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예찬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국뽕은 아니지만, 아, 국뽕이 맞을 수도 있겠네요. 죄송합니다만 한인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대놓고 한국 칭찬 좀 하겠습니다.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5월 중순부터 국내 몇 개 강연이 있고 해외입국자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2주 자가격리를 하기에 엊그제 들어왔습니다. 사실 뉴욕에서 3월 중순부터 약 한 달 동안 코로나 의심 증상들이 있었습니다. 많이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끈질기게 괴롭혔고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뉴욕 보건당국에 연락을 했는데, 고위험(고령자, 기저질환자, 실제 확진 판정을 받은 자와 접촉 증명 여부, 고열 등 심한 증상자) 자격에 미달하기에 코로나 테스트를 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정 원한다면 대기 명단에 정보를 올리라고 해서 올렸는데, 6주가 지나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저는 세계 최고의 나라, 도시라고 자처하는 미국과 뉴욕의 총체적 무능에 충격과 실망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시스템이 붕괴하고, 리더십이 부재하고, 시민의식도 아쉽습니다. 개인의 자유라는 존엄한 권리가 변질되어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비상식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저는 혹시나 모르니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한국행 비행기를 2번 연기하고 항공기에서도 최근 유증상이 있었던 이들을 특별 관리하는 공간이 있어 자처하여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과거에 유증상이 있었던 이들에겐 현장 검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다행히 음성이 나왔죠. 입국해서 제가 받은 국가 차원의 관심과 시스템은 감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는 국가주의적 발상을 기본적으로 경계하지만, 이번에는 속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여러 번 외쳤습니다.
1. 입국 후, 무증상자는 집으로 이동하고(물론 공항에 마련된 특별 교통수단만을 이용해서) 반면 최근 2주 전까지 유증상이 조금이라 도 있었던 이들은 의사 선생님들과 상담을 받고 코로나 검사를 받습니다. 공항에서 간이로 만든 장소에서 곧바로 검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검사를 받고 나니, 뉴욕에선 그렇게 받고 싶었는데 못했던 검사를 이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어이없어 허탈한 웃음이 나오더군요.
2. 그 이후 공항에서 대기하는데 저녁을 줍니다. 김밥이었는데, 마음 깊은 구석에서 감동의 감정이 꿈틀꿈틀 올라옵니다. 그리고는 검사 결과가 새벽에 나오기에 대기자들을 공항 근처 호텔로 이동시켜 다음 날 오전까지 휴식을 취하게 합니다. 모든 이동은 방역복을 입은 소방대원들과 경찰, 인천공항 관계자들이 군더더기 없이 진행합니다.
3. 다음날, 음성 판정자들은 호텔에서 나와 아침 도시락을 받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특별 이동수단을 이용해 집 근처 구청까지 옵니다. 구청에서는 완전무장 된 특별 자가용으로 각 사람을 집 앞 현관까지 “모셔드립니다”. 무슨 VIP 대접 받는 것 같습니다.
4. 집에 도착하자 3번의 전화가 옵니다. 저를 2주간 관리해줄 담당자와 구청 관계자의 전화, 그리고 자가격리앱 관련하여 몇 가지 지도를 받습니다.
5. 자가격리 이틀째, 큰 소포가 배달이 됩니다. 소포 안에는 손소독제, 체온측정기, 소독스프레이, 마스크 열몇 장, 쓰레기봉투, 그리고 2주간 먹을 수 있는 물, 밥, 라면, 휴지, 칫솔, 치약, 참치 등이 있습니다.
6. 유럽 등 몇 개 국가에서는 한국의 이런 시스템에 대해 “국가적 감시”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저는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과정에서 친절하고 세심한 배려를 느낍니다. 모든 해외입국자들이 개별적으로 이런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 사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제도와 디테일한 관리능력은, 선진국이라 일컫는 유럽과 미국에서 유증상자들도 병원 앞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그림과 큰 대조를 이룹니다. 체계적인 시스템도 그렇지만, 저는 모든 과정에 녹아 있는 “인간적 관심”에 그 찬사를 보냅니다.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세상에 현존하지 않는 글로벌스탠다드를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죠. 멋집니다. 자가격리 후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다큐영화 ‘헤르니모’의 전후석 감독이 쓴 글이다.
2020년 5월 6일자 미주판 중앙일보 오피니언 페이지 칼럼 ‘잠망경’ 필자 서량 시인-정신과 의사는 ‘소통(疎通), 쇼통(show通) 또는 소똥(bullshit)’ 이란 제목의 글에서 1992년 출간된 미국의 교육자 린다 맥칼리스터(Linda McCallisters의 저서 “I Wish I’d Said That!”: How to Talk Your Way Out of Trouble and Into Success)에 나오는 대화방식 여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간추린다.
귀족형-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어린아이가 “임금님이 빨가벗었다” 했던 말이 좋은 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하는 황당한 화법이다.
소크라테스형–문답식으로 사태를 설명하고 어떤 해결을 모색하는 대화 방법이다. 남을 가르칠 때 잘 쓰인다.
반추형-대화의 흐름과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마음가짐이다. 절대로 상대방과 의견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정도가 심한 경우에 화자는 무골호인이라는 말을 듣는다.
집정관형-단호한 발언이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 다분히 독단적이고 독재적이다.
후보자형-끊임없이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화자는 쉬지 않고 말하는 동안 세상이 평온하다고 굳게 믿는 듯하다. 입에 침 튀기는 수다쟁이다.
상원의원형-뚜렷한 목적이 있는 침묵을 고수한다. 사실 이들은 본심을 숨기기 위하여 말을 한다. 차분하고 계산적이면서 내숭스러운 화법.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그의 칼럼 글을 맺고 있다.
“이렇듯 필요한 말 대신 부질없는 말만 늘어놓는 대화를 ‘bullshit’이라 한다. ‘bullshit’은 ‘헛소리’라 번역하지만 ‘shit, 똥’과 합쳐진 말이기 때문에 듣기에 거북살스러운 비속어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당신은 더이상 지성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 한담(閑談)이라는 묵직한 한자어가 있지만 ‘불쉿’이 풍기는 짜릿한 뉘앙스가 없어진다.
‘bullshit’의 ‘bull’은 ‘황소’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은 고대 불어 ‘bole’에서 유래한 ‘가짜, 사기’라는 뜻이었다.”
자, 앞에 인용한 ‘대한민국 예찬론’은 위에 열거된 여섯 가지 대화방식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고, 전후석 감독이 나열한 여섯 가지 실사례들은 유구무언의 ‘황금률(Golden Rule)’ 아니 홍익인간과 인내천 법도 실습과 실행으로 온 인류의 전범이 되는 코스미안 비전의 구현이리.
최근 출간된 미국의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웨인 쾨스텐바움 (Wayne Koestenbaum, 1058 - )의 에세이집 ‘Figure It Out’ 제목 자체가 현재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햄릿(Hamlet, 1599-1601)’ 3막 1장에 나오는 주인공 햄릿의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에 문자 그대로 직면한 온 인류에게 던지는 긴박하고도 절박한 메시지가 되리라.
영어로 ‘figure it out,’ 이를 줄여서 ‘go figure’라 하면 ‘난 이해가 잘 안 되는데, 네가 한번 말해봐 (잘 좀 파악해서 설명해봐)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에세이집 ‘Figure It Out’에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어떤 글이든) 글쓰는 사람의 책무는 말 갖고 놀고 또 계속해서 노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장난이란 결코 말에 담긴 뜻을 뿌리 뽑아버리거나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고 지나간 역사를 더듬어 상처와 상흔을 찾아내 치유하고 양심과 양식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The writer’s obligation is to play with words and to keep playing with them, not to deracinate or deplete them, but to use them as vehicles for discovering history, recovering wounds, reciting damage and awakening conscience.”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깨우침의 경인구(驚人句) 하나 들어보리라. 그의 우화집 수상록 ‘방랑자 (The Wanderer, 1932)’에 나오는 ‘독수리와 종달새(THE EAGLE AND THE SKYLARK)’ 이야기다.
독수리와 종달새
높은 산언덕에서 종달새와 독수리가 만났다. 종달새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 인사말에 독수리가 내려다보면서 성의 없이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대답한다.
“그래.”
종달새가 또 말했다.
“선생님, 다 평안하시지요.”
“음.”
독수리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야 다 좋지만 우리 독수리들은 새 중에 왕인 걸 넌 모르나? 우리가 너에게 말 걸기 전엔 네가 감히 우리에게 먼저 말 붙일 수 없다는 걸.”
종달새가 다시 말했다.
“우린 다 같은 한 가족이라 생각하는데요.”
독수리가 종달새를 내려다보면서 경멸조로 물었다.
“너와 내가 같은 한 가족이라고 그런 따위 소리를 누가 네게 하더냐?”
약 올리듯 종달새가 말했다.
“한 가지 잊고 계시는 걸 상기시켜드리지요. 나는 당신만큼 하늘 높이 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노래까지 불러 지상의 모든 생물을 즐겁게 해줄 수 있지만, 당신은 아무에게도 아무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화가 난 독수리가 소리 질렀다.
“즐거움이라니! 쪼끄만 이 건방진 새끼 같으니라고. 내 입부리로 한 번만 쪼면 널 당장 죽여 버릴 수 있어. 넌 내 발가락만 한 새끼야.”
그러자 종달새가 팔짝 날아 독수리 등에 올라타고 쪼기 시작했다. 독수리는 급하게 높이 날아올라 종달새를 떨쳐버리려 했으나 허사였다. 결국 산 언덕 바위로 돌아오고 말았다. 작은 종달새를 등에 얹힌 채 어쩌지도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마침 그때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이 광경을 보고 너무 웃다 못해 발랑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이를 내려다본 독수리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너 느린뱅이! 땅에서 겨우 기는 녀석이, 뭘 보고 웃는 거냐?”
거북이가 대답했다.
“왜요, 당신은 말이 되었군요. 작은 새 한 마리를 등에 태우고. 그 작은 새가 당신보다 더 훌륭한 새이죠.”
이 말에 독수리가 대답했다.
“년 네 일이나 봐. 이 건 내 형제 종달새와 나 사이의 우리 한 가족 집안일이니까.”
THE EAGLE AND THE SKYLARK
A skylark and an eagle met on a rock upon a high hill. The skylark said,
“Good morrow to you, Sir.”
And the eagle looked down upon him and said faintly,
“Good morrow.”
And the skylark said,
“I hope all things are well with you, Sir.”
“Aye,”
said the eagle,
“all is well with us. But do you not know that we are the king of birds, and that you shall not address us before we ourselves have spoken?”
Said the skylark,
“Methinks we are of the same family.”
The eagle looked upon him with disdain and he said,
“Who ever has said that you and I are of the same family?”
Then said the skylark,
“But I would remind you of this, I can fly even as high as you, and I can sing and give delight to the other creatures of this earth. And you give neither pleasure nor delight.”
Then the eagle was angered, and he said,
“Pleasure and delight! You little presumptuous creature! With one thrust of my beak I could destroy you. You are but the size of my foot.”
Then the skylark flew up and alighted upon the back of the eagle and began to pick at his feather. The eagle was annoyed, and he flew swift and high that he might rid himself of the little bird. But he failed to do so. At last he dropped back to that very rock upon the high hill, more fretted than ever, with the little creature still upon his back, and cursing the fate of the hour.
Now at that moment a small turtle came by and laughed at the sight, and laughed so hard that she almost turned upon her back.
And the eagle looked down upon the turtle and he said,
“You slow creeping thing, ever one with the earth, what are you laughing at?”
And the turtle said,
“Why I see that you are turned horse, and that you have a small bird riding you, but the small bird is the better bird.”
And the eagle said to her,
“Go you about your business. This is a family affair between my brother, the lark, and myself.”
1782년 6월 20일, 미국은 흰머리 독수리(bald eagle)를 미국을 상징하는 새로 선정했다. 이유는 흰머리 독수리의 긴 생명과 강인한 힘 그리고 위풍당당한 외모에다 그 당시로써는 미 대륙에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