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미녀(美女)와 야수(野獸)

이태상

 


각종 성추행과 성폭행 혐의로 전 세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미국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 1952 - )에개 뉴욕 맨해튼에 소재한 뉴욕 1심 법원은 2020311일 선고 공판에서 23년 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요청한 29년형보다는 다소 낮은 형량이지만 67세라는 와인스틴의 나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종신형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CNBC 방송은 평가했다.

 

때때로 사실이 픽션보다 이상하다 (Fact is stranger than fiction)’ 라고 한다. 또 한 예를 들어보리라.

 

지난 20153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상해 혐의로 불구속기소가 된 서세원의 4차 공판에서 서정희는 본격적인 증언에 앞서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판사님, 제가 남편이 바람 한번 피웠다고, 폭행 한 번 했다고 여기까지 온 줄 아십니까라고 묻고 “32년간 당한 것은 그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남편과 19살에 처음 만났다. 성폭력에 가까운 행위를 당한 채 수 개월간 감금을 당했고, 이후 32년간의 결혼 생활은 포로 생활이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러한 남편에 대해 밝히지 않았던 것은 남편을 목사로 만들면 모든 걸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서정희는 미국에 머물던 서세원이 불륜 여성을 가만히 놔둬라. 이혼을 요구하면 죽여 버린다등의 협박을 했다. 그러더니 한국에 들어오면 만나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당시 서세원이 목을 졸랐나라는 검찰의 질문에 먼저 이 자리에서 차마 밝힐 수 없는 남편의 욕설이 시작됐다. 처음 듣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 욕설은 32년간 서세원이란 사람이 불러 온 노래였다. 그 후 나의 목을 조르고 폭행을 가해 나도 모르게 소변까지 흘렸다고 울먹였다. 서정희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나는 이미 끝난 목숨이다. 준조폭인 서세원은 다른 사람을 시켜서라도 나를 위협할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야말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실례(實例)가 아니랴. 그 반대의 경우를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면 픽션에서 라도 찾아보리라.

 

1991년 개봉되어 당시 디즈니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는 절찬을 받은 영화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가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밝고 아름다운 소녀 벨은 발명가 아버지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촌스러운 마을 청년 개스톤은 벨의 미모에 반해 끈질기게 구애를 하지만, 벨은 책 읽기만 즐기며 평범한 시골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흉측한 야수의 성()에 갇히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벨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 대신 자신이 성에 남기로 한다. 마법에 걸린 야수의 성에서 촛대 루미에, 괘종시계 콕스워즈, 주전자 폿트부인과 친구가 된 벨, 그녀를 경계하던 야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벨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벨 또한 흉측한 외모에 가려진 야수의 따뜻한 영혼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벨에게 거절당하고 질투심에 눈이 먼 개스톤은 야수를 없애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야수의 성으로 향하는데, 마법에 걸린 성에서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진 미녀와 야수의 로맨스가 펼쳐진다. 여기서 우리 누가 야수고 누가 천사인지 생각 좀 해보리라.

 

내가 청소년 시절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Othello)’를 읽다가 그 작품 속의 주인공 오셀로가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를 의심, 증오와 질투심에 불타 목졸라 죽이면서 그가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란 말에 나는 펄쩍 뛰었다.

 

사랑이라고? 사랑은 무슨 사랑? 사랑과 정반대를 한 것이지. 사랑이란 말 자체를 모독하고 사랑이란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진실을 더할 수 없이 모욕한 어불성설이다!’

 

격분해서 나는 씩씩거렀다. (아직도 좀 그렇지만) 오셀로가 진정으로 그의 부인 데스데모나를 사랑했었다면 쳣째로 경솔하게 아내를 의심한 것부터가 잘못이고, 둘째로 설혹 아내가 정부와 정을 통하고 있는 현장을 직접 제 눈으로 목격했다 하더라도 그가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을 위해 자기가 물러나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내를 보내주었어야 했으며, 셋째로 그가 자신의 경솔했던 잘못을 깨닫고 자살이라는 간편한 방법으로 쉽게 책임을 회피, 현실도피 하고 말았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못다 살고 간 몫까지 합해서 몸은 비록 죽고 없는 혼이라도 그 혼과 함께 그야말로 한몸, 한마음, 한영혼으로 한데 뭉쳐 아무리 괴롭더라도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곱빼기로 살았어야 했으리라고.

 

그 후로 미국 음악영화 로즈 마리(Rose-Marie, 1936)’를 보고 그 끝 장면에 무릎을 치면서 그 스토리의 결말이 좋아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나의 기억으로는 백인 기마대가 어느 아메리칸 인디언 부락을 습격,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죄다 학살했는데 어떻게 한 어린 소녀가 살아 남은 것을 이 기마대 상사가 거두어 친자식 같이 키웠다. 그러나 이 아이가 커서 아름다운 처녀가 되자 상사는 이 처녀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녀는 뜻밖에 어떤 젊은 사냥꾼을 만나 둘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 상사 아저씨를 저버리고 젊은 사냥꾼을 따라갈 수 없어 고민하는 처녀를 상사 아저씨가 제일 좋은 말에 올려 태우고 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탁쳐서 처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에게로 보내 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내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았다. 만약 상사 아저씨가 제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인디언 아가씨를 잡아두고 결혼까지 했었더라면 결국 아가씨도 사냥꾼도 불행하게 만들고, 불행한 아가씨와 사는 자기 자신도 결코 행복할 수 없었을 텐데, 사랑하는 아가씨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가씨를 보내줌으로써, 한 쌍의 젊은이들이 행복했을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사랑한 아가씨가 행복하리라는 확신에서 또 아가씨의 행복을 계속 빌어주는 마음으로 가슴이 늘 아리고 저리도록 흐믓 짜릿하게 그 자신 또한 더할 수 없이 행복하였을 거라고.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어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08 10:32 수정 2020.04.0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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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