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의 항간세설] 심곡(深谷)이 깊다하되

이태상

 



신기하게 안 떨리더라. 무대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았다. 연주는 손이 저절로 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면서 듣고 있었다.”

 

몇 년 전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말이다. 이게 어디 조성진 군만의 얘기일까.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가 뭘 하든 다 경험하는 일 아닌가. 어린애들이 뭘 갖고 놀든 놀이에 몰입(沒入)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우주만물이 생긴 그대로, 있는 그대로, 손은 손대로, 발은 발대로, 날개는 날개대로, 움직이고, 눈과 귀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보고 들으며, 가슴과 머리는 뛰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느끼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을, 물론 한 번에 하나씩,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노라면 나와 만물 사이에 구분이 없어지고, 문자 그대로 혼연일체(渾然一體)로 혼연천성(渾然天成)이 되리라.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든, 악기를 연주하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든, 사랑을 하고 무슨 짓을 하든, 하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소리와 내가, 동작과 몸이, 악기와 몸이, 글과 생각이, 그림과 느낌이, 너와 내가, 꿈과 현실이 같은 하나가 되지 않든가. 이런 경지(境地)를 불교에선 무아(無我)의 열반지경(涅槃之境) 이라하고, 성적(性的)으로는 오르가즘(orgasm)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우리 최돈선 시인의 영원한 사람들을 음미해보자.

 

누가 구름이라 하는가

어느 날의 헛된 꿈이라 하는가

호롱꽃으로 불 밝히던 추억

오오 가슴에 남아 여울지던 눈물겨움이여

그리운 이의 얼굴이 메아리처럼 울려

떠오른다.

 

누군가 올 것이다.

가슴으로 조용히 흔들려 다가올 것이다.

그대들 아름다왔으매

아름다운 그대들 나라로

영원히 떠나 살리라.

 

요즘 미국에선 백인 중년층의 사망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자살과 마약남용이 그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5113일자 공화당 대선후보들을 후보 자신들로부터 구하기(Saving Candidates From Themselves)’란 제목의 사설에서 2012년 공화당 후보 밋트 롬니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에게 패한 후 그 패인을 연구 조사한 보고서의 어떤 정치적 토론도 도전적이고 생동감 있게 공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No debate will be meaningful if it is not challenging, vigorous and fair.)”는 말을 인용했다.

 

스스로를 구원하라는 말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상지침(至上指針)이 아니랴. 특히 오늘날처럼 사회적인 거리 두기로 사람마다 외톨이신세가 된 처지에선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같이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 실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네가 네 삶을 간소화할수록 우주법칙도 간소화될 것이고, 고독이 고독(孤獨)이 아니고, 빈곤(貧困)이 빈곤이 아니며, ()함이 약함이 아니다.”

 

“As you simplify your life the laws of the universe will be simpler; solitude will not be solitude; poverty will not be poverty, nor weakness will be weakness.”

 

이는 물신주의(物神主義)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에게 일찍이 우리 선인(先人)들이 권장한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안다는 뜻의 안분지족(安分知足)하고, 구차한 중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의미의 안빈낙도(安貧樂道)하라는 것이리라.

 

미국의 가장 위대한 법철학자로 꼽히는 올리버 웬델 홈스(Oliver Wendell Holmes Jr. 1841-1935)도 갈파했듯이 말이다.

 

삶 그 자체가 목적이고, 그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유일한 물음은 네가 그 삶을 얼마나 충만하게 사는가?”이리라.

 

“Life is an end to itself and the only question as to whether it is worth living is whether you have enough of it.”

 

그러자면 우리는 우리 삶을, 우리 느낌과 생각을, 우리 삶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짐, 온갖 잡동사니를 가차 없이 단호하게 하나둘 다 버려야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인터넷에 오만소리 잡음과 오만 가지 가짜 뉴스와 정보홍수가 범람하는 마당에 눈 깜찍할 만큼 짧은 우리 인생의 소중한 순간순간을 우리가 어찌 한 찰나인들 낭비하고 허비할 수 있단 말인가.

 

2017년 출간된 스웨덴인 저자 마가레타 맥누슨(Margareta Magnusson, 1934 - )의 책 죽기 전에 평생토록 쌓여온 짐 미리 깨끗이 다 정리하기(The Gentle Art of Swedish Death Cleaning: How to Free Yourself and Your Family from a Lifetime of Clutter)’가 있다. 이 책 제목 그대로, 우리 모두 물질적인 짐뿐만 아니라 마음과 머릿속에 적폐(積弊)되어 온 온갖 쓰레기 같은 감정과 사상을 어서 말끔히 치워버리고 그동안 극심히 오염된 지구 생태계 환경을 정화하고 파괴된 자연의 질서를 바로잡아 회복시킬 수 있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경고성의 엄중한 최후통첩으로, 절호의 마지막 찬스를 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주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어라.

 

여행은 가볍게 해야 한다. 짐을 무겁게 많이 갖지 말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야 여행을 즐기면서 잘할 수 있다. 우리 인생 여로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벌레처럼 기어서 또는 동물처럼 뜀박질로 갈 수도 있겠지만, 더 좀 많이 보려면 새처럼 하늘 높이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사랑의 무지개 타고 잠시 지구별에 소풍와 머무는 우주나그네 코스미안으로서 말이어라.

 

그러려면 우리 몸을 불사르는 혼불을 지펴야 하리라. 확대경으로 햇빛을 한데 모아야 불꽃을 피울 수 있듯이 우리 삶의 모든 열정과 사랑과 꿈을 한 점으로 집약, 압축, 축소시킬 때에라야 가능하리라. 그제서야 모든 쓰레기를 다 불태워 버리고, 훠어이, 훠어이, 코스모스하늘로 날 수 있으리라. 백인덕의 시집 단단함에 대하여에 수록된 시를 우리 함께 음미해보자.

난경(難境) 읽는 밤 2

 

새벽, 헛기침에

괜스레 덧창을 연다.

겨우 산맥 하나를 넘었다.

(……)

어려워라,

목숨이여, 시여,

손끝에는 밤새 더듬은 돌멩이와 풀뿌리,

길 아닌 것들의 실핏줄이 걸려 있다.

(……)

 

이 시를 오민석 시인은 이렇게 풀이한다.

 

생은 늘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이다. 누구는 우공이산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산을 옮길 힘이 없다. 그냥 넘어갈 뿐. 겨우 산맥 하나를 넘어가는데도 손끝에는 밤새 더듬은 돌멩이와 풀뿌리가 걸려 있다. 게다가 넘어온 길이 길 아닌 것들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잊은 듯 지내다가도 이 어려운 경지(난경)’가 사실은 삶의 민낯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읽는 자세가 문제가 된다. 어려운 현실을 어렵다고 읽는 것, ‘어려워라, 목숨이여, 시여라고 고백하는 것을 우리는 정공법이라 부른다. 위장(僞裝)의 정치보다 시가 한 수 위인 이유이다.“

 

태산(泰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이 시조 한 수를 읊은 이는 조선의 문신 서예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이라고도 하고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함께 조선 중기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성리학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라고도 한다.

 

중국 산동성의 태산은 그리 높지가 않고, 우리나라의 한라산, 설악산, 백두산은 그보다 높단다. 태산이 있으려면 깊은 골짜기 심곡(深谷)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시조를 이렇게 변조해 읊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심곡이 깊다 하되 땅 위에 골짜기로다.

내리고 또 내리면 못 내릴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내리고 계곡만 깊다 하더라.

 

영어에 이런 말이 있다.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에 대비하라. (Hope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란 뜻이다. 우리말로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처음부터 최악을 각오하고 시작하면 크게 실망할 일 없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안절부절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意味)이리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직접 거듭 경험한 바로는 무슨 일이든 방심이나 안심하고 했다가는 어른들로부터 꾸지람을 듣게 되던가 낭패를 보게 되고, 많이 걱정했다가는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잘 풀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연애고 사업이고 아무 일을 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버릇을 길러왔다. 태산을 오르더라도 낭떠러지로 깊은 산골짜기 밑바닥까지 떨어질 각오가 되어 있으면 겁날 것이 없었다. 극단적으로 죽을 각오라면 뭔들 못하랴. 설혹 내세가 있고 지옥이 있다 하더라도 지옥의 맨 밑바닥까지 떨어질 각오만 돼 있다면 뭣이 두려우랴.

 

그런데 인생 80여 년 살아오면서 겪어보니, 어려움도 아픔도 슬픔도 언제나 생각보단 훨씬 덜하고, 기대치(期待値)를 밑바닥인 제로로 낮추고 시작하면 실망할 일도 절망할 일도 없이 결과가 언제나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워 감사할 일뿐이다.

 

그래서 세상의 단맛 보기 전에 쓴맛부터 봐야 한다고,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뜻으로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는 것이리라. 이 고진감래라는 말은 산을 오르는 힘은 골짜기에서 길러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이현호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에 수록된 시 뜰힘의 원천을 생각해보리라.

 

새를 날게 하는 건

날개의 몸일까 새라는 이름일까

구름을 띄우는 게

구름이라는 이름의 부력(浮力)이라면

나는 입술이 닳도록

네 이름을 하늘에 풀어놓겠지

여기서 가장 먼 별의 이름을

잠든 너의 귓속에 속삭이겠지

(……)

 

2015년 노벨문학상을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Svetlana Alexievich, 1948 - )에게 수여하면서 스웨덴 아카데미는 이렇게 성명을 발표했다.

 

그녀의 다성곡적(多聲曲的) 서술은 우리 시대 사람들의 수난과 용기에 대한 기념비다. (Her) polyphonic writingsa monument to suffering and courage in our time.”라며 비상하고 특별한 방식, 곧 다양한 인간의 목소리를 콜라주로 세심하게 합성함으로써 알렉시에비치는 우리가 포괄적으로 우리 시대를 깊이 이해하도록 해준다. By means of her extraordinary method carefully composed collage of human voices, Alexievich deepens our comprehension of an entire era.”라고 평하고 있다.

 

우리 그녀가 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단순히 사건들과 사실들의 박제(剝製)된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인간의 감성적인 느낌들의 역사적인 이야기를 기재한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사람들이 뭘 생각하고 그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며, 그 와중에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그들이 뭘 믿거나 불신했는지, 어떤 환상과 희망과 공포를 경험했는지를. 어떻든 실제로 발생한 수많은 일들을 상상하거나 지어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10년 아니면 20년 또는 50년 전에 우리가 어땠었는지 우린 쉽사리 잊어버린다. 난 관찰하고 뉘앙스와 구체적인 사안들을 찾아보려고 삶을 탐색한다. 내 인생의 관심사는 어떤 사건도, 전쟁도,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자살 등 잡다한 사태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이다.”

 

“I don’t just record a dry history of events and facts, I’m writing a history of human feelings. What people thought, understood and remembered during the event. What they believed in or mistrusted, what illusions, hopes and fears they experienced. This is impossible to imagine or invent, at any rate in such multitude of real details. We quickly forget what we were like ten or twenty or fifty years agoI am searching life for observations, nuances, details. Because my interest in life is not the event as such, not war as such, not Chernobyl as such, not suicide as such. What I am interested in is what happens to the human being.”

 

인간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알렉시체비치의 관심은 그녀의 글 문장마다 진하게 배어 있어 인간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긍휼과 연민의 자비를 증언하는 작품들이라는 것이 평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와 같은 관심은 민족과 국가, 나아가 인류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개인사를 기억하는 데도 꼭 필요하리라. 개인사를 제대로 이해해야 민족과 국가 그리고 인류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로 귀결되리라. 우리 역사에 관한 시 세 편을 곱씹어보자.

 

역사

 

역사책은 참 이상하다.

왕과 장군의 이름만 나온다.

워털루 전쟁 대목에서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졌다라고만 돼 있다.

어디 나폴레옹이 싸웠나? 졸병들이 싸웠지.

역사책 어느 페이지를 들춰봐도 졸병전사자 명단은 없다.

삼국지를 봐도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제갈량한테 대패했다라고 되어 있다.

어디 조조와 제갈량만 싸웠나? 졸병들이 싸웠지.

 

- 마광수 시인

 

역사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어댄다.

어제가 묻힌 무덤들이 역사라고

지금이 현재이고

내일이 미래이며

어제가 과거이고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도 어제가 될 것이고

내일도 어제가 될 것이니,

종국에는 모든 삶은 어제가 될 것이다.

나는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를 살고 있다.

한 치의 공간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점들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달려가는

하나의 직선 위

나는 그 어느 선분만큼은 살아갈 뿐이다.

말하자면 짧은 선분 안에서는

오늘도 역사이고

내일도 역사이니

사는 순간순간이 또 하나의 역사이다.

 

- 은순찬 시인

 

역사의 진실이란

 

어릴 땐

역사를 믿었지

위인전을 믿었지

역사에 찬란했던 그 영웅들을

한없이 동경했지

선한 영웅은 한없이 훌륭하고

미운 악인은 한없이 나쁜 줄 알았지

 

그러나 살면서 겪고 보았다.

쓰레기가 영웅이 되는 것도

선하고 아름다운 이가 사형수가 되는 것도

 

미운 놈은 나쁜 놈이 된다는 걸

지는 놈은 죽일 놈이 된다는 걸

이제는 보인다.

모두가 성자라고 하는데 악마가

모두가 악마라고 하는데 성자의 모습이

 

이제야 안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로

더해지고 부풀리는 걸

 

진실과 아름다운 건

오히려

멸시와 무관심으로 묻힌다는 걸

 

- 김대식 시인

 

차라리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판을 깨버리고 우물 밖으로 시야를 넓히려면 우물 안에서 벌어지는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하늘부터 봐야 하지 않을까. 시인 윤동주는 그의 시 눈감고 간다에서 눈감고 가라한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이슬처럼 샛별처럼 영롱(玲瓏)한 이 시구(詩句)에 나는 후렴(後斂句)를 하나 달아보리라.

 

별에서 온 아이들아

별로 돌아갈 아이들아

새벽이 가까웠는데

눈뜨고 찬란한 아침을 맞거라.

 

눈앞이 아직 깜깜하거든

네 안에

반짝이는

네 불빛을 보거라.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5.03 10:34 수정 2020.05.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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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