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모든 어린이는 ‘무지코’다

이태상

 



2012년 출간된 혜민 스님의 책 제목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도 있지만 2020417일자 한국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삶과 문화' 칼럼에 실린 '공중 도시, 메테오라(Meteora)에서 고립을 말하다' 필자 전혜진 여행작가는 그녀의 글을 이렇게 끝맺고 있다.

 

인류의 잠시 멈춤에 대자연이 치유와 회복의 시기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제대로 잘살고 있는 건지 질문을 던져 볼 차례가 온 것이다. 천 년 전 수도자들이 단절과 멈춤을 수행의 방법으로 이용했던 교훈을 1%라도 배울 수 있다면 긴 인류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짧은 개인의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근 치른 남한의 총선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다. 보수의 몰락을 가져오고, 주류의 대이동으로 코로나 속 국가 아니 인류의 재발견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이리라. 우선 우리 한반도에서부터 시대착오적인 북한의 몬도 카네같은 김씨 절대왕조나 남한의 줏대 없는 사대주의와 금전만능의 자본주의 바람을 잠재워 어서 걷어치우고 서구의 신본주의(神本主義)와 백인남성 위주의 인본주의(人本主義) 물질문명을 뛰어넘어 우리의 인내천(人乃天)과 홍익인간(弘益人間) 아니 홍익만물(弘益萬物)의 자본주의(自本主義)를 온 지구촌에 펼칠 때가 왔어라.

 

얼마 전 유튜브에서 애나 양(Ana Yang)의 너무도 멋지고 환상적인 버블쇼를 보면서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알리바바(Ali Baba, first used in 1712)아라비안 나이트(One Thousand and One Nights, usually called The Arabian Nights, a collection of folk tales from the Middle East, originally published in French in 1704)’ 천일야화 중 하나인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가난한 나무꾼으로 열려라, 참깨(Open Sesame)”라고 주문(呪文)을 외면 40인의 도적이 숨겨둔 보물들이 있는 동굴의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瑤池鏡)인 것 같다. 우리는 현재 공상과학이 현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가상현실처럼 느끼게 해주는 헤드셋이나 센서들이 개발되고 있어 조만간 매트릭스 수준의 뇌에 직접 전기 자극을 주는가상현실 속에서 사랑도 하고 살다 죽는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머지않아 우리가 시공간(時空間)을 넘나들면서 우주여행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한다. 옛날 우리 동양에서 도사(道士/導師)들이나 실습(實習)했다는 축지법(縮地法)’을 오늘날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을 통해 축지법정도가 아닌 축공법(縮空法)으로 사용해 일상화되지 않았는가.

 

여기서 우리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xAAO1881-1978)가 남긴 말 몇 마디 음미해보리라.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건 (이미) 현실이다.

(Everything you can imagine is real.)”

 

나는 찾지 않고 발견한다.

(I do not seek. I find.)”

 

모든 어린애는 다 예술가다. 문제는 그 아이가 자라면서 어떻게 예술가로 남는가다. (All children are artists.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he grows up.)”

 

예술의 목적은 일상생활에서 우리 영혼에 낀 때를 씻어버리는 것이다.

(The purpose of art is washing the dust of daily life off our souls.)”

 

예술이란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짓말이다.

(Art is a lie that makes us realize the truth.)

 

“(다른) 사람들은 현실을 보고 왜 그런가 묻는다. 나는 어떤 현실이 가능하고 왜 실현 가능하지 않겠는가를 묻는다. (Others have seen what is and asked why. I have seen what could be and asked why not.)”

 

내가 살아온 80여 년 삶만 돌아보더라도 어려서부터 내가 상상만 했던, 아니 꿈도 못 꾸던 일들이 천만 뜻밖에도 기적이나 요술처럼 이미 현실이 된 사실들이 참으로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생각 좀 해보리라. ‘말이 씨가 된다지만 생각이 떠올라야 말도 하고 꿈도 꾸면서 행동하게 되지 않나. 그럼 생각이란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몸과 마음이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머리에서 아니면 가슴에서 생기는 것일까. 우리가 머리로는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느낀다고 하는데, 생각과 느낌이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우리는 머리는 돌린다거나 굴린다고 하고 가슴은 뛴다고 한다. 그럼 우리 머릿속 두뇌의 회전이 멈출 때, 아니면 가슴 속 심장의 박동이 멈출 때, 언제 사망한다고 해야 하나. 정신은 머릿속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슴 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정신과 마음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도 사람의 성욕을 지칭하는 리비도(libido)가 삶의 원동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사람이 성욕을 잃으면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란 말인가. 둘러보면 세상 만물이 다 음()과 양()으로, 산과 계곡, 낮과 밤, 하늘과 땅, 오목함과 볼록함 요철(凹凸)로 이루어져 있어 이 둘이 서로 보완(補完)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참으로 섹스와 사랑과 삶이 그야말로 삼위일체(三位一體)로 같은 하나라고 해야 하리라.

 

사람이 죽는다는 뜻으로 숨을 거둔다고 하는데, 영어로는 특히 의학적으로 숨을 내쉰다(expire)고 하고, 숨을 들이쉰다(inspire)고 하면 혼()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숨과 생명과 혼이 또한 삼위일체의 같은 하나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숨이 생각으로 변해 상상이란 날개를 달고 비상하면 초혼(招魂)하듯 넋을 불러내 천지조화(天地造化)를 일으켜 기적(奇蹟)같이 요술(妖術)처럼 모든 공상과학과 가상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천지창조(天地創造)가 가능해지리라.

 

시인 김남조(1927 - )나무와 그림자는 이렇다.

 

나무와 나무그림자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밤이 되어도

비가 와도

그림자 거기 있다.

나무는 안다

 

이 시에서 지적했듯이 자연 속의 나무는 그림자를 굽어보고 그림자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그런데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도 인간세계에선 그림자는 나무를 굽어보고 나무는 그림자를 올려다 본다.’

 

미국 연방하원의원이 체면불구하고 교황의 물컵을 슬쩍 훔친 뒤 컵에 남아있던 물을 자신의 아내와 함께 나눠 마시기까지 한 일이 있었다. 2015927CNN방송을 비롯한 미 언론에 따르면 밥 브래디(Robert A. Brady, 1945 - ) 미국 펜실베니아주() 제일 선거구 하원의원(1998-2019)924일 교황의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 끝난 직후 장내가 어수선한 틈을 타 재빠르게 연단으로 올라가 물컵을 집어 들었다. 브래디 의원은 이어 물컵을 조심스럽게 들고 자신의 방으로 건너가 아내, 친구, 참모 등과 함께 조금씩 나눠 마셨다. 브래디 의원은 자신이 물을 마시는 사진은 물론 아내에게 직접 물을 먹여주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브래디 의원은 CNN연설 도중 교황이 서너 차례 물을 마시는 것을 봤고 그 순간 교황을 기억할 만한 어떤 중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냥 물컵이 눈에 들어왔고 연단으로 다가가 집어 들어 간직했다. 교황이 만진 물건은 모두 축복받은 것이라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교황의 물컵을 펜실베이니아 자택에 잘 보관해 가보(家寶)로 삼고 이를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직자(聖職者)들의 아동 성추행(性醜行)을 뿌리 뽑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필라델피아를 방문 중 그는 927일 성 마르틴 성당에서 가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성직자들의 어린이 성추행이 더는 비밀에 부쳐져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이 성추행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다짐했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아니고 조직화된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으며 소위 일컬어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영어로는 agnostic)’성상파괴주의자(聖像破壞主義者, 영어로는 iconoclast)’ 또는 개인자유주의자(個人自由主義者, 영어로는 libertarian)’나 청개구리식 반골(反骨/叛骨, 영어로는 contrarian)’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나도 개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좋아하고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늙은 어릿광대 보듯 심한 연민(憐愍/憐憫)의 정()을 느끼게 된다.

 

일련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보다 사람을 보라가 될 것이다. ()히 내가 무엄(無嚴)하게도 교황을 비롯한 모든 성직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또 있다 해도 어떤 분인지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이란 존재나 자연(自然)의 일부분뿐인 사람보다도 자연 그 자체를 보라는 것이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어버이로서의 사람 ()’인부(人父)’나 지아비 인부(人夫)’ 노릇도 못 해보면서 또는 안 해보면서 어찌 하나님 ()’과 아비 ()’신부(神父)’라 불릴 수가 있을까. 그리고 어찌 자연의 섭리와 생리를 어겨가면서 부자연스럽게 ()’스러운 성직자(聖職者)’가 아동을 성추행하는 성직자(性職者)’가 될 수밖에 없단 말인가.

 

더 좀 냉철(冷徹)히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크리스천(Christian)이다, 불교신자다 부디스트(Buddhist)다 이슬람 마호메트 회교도(Muslim)다 인도주의자다 자연주의자다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로 어폐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다 사람답게자연스럽게사는 게 너무도 당연지사인데 그 무슨 쥐뿔 나게 인도주의자(人道主義者)’자연주의자(自然主義者)’니 하랴.

 

이 세상에 석가모니나 예수나 딱 한 사람이면 족하지, 우리 모두가 석가모니처럼 처자식을 버리고 출가해 걸인(乞人)’이 되거나, 아니면 예수처럼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독생자(獨生子)’라며 부모와 자식 간에 가족의 인연도 끊고 목공(木工)일이든 뭐든 생업(生業)을 버리고 히피(hippie)’의 원조(元祖)가 될 수도 또 되어서도 안 될 일 아닌가.

 

예수가 사람의 탈을 쓰고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이었다면 우리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신성(神性)’을 지닌 채 사랑이란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잠시 소풍 온 코스미안들(Cosmians Arainbow of Love)’이 아니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하고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들이라면 다른 그 누구를 따르거나 흉내 내지 말고, 너는 네 식으로, 나는 내 식으로 자가충족(自家充足), 자아실현(自我實現)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더할 수 없이 행복하게 살아볼 일이어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거나 ()에서 인심(人心) 난다고 하듯이, 우리 각자는 각자대로 각자가 먼저 자신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이웃도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할 때 비로소 남도 돕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사납게 불면서 비구름을 올라타는 자,

걱정과 슬픔을 뛰어넘으면서 하늘을 휩쓰는 자,

미스트랄 바람이여, 너는 나의 벗!

우린 한 자궁에서 태어난,

운명이 우릴 하나로 맺어준

영원토록 같이 할 짝이지.

 

Wildy rushing, clouds outleaping,

Care-destroying, Heaven sweeping,

Mistral wind, thou art my friend!

Surely ‘twas one womb did bear us,

Surely ‘twas one fate did pair us,

Fellows for a common end.

 

틈새에서 난 너를 반기지,

널 만나기 위해 춤추면서 내달려 왔지,

네가 피리 불고 노래하는 동안,

넌 거침없이 자유롭게

배나 날개보다 빠르게

대양을 가로질러 왔지!

 

From the crags I gaily greet you,

Running fast I come to meet you,

Dancing while you pipe and sing.

How you bound across the ocean,

Unimpeded free in motion,

Swifter than with boat or wing!

 

내 꿈속에서 네 휘파람 소리 듣고,

황금빛 대양의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네가 세찬 강줄기처럼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찬란하게 내게로 내닫는 걸 보았지!

 

Through my dreams your whistle sounded,

Down the rocky stairs I bounded

To the golden ocean wall;

Saw you hasten, swift and glorious.

Like a river, strong, victorious.

Tumbling in a waterfall.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시 미스트랄 바람에게 바치는 찬가(讚歌) A Dancing Song to the Mistral Wind(1910)’11개 시구(詩句 중 첫 세 시구 미스트랄(mistral)은 프랑스 남부와 인근 지중해 연안 지방에 부는 건조한 북풍을 말한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선 흙수저물고 태어난 젊은이는 10대엔 입시, 20대엔 취업, 30대엔 결혼, 주거 전쟁을 겪는 현실에 대한 야유이자 집단 반란으로 사이버 공간에 헬조선(hell+조선)’지옥불반도(지옥불+한반도)’라는 자극적인 신조어가 떠돌아다닌다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미스트랄의 기상이 아닐까. 미스트랄의 기상을 우리말로 하면 호연지지(浩然之氣)가 되리라.

 

청소년 시절 나도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에 심취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Thus Spoke Zarathustra, 1881)’의 제1부에서 그는 정신의 세 변신,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 대해 말한다. 낙타는 제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을 묵묵히 진다. 그러나 낙타로 만족할 수 없는 정신은 사자로 변신해 자유를 쟁취하지만 신()이 부여한 창조의 놀이를 할 줄 모른다. 이 창조의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된다는 것은 삶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다 알 수 있지 않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든 무엇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아무것이나 아무하고도 아무 짓이나 다 맘대로 할 수 있지 않았었나. 문자 그대로 창조의 놀이를 즐기던 시절이 아니었었나.

 

내가 아빠, 네가 엄마, 내가 왕자, 네가 공주 그리고 흙이 밥이 되고 돌이 보석이 되며, 하늘이 지붕이 되고 땅이 침상이 되며, 내가 해가 되고 네가 달이 되며, 우리 모두 다 별이 되고, 새와 벌레, 나비와 벌, 꽃과 나무가 되기도 하며, 바람과 구름, 눈과 비, 우주 만물 아무거라도 다 될 수 있지 않았었나.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무한한 호기심을 갖고 무엇이든 한없이 경이로워하면서 죽자꾸나 살자꾸나 하고 재미있고 신나게 소꿉놀이하듯 살다 보면 세상천지(世上天地)(hell)’이 아닌 낙원(paradise)’이 되고 말리라. 우린 모두 이처럼 창조적인 삶의 놀이를 평생토록 하라고 어린아이로 태어난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예수도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 수 없다. (We couldn’t enter heaven unless we were childlike.)’고 했으리라. 이는 모든 어린아이는 사랑의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코스미안 무지코이기 때문이리. 우리 김기택 시인의 밤 벚꽃을 읊어 보자.

 

젊은 남녀

나란히 앉은 저 벤치,

밤 벚꽃 떨어진다

 

천년을 건너온 매질처럼

소리 안 나게

밤 벚꽃 떨어진다

 

화끈한 누드쇼

이끌고

방방곡곡

 

사람사태

나도록

쏘삭거리는 일

 

참말로

잘하는

짓이다.

 

사람사태 나도록

'무지코'사태 나도록

 

편집자 주) '무지코'는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코스미안의 준말이다. '코스미안(Cosmian)은 가슴 뛰는대로 사는 우주적 인간이다.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4.21 11:24 수정 2020.04.2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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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