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파트 동 지하주차장 공동 출입구는 남과 북에 따고 하나씩 있다. 아파트 평수가 조금 넓어서 얻게 된 특혜라면 특혜다. 이 각각의 출입구엔 자동차를 한 대씩 세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물론 주차라인도 없다. 솔직히 나는 이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한 원인도 바로 이 부분이 맘에 들어서였다. 지하주차장으로 통할 수 있는 공동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으면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물건을 싣고 내릴 땐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출입구가 둘일 땐 그러지 않아도 된다. 사실 평소 이 공간은 비어 있을 때가 많지만 장애인 주차장처럼 늘 비워 놓는 게 맞단 생각이다.
우리 아파트 주민이라면 언제든 이곳에서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입주민이 바라는 바이며 하나의 약속이다. 탑상형인 우리 동은 모두 60세대가 살아간다. 이곳에서 어떤 긴급한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가족 중에서 누군가 몸이 아파 급히 병원에 가거나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이삿짐은 물론 부모님이 챙겨 주신 농산물을 싣고 올 때도 있다. 또 해마다 김장철엔 무 배추도 옮겨야 한다. 지난 7~8년 동안 이 약속은 비교적 잘 지켜졌었다. 그러다 누군가 이곳에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번 그러다 말겠거니 하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이 가도 변함이 없었다.
점차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곤 했다. 직접 차주한테 연락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달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이내 그만두었다. 이웃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고, 다른 입주민도 나처럼 관리사무실에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고 연락했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요즘도 크게 변한 건 없다. 사실 통로를 막아선 자동차를 보면 기분이 썩 좋질 않다. 자꾸만 그 자리가 차를 세운 몇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속 시원히 말은 안 하지만 그들 때문에 대다수 입주민이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다른 입주민이라고 해서 그 넓은 자리에 차를 세울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다만 묵묵히 공공의 질서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관리사무실 직원들은 이들 위반 차량을 보고도 모른 척 하는 건지 스티커를 꾸준히 붙이질 않는다. 그동안 내가 몇 차례 관리사무실에 전화도 하고 경비실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적극적으로 단속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면서도 때가 되면 주차위반 단속을 강력하게 하겠다는 현수막은 붙인다. 이제는 조금 나아 질려나 하는 희미한 기대를 갖고 오며 가며 특정 위반 차량을 볼 때마다 이내 실망하고 만다. 공공의 질서를 위반하는 자동차를 관리사무실에서 계속 두고 볼 이유는 없다.
간혹 주차 위반 차량에 붙여 놓은 스티커를 보면 차주가 떼기 쉽게 네 모서리만 조금씩 붙어 있곤 했다. 공공의 질서를 위반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너무 극진하단 생각이다. 그러면서 강력 접착제로 제작된 스티커를 붙이겠단 경고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관리사무실은 입주민들이 준 강력한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써먹질 않는다. 이런 태만은 입주민에게 ''관리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회사로 바꾸세요.'' 하는 것과 같다. 주차를 위반한 차주가 찾아 와서 항의하면 핑계 대기 좋은 말은 많지 않은가. ''당신이 공공의 질서를 무시하고 주차했기 때문에 모든 입주민이 단속하라고 난리입니다.'' 이러면 된다.
지하뿐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가면 주차할 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굳이 여럿이 이용해야 할 곳에 주차하고 단속을 비난하는 그 뻔뻔함이 나는 부러울 따름이다. 직업상 늦게 들어오는 밤이라서 그렇다 치자. 다음 날 아침엔 차를 빼줘야 할 게 아닌가. 거의 매일 낮 12시가 넘어서야 나간다. 60세대면 엔간한 시골 마을보다 더 큰 규모다. 한 마을의 진입로를 특정 자동차가 계속 막고 서있다면 어떻겠는가. 곧 난리가 날 것이다. 상습적으로 공공의 질서를 위반한 입주민이나, 민원이 들어가야 마지못해 움직이는 관리실이나 똑같단 생각이다.
이경수 26k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