 3천여 명의 소매치기가 있는데 그중 2천여 명은 수도 서울에서 맹활약하며 서로 고도의 기술과 실력을 겨루고 있다 했다.
어떻든 소매치기는 도둑 중에서도 좀도둑이지만, 그중에서도 양심적인 도둑이라 해야 할지 모른다. 닥치는 대로 털도 안 뽑고 머리끝부터 발톱까지 꿀꺽 통째로 삼켜버리고 집도 땅도 온 나라까지 삼키는 큰 도둑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니 비겁하게 다른 사람의 뒤통수치기나 등치기, 막가파 막치기나 새치기, 날강도 같은 날치기가 되느니 인생 나그네 길에 소맷부리라도 스치는 인연의 소매치기, 남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손뼉치기가 되어보는 것이 얼마나 좋으랴.
중동의 여러 회교국가에서 술을 금하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인 영국 작가 다니엘 디포의 작품 ‘짹 대령’에 술의 마력을 잘 드러낸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악마가 한 젊은이를 보고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라고 꾀었다. 그건 못 할 짓이라고 말을 안 들었다. 그러면 어머니와 동침하라고 또 꼬드겼다. 그건 절대로 못할 짓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집에 가서 술이나 퍼마시라고 헀다. 아, 그야 할 수 있지 라고 대답하고 정말 진탕만탕 술을 마신 후 이 젊은이는 곤드레만드레 되어 술기운으로 그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를 겁탈했다.
중독 중에 알코올 중독보다 더 심각한 중독은 권력중독이다. 마약, 약물, Sex, 일, 명예, 부, 이념, 사상, 종교, 예술 등 중독이 있지만 총체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생물과 자연을 파괴하는 중독은 권력중독이다.
그렇다면 이런 갖가지 중독의 해독제는 없을까. 있다뿐이랴. 다름 아닌 사랑 중독이리. 사랑만이 만물을 살리고 정화하고 순화시켜 승화시키는 만병통치의 묘약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