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아직 살아계셨어요’
제임스 미치너James Michener의 책에 웃지 못 할 얘기가 나온다. 미치너는 해군 역사가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마커스 굿리치의 소설『딜라일라(Delilah)』가 해군과 전함에 관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에, 미치너가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미치너는 굿리치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딜라일라』를 성공적으로 끝내려 애썼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다. 그 중 하나는 기자들이 굿리치의 작업실에서 『딜라일라』속편의 원고를 비롯한 다른 세편의 장편소설 원고가 가득 든 상자를 봤다는 얘기였다.
어느 날 미치너는 굿리치가 네 편의 잠재된 걸작을 출판하지 않은 채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자신처럼 해군 출신이자 재능 있는 작가가 최고의 업적을 끝마치지 못하고 죽은 것에 대한 슬픔과 커다란 상실감에 대해 언급하는 글을 썼다. 매슈 브루콜리라는 편집자에게 글을 넘긴 후에는 그 원고가 누구에게 전달되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치먼드에서 전화가 왔다.
“미치너 씨죠? 『딜라일라』에 대해 평론 쓴 분 맞죠?”
“네, 그렇습니다”
“난 마커스 굿리치요”......
“아니, 아직 살아계셨습니까? 얼마 전에 당신의 조사를 썼는데요. 리치먼드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이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뇨,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어요. 그 평론이 정말 멋지다고 말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가 다시 굵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평론을 써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 책은 또 다른 생명을 얻을 겁니다. 당신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Episode 2: ‘소설은 나도 못쓰는데’
‘화두집사’는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재빨리 메모해서 에세이를 쓰곤 한다. 또 오랜 믿음으로 일요일마다 정해진 경로를 통해 예배당에 들어간다. 교회까지는 상당한 거리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주차를 하고 다니는 것이 습관화되었는데... 어느 날 화두집사가 누구와의 마찰을 두려워해 ‘아무개를 피해 다닌다’는 얘기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어디나 그렇듯 소수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것은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교회만큼은 새로운 소식도 많고, 풍문도 많고, 누가 어떻더라 하는 식의 얘기가 많이 들려오는 곳. 심심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얘기인지, 또는 고양이 같은 은밀함과 매의 예리한 눈으로 본 관찰인지 모르지만, 그 소설 같은 얘기를 듣고 화두집사는 그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교회가 그토록 소설 쓰는 곳일 줄이야……. 물론 그런 소설 같은 얘기를 만드는 데는 정보수집자와 소설가로서의 목회자의 상상력이 한몫 했을 것이다. 화두집사 왈, “소설은 나도 못쓰는데…….”
Episode 3: ‘원고에는 ‘차분히’ 라고’
C교회 K목사는 중소도시의 어느 교회에 부임해 이제 삼년을 맞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목회 도중 흥분하는 일이 부쩍 늘어났다. 이른바 ‘호통목사’의 강론이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로또 판매점에 줄서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발걸음으로 절대 거룩한 성전에 들어오면 안 됩니다.” “로또를 사면 집안이 패망합니다. 아셨지요.”
그 다음 주 설교에서는, “지난번 근처 로또 판매점에서 2등 당첨된 것 아시죠, 근처에 가시면 안 됩니다.” 라는 내용을 이어갔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앞에서 들리는 작은 말소리. “목사가 어쩜 저렇게 잘 알고 관심이 많지?... 우리보고는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
그 다음 주는 코로나가 많이 진정된 관계로 예배 참석자가 많아보였다. 엄숙하게 예배가 진행되던 중 목사의 톤이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그날 목사의 목소리는 한없이 커져갔다. 근래 가뜩이나 호통 치듯 강론하는 K목사의 설교를 들어온 터라, 교인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겠으나... 그날 유달리 화를 내는듯한 목소리를 듣고 내심 놀랐을 터. 자신도 다스릴 수 없을 정도로 흥분이 고조되어 외치다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까’ 궁금해 하며 모두 긴장한 순간……. 결국 돌같이 굳어있던 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원고에는 ‘차분하게’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저기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 날이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