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예술이니 음주문화니 하는 말이 있다면 끽연문화란 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좀 그렇겠지만 내가 젊었을 땐 더욱 그랬었다. 술과 담배를 해야 매력 있는 것처럼 술과 담배 선전 광고로 세뇌되어 억지로라도 술과 담배를 해야 했다.
나도 한때 젊어서는 술 한 잔에서 인생의 낭만을 맛보고 담배 연기 한 모금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인생무상의 덧없음을 관조하고 달관하는 시선(詩仙)이나 도사(道士)라도 된 양 행세하며 육갑을 떨었었다.
음주 끽연 행위 실험예술의 한 표본을 들어보리라. 영국 북부 요크셔지방 애플트리윅이란 곳에 ‘새 주막’이라는 정원 대폿집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당시 77세의 이 대폿집 주인 샤워 씨는 10년째 이 대폿집에서 금연운동을 해왔다. 1971년 담배를 많이 피우던 그의 여자 친구가 암으로 죽자 이 정원 대폿집에 정자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진 현판을 달아 놨다.
1971년 9월 29일
담배로 인해 생명을 잃은
반지를 추모하면서
이 여인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이 조그만 정자를 만들어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건강할 때 건강을 존중해
금연할 것을 간곡히 권하노라.
이렇게 금연운동을 해온 지 10주년을 맞아 샤워 씨는 정원 한쪽 끝에 그가 죽으면 반티 곁에 묻힐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그가 죽은 뒤에도 이 금연 대폿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생전 육성으로 녹음된 담배의 해독에 대한 그의 경고를 들려줄 수 있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샤워 씨의 기억으로는 이 금연 대폿집에 와서 담배를 피운 손님은 단 한 사람뿐이었단다. 한 축구 선수가 담배를 피우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리자 손님이 샤워 씨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인심 좋은 대폿집 주인답게 샤워 씨는 손님 머리에 생맥주를 부어주었다. 그 후로 이 손님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사를 보면서 나는 회심지우(會心之友)를 만난 듯 또 다른 회상에 잠겨 야릇한 향수에 젖었었다. 호탕방탕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퍼마시면서 줄담배로 밤을 새워가며 인생을 논하고 사랑을 꿈꾸며 젊음을 구가하던 시절로 돌아가.
정녕 아름다워라.
아니 애달퍼라.
젊음이여 삶이여,
아니 더할 수 없이
덧없고 애틋한
목숨이여 생명이여,
촛불 같이 타리라.
아니 아지랑이처럼
하늘하늘 피어오르리라.
바람에 실려 구름 타고
또 다른 별세계로.
진실로 인생이 망망대해에 떠드는 일엽편주 같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국의 메뫄작가(memoirist) 파트리시어 햄플(Patricia Hampl)은 그녀의 회상록 ‘하나의 낭만적 교육(A romantic education)’에서 이렇게 말한다.
‘글 쓰는 사람이 나는 되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도 의사나 교사, 미생물학자나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 밖에도 영화배우, 해양학자, 수목관리인 등의 직업이 내겐 매력 있었다. 별로 매혹적이 아니었으나 그저 나는 글을 썼을 뿐이다. 그 보상으로 돋보이던 다른 모든 일들이 근처에 접근조차 못 할 만치 생생한 현실감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직업의 유혹도 나를 사로잡지 못했고 결국 글 쓰는 일로 귀착되었다. 글 쓴다는 것이 얼마나 모든 일에 나 자신을 몰입시켜 내 본질을 시험하고 실험하는가를, 다시 말해 세상 모든 걸 내포하는 것임을 내가 직감했기 때문이다. 글 쓴다는 게 모든 것의 핵심 요체(核心 要諦)로 모든 사물의 심혼(心魂)이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하나의 개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임을.’
지당하신 말씀이다. 글 쓰는 사람 따로 없이 우리 모두 다 글 쓰는 사람이다. 손으로만 쓰지 않고 눈, 귀, 입, 코, 머리와 가슴은 물론 오족(五足) 팔다리 발바닥으로도... 사람이 참으로 사람답게 산다는 건 두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그 신비로움에 경탄하며 축복된 삶의 기쁨을 순간순간 만끽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주입식 암기식 응시요령의 앵무새 학교 공부 많이 하는 것보다 차라리 전국 방방곡곡 여러 곳으로 또 가능하면 세계 각국으로 여행하면서 많이 보고 느끼며 세상 공부 많이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으랴.
직장 때문에 우리 가족이 영국에 가 살면서 애들 학교 친구들이 툭하면 부모 따라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해외로 여행 다니는 것을 나는 처음엔 이상하게 여겼었다. 한번은 신문에서 영국의 어느 한 가족이 가산을 다 정리해서 배 한 척을 구입, 몇 년을 세계 각지로 항해할 여장을 갖추고 나이 어린 세 자녀가 읽을 책만도 수천 권을 싣고 영국을 떠났다는 기사를 읽고 그 용단에 나는 크게 놀랐었다. 그러다가 1978년 여름 우리 가족이 영국을 떠나 하와이로 아주, 6개월 동안 미국 각지와 한국으로 여행한 후 애들 음악 교육 때문에 영국으로 되돌아가 애들이 먼저 다니든 학교에 복교했을 때 애들 학업 성적이 전보다 떨어지기는커녕 더 나아졌었다. 몽땅 빼먹은 지난 가을 한 학기 수업을 따라가려고 분발해서였는지 아니면 여러 곳으로 여행하면서 정신적 또 정서적으로 많은 자극을 받고 애들의 잠재능력이 더 많이 개발되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 후로 언젠가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서 미국의 어느 한 여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로부터 대학 4년 다닐 학자금을 받아 그 돈으로 대학 다니는 대신 세일링 보트로 세계일주를 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얼마나 멋진 진학코스인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실로 인생살이가 망망대해에 떠도는 일엽펀주(一葉片舟) 같다면 우리 각자 자기 나름의 방향감각을 갖고 자기가 항해해 보고 싶은 대로 자기가 되고 싶은 별이 되어보는 것 이상이 없지 않겠는가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