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요즘처럼 사람들이 만나면 돈 이야기를 많이 하던 때는 과거에 없었을 것이다. 서민들은 몇십 센트를 아끼기 위해 할인 쿠폰을 가위로 잘라 지갑에 넣고 쇼핑을 하는데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월가의 뉴스는 그야말로 별세계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임원들의 연봉은 보통 “0(영零)”이 여섯 개(십만 불 대)에서 시작해 일곱(백만불 대), 여덟 개(천만 불 대)까지도 쉽게 올라간다.
오늘은 이 “0”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 ‘0’이야말로 경제 환란의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무대 위 마술사처럼 ‘0’을 가지고 대중을 홀려 결국 심한 빈부의 격차를 초래한 장본인도 함께 가려내고자 한다.
우선, 우리가 쓰는 이 숫자 체계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데 이것이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겨우 70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인구도 적고 재산이라야 조그만 집과 소나 양 같은 가축 정도를 가지고 생활했을 때였으니 계산할 것도 별로 없었다. 가축을 셀 때는 일상 사용하던 문자를 원용해서 썼다. 즉 알파벳에서 따온 문자를 사용해 I, II, III, IV, V, VI… X, 그러다가 100단위가 되면 Centry의 첫 자를 써서 C를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더하기와 빼기만 하면 셈은 다 끝나는 것이다.
점차 인구가 늘어나고 장사의 규모가 커지니 덧셈 뺄셈만 가지고는 제한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중에 13세기경 십자군 전쟁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일진일퇴 싸움을 하며 회교도들과의 접촉이 잦아지자 서양사람들은 회교도들이 쓰는 숫자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배워보니 장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지식인들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중동사람들한테 배웠으니 <아라비아 숫자>라고 이름 지었지만 정작 원산지는 인도라고 알려져 있다. 아라비아 숫자의 우월성은 일단 우리가 숫자를 계산을 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것 없이는 구구단을 만들 수가 없다. 이에 더 나아가 곱하기, 나누기, 승수, 근(Root)구하기를 해보라.
종래 서양의 숫자 체계인 I, V, X, C로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중들에게 숫자 1에서 9까지 가르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다음에는 처음으로 “0”이라는 숫자를 이해시켜야 했다.
“아라비아 숫자는 ‘0(영)’으로부터 시작되고 ‘1’은 ‘0’ 다음에 나옵니다”
“’0’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0’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왜 씁니까? 숫자는 물건을 세라고 있는 것인데, ‘0’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면 없애버리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들의 말대로 0을 뺄 수도 없는 게, 열, 백, 천을 숫자로 쓸 때 0을 빼고는 기재할 수가 없다. 대중들은 마지못해 ‘0’을 숫자의 계열(Family)에 넣는데 동의했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거의 300년 동안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보다는 종래에 쓰던 알파벳 숫자를 그대로 사용했다.
16세기에 들어오면서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상품 품목과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자 이제는 도저히 전통적 숫자 표기로는 사업을 늘릴 수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프란체스코라는 성당 신부가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 '복식부기법'을 고안해 냈다. 상인들에게 이 '복식부기법'은 하늘이 내려주신 구세주였다, 이때부터 아라비아 숫자는 생활, 과학, 예술 모든 분야에서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동양권보다 미개국의 신세를 면치 못했던 서양 제국은 이 숫자를 활용하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했고 드디어 산업혁명의 기초를 닦게 되었다.
도대체 “0”이 무엇일까? ‘0’이 말 그대로 “무(無)”라면 그 없는 것(nothing)을 구태여 숫자의 제일 앞에 세워놓는 이유는?
대답 : 0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상징하고 대표한다. 즉 안 보이지만 있는, 아주 중요한 그 무엇이다.
사람 사이에 믿음은 볼 수 없지만 이것이 있기에 그 사람에게 돈도 꾸어주고 외상 거래도 한다. ‘0’이 도입되고부터는 이런 외상 거래를 할 때 신용장(信用狀, Letter of Credit)이란 문서를 만들어 양측이 서명하고 이 서류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다. 믿음, 신용이 종이 위에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상거래 혁명의 시작 나팔이 울렸다.
1454년 구텐베르크 인쇄기가 선보였다. 이 인쇄기의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면죄부>였다. 그때까지 기독교의 ‘구원’이란 각 개인이 회개를 통해서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무형의 은총>이라고 생각되었다. 면죄부는 이 ‘무형의 은총인 구원’도 ‘유형의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놓았다.
인쇄된 면죄부를 보고 상인들에게 번쩍하는 영감이 떠 올랐다. 무형의 ‘구원’도 인쇄해서 팔아 돈을 만들었으니 신용장도 대량으로 인쇄기로 찍어 팔면 큰 이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의 생명’이나 ‘미래의 시간’ 등 모든 무형의 재화를 숫자로 환산했고 그것을 인쇄기는 밤낮으로 찍어냈다. 소위 ‘보험’, ‘헤지펀드’ 등의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팔아넘겼다.
이 방법은 경제 규모를 한없이 급성장시켜, 지금은 온 세계가 조직적으로 한 체제로 묶이게 되었다. 미국이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우뚝 서자 미국 경제 엘리트들은 이 방법을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198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은 이 신용이 바탕이 된 <0>과 <인쇄기>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 사람이었다. 취임하자 그는 과감하게 공급 측면에서 경제에 접근하여 회사 경영자와 증권사의 창의력에 의존해서 경제를 팽창시키고자 했다. 그때까지 경영자들을 옭아맸던 각종 제한 법령들을 폐지 내지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소위 ‘레가노믹스’라고 해서 경제 엘리트들의 경제활동을 통해 전체 사회의 물량(Pie)을 늘려나간다는 정책이다. Pie가 커지니 노동자와 일반 백성들은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주워 먹어도 덕을 본다는 이론이다.
그 후의 대통령들도 이 정책을 확대 재생산했다.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이 없이 모두가 레가노믹스의 추종자들이다. 이후 여러가지 경제 엘리트들의 전횡을 막는 법령들이 유명무실해지자 인쇄기로 찍어내는 숫자의 행진은 더욱 대담하게 욕심을 잉태했고, 욕심은 버블이 되어 마구 커져만 갔다.
그때까지 탄탄한 실물경제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들었던 2차산업은 어느덧 서비스 산업에 자리를 내주고 밀려났다. 교육 많이 받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근사하게 증서를 만들어 인쇄만 하면 대중들은 그것들을 사게 되고 금융회사의 배는 점점 더 뚱뚱하게 돈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더 이상 살 사람들이 없어지자 가난한 사람, 신용불량자에게도 자택 소유의 꿈을 심어주고 증서를 외상으로 팔아넘겼다. 그것이 <서브몰게지>이다. 그 사이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2차산업의 공장은 하나둘 문을 닫고 파산하거나 썰물처럼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미국은 속이 텅 빈 버블천국이 된 것이다. 2008년 하반기 그 버블이 터졌다. ‘0’으로 대표되는 신용 사회는 한계점에 도달하면 터지게 되어있다. <0>과 <인쇄 종이>로 지어진 화려한 성곽은 신용의 지진으로 휴짓조각으로 전락했다. 경제 파탄의 결과 민주당의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강력한 리더쉽으로 경제의 주범들에게 자갈을 물려달라고 “Yes, We can!”을 외치는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전쟁과 적자 예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그 또한 추한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1% 부자들을 위해 99%가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사회는 조금도 변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황혼은 이렇게 오는가? 황혼의 해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정홍택]
서울대학교 졸업
KOCHAM(Korea Chamber of Commerce in U.S.A.) 회장
MoreBank 초대 이사장
Philadelphia 한인문인협회 창설 및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