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짓궂은 제 친구 하나가 넉 줄짜리 시구(詩句)를 주며 이것으로 시(詩) 하나 지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음에 들면 점심 한 끼 잘 사겠다는 약속과 함께.
개미는 구멍 찾기 어렵고
새는 둥지 찾기 쉽네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들은 싫어 않고
하나만 있어도 손님들은 싫어하네.
아무리 보아도 네 행(行)이 따로따로 놀고, 도무지 내용의 연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날도 점심 후 산책 시간이 되어서 동네공원에 갔습니다. 푸른 하늘, 흰 구름, 초록의 나무들, 그 사이로 난 기다란 산책길, 매미 소리.....
수수께끼 시구를 생각하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뺨을 스치는 바람이 스산하고 이상합니다. 뚜둑 뚝뚝 빗방울이 뜯기는 듯해서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조금 전 파란 하늘은 사라지고 검은 구름 성난 얼굴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곧 하늘이 캄캄해지며 천둥 번개 바람을 동반한 무서운 순간이 나를 덮쳤습니다. 공원 속이라 어디 피할 곳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조그만 쉴 터를 찾아 우선 몸을 피했습니다. 시구고 뭐고 다 잊었습니다. 이미 머리에서 발까지 다 젖었고 옷은 내 몸에 찰싹 붙었습니다.
신발에 붙었던 꺼멓게 젖은 흙은 이제 운동화에서 하얀 양말로까지 밀고 올라왔습니다. '에라 그냥 가자', 나는 소나기 속을 동화 속 아이처럼 뛰었습니다. 집에 와, 다 벗고 샤워하고 새 옷 입고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하늘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아! 그런데....
내 마음속에 시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지체 없이 노트북을 꺼내 휘갈겼습니다. 물론 나중에 수정은 했지만....
한 소나기 천둥번개 세상을 쓸고 간 후
발밑의 개미는 제집 찾아 헤매고
나무 위의 새 둥지는 의연히 남았구나
불도(佛徒)들의 흙 발자국, 절 복도에 가득해도
걸레든 스님 얼굴 환한 미소 그치잖네
절 아래 냉면집, 손님으로 그득한데
그 많은 면가락 중 머리칼 하나
손님은 화가 나서 소리쳐 쥔 부른다
마음속 천둥번개 계속 치고 있구나
친구에게 이 시를 주고 점심 한 그릇 잘 얻어먹었습니다.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