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화분을 샀습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것이지만 여러 꽃망울들이 뿜어내는 향이 그만입니다. 덕분에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내다놓는 일을 도맡아하게 되었지요. 벌린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처음엔 번거롭기도 해서 후회를 한 적이 있지만, 늦은 오후에 실내로 들어온 꽃은 아주 그윽한 향을 선사합니다. 주인의 노고에 보답을 합니다.
화분을 사게 된 것은 예정에 없던 일. 지나가던 트럭에 사과가 잔뜩 실렸는데 이상하게도 적재함 한편에 작은 화분들을 싣고 있었습니다. 보통 과일이면 과일, 채소면 채소처럼 단일 품목을 파는데, 이 트럭은 어떤 이유로인지 꽃도 싣고 있었습니다. 정체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원래 과일장수인데 꽃도 같이 판다는군요. 사두면 꽃값을 할 것이라 해서 꽃 이름을 물어보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꽃향기는 밖이 어두워질 무렵 깊게 다가옵니다. 노을이 번져갈 때쯤이면 꽃향기 또한 정점에 이르지요. 코를 살랑이며 들어와 지친 몸을 위로하며 폐부에 깊이 점착됩니다. ‘만원’의 가치가 아니라 돈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줍니다. ‘보루네오 꽃’이라는 행상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샀는데, 만원의 화분을 파는 것이 아니라 꽃을 피우는 생명체의 소중함을 전해준 과일장수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작은 꽃도 이렇듯 주인의 수고를 아는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변의 수고를 모르고 저 잘났다며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큰 것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하나는 자식을 낳아서 거두어 먹이고, 노심초사하며 기르고 앞날을 걱정하던 부모의 수고지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은혜와 수고를 더욱 실감하게 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좀 더 근본적으로 생명을 존재케 하고, 인간을 이 우주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삶을 영위토록 한 조물주의 섭리와 은혜지요. 흙으로 인간의 형상을 빚어 만물의 영장으로 존재케 했으니, 근원적이고 초자연적인 신의 노고가 아니겠습니까.
작은 수고를 하고 나서야, 그 누군가의 베푼 수고에 눈뜨게 됩니다. 돌아보면 세상일에 수고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이 수고하고,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애써 준다는 생각을 하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봄에는 만물이 생동하고 새들의 지저귐 또한 활기 있게 느껴집니다. 다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저 새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걱정을 합니다. 성경에는 공중의 새들도 조물주께서 다 거두어 먹이신다고 했지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전례 없는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무서움을 모르고 겁 없이 질주하던 현대문명이 휘청거리고, 고도의 과학문명 시대에 수십만 명이 눈앞에서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알고 이제야 다시 낮은 마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수고를 아시나요.
작은 화분에 기울인 수고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베푼 수고에 감사하는 일을 통해 부모의 거두어 먹이고 기른 수고를 생각하게 되고, 조물주의 심원한 섭리에 감사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수고가 있어서, 오늘 하루를 또 시간의 창고에 적립하고 생명의 장부에 기록하게 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다 거둔다고 하셨으니, 오늘 밤에도 인류의 희망처럼 반짝이는 별이 밤하늘에 빛날 것입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