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섹스는 마약과 유사하다고 한다. 마약을 처음 접하면 극도의 흥분을 느끼지만, 사람의 몸은 이 마약에 곧 적응되어 같은 양의 마약은 더 이상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색다른 더 많은 양의 마약을 찾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이전의 소유에 익숙해지면서 계속 새로운 소유를 추구하게 되고, 결국 더 이상의 소유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면 불만만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젊은 날 한 직장에 근무한 바람둥이 친구가 있다. 색마란 별명을 내가 붙여준 이 친구는 온갖 공을 다 들여 지극정성으로 접근해 제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 즉시 상대방 여자에겐 흥미를 잃고 다른 여성 편력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이 이 친구는 결혼한 다음에도 여전했고, 해외 출장이라도 갔다 오면 출장 중에 만난 외국 여성들과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아내한테까지 자랑삼아 보여주곤 했다. 이 친구 결혼식 사회를 본 내가 보다 못해 한번은 이 친구 부인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남편의 이런 바람기를 눈 뜨고 봐줄 수 있소?”
그랬더니 이 친구 부인의 통 큰 대답이 체념이었는지 달관이었는지 몰라도 가히 ‘해심(海心)’이었다.
“그래 봐야 섹스밖에 더했겠어요.”
그래서였을까. 그는 그 후에 정부 고위직에도 있었고 대학에서 교편도 잡았으며 대형 교회 장로님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드님 한 분은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님이 되었다고 한다. 성도덕이나 성윤리를 떠나 생각 좀 해보면 이 친구는 남성으로서 그의 유전자에 충실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되도록 많은 여성에게 씨를 뿌려야 했을 테니까.
나 자신을 포함해 대부분의 남성들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간에 길에서나 어디에서나 자신과 같이 있는 여자를 옆에 두고도 언제나 다른 더 예쁜 여자를 쳐다보게 되지 않던가. 반면에 여자는 여자들대로 더욱 더 건장하고 잘생기고 돈 많고 권력 있고 유능하고 성공한 남자의 씨를 받고 싶어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며, 따라서 ‘승자독식 The winner takes all.)’을 원하는 것이 자연의 질서일 것이다.
‘폭력은 어디서 왔나’라는 일본 교토대 총장 야마기와 주이치(山極壽, 1952 - )가 쓴 책을 보면 일본원숭이 암컷은 털을 골라주는 수컷하고는 교미하지 않지만 공격적으로 덤비는 수컷하고는 교미한다. 흔히 여자는 자기에게 잘해주는 착한 남자보다는 못되게 구는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는 ‘나쁜 남자 콤플렉스’란 말이 있는데 어쩜 사실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여기 엔 진화적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근래 유행하는 진화 심리학 혹은 행동 생태학은 행위나 감정 등이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현상이 아니라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 유익한, 진화적으로 중요한 재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일본원숭이에게 털을 골라주는 관계는 친밀한 사이로 많은 경우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이기에 암컷의 입장에서 근친교배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친밀한 사이에서의 교미를 하지 않는 것이리라.
어떻든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보다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늘 아쉬워하면서 탐내지만, 그 누구라도 그 무엇이든 ‘다 가질 수 없다(You cannot have them all)’는 엄연한 사실과 현실을 인정하고, 없는 것을 한탄하는 대신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일이어라.
있으면 있는 만큼 짐이요, 없으면 없는 만큼 가볍지 않은가. 또 한 편으로 사냥에 비유하자면 모든 스릴과 신명, 자극과 흥분이 뭣이고 좇는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라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러니 뭣이고 소유한다는 것은 있는 것을 잃는 것이요,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얻은 것이 되리라.
“예술에 정년이 있나요? 교수로서 직함은 내려놓지만, 거문고 연주는 계속됩니다.”
국내 최고의 거문고 명인으로 꼽히는 정대석(당시 65세)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2015년 말 정년퇴임을 하면서 한 말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예술 중의 예술이 ‘인생예술’이라면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고 해야 하리라.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선 ‘사오정(45세 정년)’의 칼바람이 분다고 했다. 얼마 전 서울시가 시민들의 평균 은퇴연령을 조사해 봤더니 남성은 53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2016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정년 60세 의무화가 시행된다는데 기업들이 제도 시행 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자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세대는 50대 고참이라고 했다.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촉발된 고용 재난으로 실업자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코로나 확산 ‘2차 파동’ 땐 전례 없는 경제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 심각히 우려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대생 한 명이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상위 3% 이내인 서울대생이 열심히 해도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회라면 이런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적 동기와 외적 안목의 문제가 아닐까. 특히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으리라. 내게 있는 것과 없는 것 말이어라. 있는 것은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지만 없으면 허허실실하며 되는 대로 생길 일만 있지 않으랴.
자, 냉철히 우리 생각 좀 해보자. 사십대 ‘사오정’이든 오십대 ‘오륙도’이든 이를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남은 인생의 2막 3막이 결정되지 않겠는가. 직장이고 결혼이고 간에 혈기 왕성하고 분별없는 젊은 나이에 첫 단추를 제대로 딱 맞게 끼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니랴. 일이나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해보고 같이 살아 본 다음에야 맞는지 안 맞는지 잘 알게 되지 않던가. 그렇다면 설령 시행착오로 반평생을 보냈다 하더라도 나머지 반평생은 각자마다 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을, 꼭 같이 살아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 새로 다시 시작해 볼 절호의 계기와 기회로 삼아봄 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궂은 시행착오조차도 좋은 거름이 될 수 있지 않으랴.
요즘 한국에선 젊은 여자들 눈에 키 작은 남자는 ‘루저’ 얼굴이 못생겼으면 ‘후져’ 돈 없으면 ‘꺼져’ 그리고 이 셋 다면 ‘뒤져’라는데, 뭘 몰라도 많이 모르는 얘기인 것 같다. 남자라면 키가 아니라 꿈과 열정이 없는 남자가 ‘루저’, 기개와 용기 없는 남자가 ‘후져’, 돈이 많지만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남자가 ‘꺼져’다. 또 여자라면 심보가 고약한 여자가 ‘루저’, 얼굴이 아니라 개성적인 성격이나 인성이 훌륭한 인간미가 없으면 ‘후져’, 희생심 없는 여자가 ‘꺼져’다.
직장을 구하지 못했든 아니면 명퇴를 당했든 또는 결혼을 아직 못했거나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했든 간에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에게 만에 하나 혹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내가 인생 80여 년 살아오면서 겪은 얘기를 좀 해보리라.
나는 어려서부터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 일정시대 평안북도 태천에서 열두남매 중 열한 번째로 태어나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출해 길거리에서 신문팔이 하며 학교를 다니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6.25 사변이 일어났다. 동란 중에는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했고, 9.28 수복 이후에는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해 졸업까지 했으나 취직할 곳이 없었다. 대학에서 아무 쓸모없는 종교 철학을 공부했기에 은행이나 회사 입사시험을 볼 자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신학을 한 것도 아니라서 성직자가 될 수도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군복무 할 때부터 펜팔로 사귀기 시작한 아가씨와는 제대 후 단 세 번 만난 본 후 절교를 당하고 말았다. 아가씨 어머님께서 대학에서 뭘 전공했느냐 물으시기에 종교철학을 공부했다고 밝힌 직후의 일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궁즉통(窮卽通)이라 했던가. 응시자격에 전공과목 제한이 없던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에 입사해서 기자가 되었으나, 그 당시 기자 봉급이라야 담뱃값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활수단으로 자금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조달해 ‘해심(海心)’이란 이색 주점 대폿집을 하게 됐고, 그러다 취중에 한 아가씨와 하룻밤을 지내는 바람에 결혼까지 했다가 2년 만에 서로 맞지 않아 이혼하고 보니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하는 수 없어 애들을 위해서라고 18년을 더 노력해봤으나 소용없어 처음 결혼한 지 20년 만에 다시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 후 25년 전 펜팔로 만났다가 서울에서 헤어진 여인을 뉴욕에서 다시 만나 재혼을 했으나 10개월 만에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세 번째 여자를 만나 30여 년을 살아오고 있다. 내 첫 아내도 나와 헤어진 후 다른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해 잘살고 있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좌우명이었다는 ‘여정이 보람이다 (The journey is the reward)’는 말 그대로 그 누구와 결혼해 살든 아니면 혼자 살든 간에 인생여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 외에 그 이상 또 뭐가 있으랴. 사람마다 제각기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볼 일이다. 후반생에는 더욱 그렇지 않으랴.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지진도, 유행성 질병 전염병도, 온갖 감정적 고통을 견뎌내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침실에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Man endures earthquakes, epidemics, the horrors of disease, and all sorts of emotional torment, but the most agonizing tragedy was, is, and will be the tragedy of the bedroom.”
20세기 이후 ‘픽업 아티스트(Pickup Artist)’라고 여성과의 성관계를 위해 유혹하는 일이 자신의 직업이라는 남성을 지칭하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최소한의 예의와 예의를 중시하던 이탈리아의 모험가 자코모 카사노바(Giacomo Casanova 1725-1798)의 설 자리는 사라졌다고 한다. 카사노바도 직업이 여성을 유혹하는 거라고 말한 적은 없다니까.
얼마 전 영국 온라인 신문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픽업 아티스트를 둘러싼 별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된 책은 미국의 블로거 (blogger) 루쉬(Roosh) V, 본명은 다리우시 발리자데(Daryush Valizadeh, 1979 - )의 <뱅: 더 많은 여성을 사냥하는 픽업의 성서(性書) Bang: The Pickup Bible That Helps You Get More Lays>이다.
저자는 이 책을 ‘여성을 사냥해 눕히는 교과서(textbook for picking up girls and getting laid)’라고 설명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 책이 강간을 묵인하고 성폭력을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책에는 술에 취한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 법을 비롯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저자 자신의 경험담이 가득하다. 서평가들은 아마존의 책 판매 페이지에 책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하며 부정적인 댓글 공격을 퍼붓고 있다. 한 서평가는 별점 1개를 주며 “공격적이고 불편하다.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한 서평가는 “아마존에서 책을 빼달라. 그는 범죄자이고 역겨운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루쉬 V는 자신이 강간이나 납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며 남자다운 남성을 회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반대급부로 별점 5개를 주는 이들도 늘었다. 아마존에서 1,000여 명의 독자들이 별점을 매긴 가운데 만점인 5개의 별이 50%, 1개의 별이 36%로 극단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다리우시 발리자데는 미국 출신의 픽업 아티스트로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을 ‘신남성주의자(Neomasculinist)’라 부르며 “성폭행을 합법화해서 여성들이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가 조직한 ‘왕들의 재림 (Return of Kings)’이라는 모임은 국제 오프라인 모임을 계획하는 등 과격한 망동(妄動)으로 비판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프라인 모임이 계획되었지만 비난이 이어지자 취소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부터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늘어나며 우려되고 있다는 보도다. 몇 년 전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라 주장하는 차모(당시 22세) 씨가 처음 만난 여고생을 강간해 입건되기도 했고, 2013년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의 범인도 자신을 픽업 아티스트라고 자칭했다고 한다. 이들은 온-오프라인 강좌를 개설해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가르쳐준다며 자신의 체험담이나 몰카를 유포하는 등 범죄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단다. 이와 같은 ‘여성 사냥’으로 성착취물을 제작-공유한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 사건이 최근에 터지지 않았는가.
오늘날 미국에서도 아이들이 성교육을 포르노를 통해 받는다고 하는데, 더 이상 쉬쉬하지 말고, 섹스가 수치스럽다거나 불결하다거나 외면할 일이 아니라고 주지시키고, 부모나 학교 선생님들이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성교육을 자녀와 제자들에게 솔직하게 제공하는 것이 시급한 것 같다. 결코 사냥은 사랑이 아님을 일찍부터 깨우쳐 줘야 하리라.
독일의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Jakob Boehme 1575-1624)도 이렇게 말했다.
“영원이란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 그 자체가 되는 섬광처럼 번쩍이는 그 일순간이다. Eternity consisted of a flash of a lightning-like moment when we became the very object of our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