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현 님에게
안녕하십니까.
2020년 9월 22일자 한국일보 연예스포츠지에 실린 윤상근 기자의 짤막한 기사 <홍수현 "결혼? 좋은 사람 나타난다면 안 할 이유 없다">를 읽고 80대 할아버지 입장에서 몇 자 적습니다.
친구가 "연애를 해야 결혼을 하지. 싱글인지 대체 얼마나 됐어. 너무 길어"라고 말하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돼가고 있는 과정이야.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 되면 좋은 사람 잘 알아볼 수 있겠지"라고 하셨다는데, 참으로 성실하고 성숙한 마음가짐이 존경스럽고 훌륭합니다.
흔히 나이를 먹으면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 가는 것이라고, 사람은 누구나 평생토록 더 좀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면 그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 없는 일일 테고, 또 '좋은 사람 되면 좋은 사람 알아볼 수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이미 더할 수 없이 '좋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라면, 언제라도 '좋은 사람'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말에 '잘 될 나무 떡잎 때부터 알 수 있다'하고, 또 ‘제 눈에 안경'이라 하듯이,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첫 단추를 잘 맞춰 끼워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조금이라도 참고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겠습니다.
남들처럼 나도 어려서부터 '짝사랑'을 많이 해오다 청소년 시절 목숨까지 나의 모든 것을 걸었던 '첫사랑'에 실연당한 후로 취중 만취 상태에서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아가씨와의 '사고'로 결혼까지 했다가 2년 만에 합의이혼하고 보니 아내가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 ‘애들을 위해서’ 더 좀 노력해봐야겠다고 18년을 계속 더 애써 본 끝에 애들 엄마와 다시 헤어지게 되었죠.
그 후로 젊은 날 군 복무 시절 펜팔로 사귀던 아가씨와 제대 후 몇 번 데이트 하다 아가씨 어머님의 반대로 절교당한 후 25년이 지나 뉴욕에서 극적으로 재회, 재혼했으나 10개월 만에 다시 헤어진 후 50대 중반에 ‘(인성이) 좋은 사람' 만나 30년째 잘 살아오고 있습니다. 내 세 딸들에다 두 의붓딸 둘까지 딸 다섯 잘 키워 놓고 외손자 둘과 외손녀 하나 두고서.
이상적으로 가장 바람직하기는 삶과 사랑과 섹스가 ‘삼위일체’로 같은 하나가 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편과 사정에 따라 편의상 삶 따로, 사랑 따로, 섹스 따로, 추구하게 되는가 봅니다. 젊어서 하는 '사랑’이란 호르몬 작용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섹스는 다 한때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이란 (‘혼’의 한자를 바꿔) ‘결육(結肉)’ 이상의 ‘결혼(結婚)’이 아닌 ‘결혼(結魂)’이 되어야 할 텐데, 실제로 이런 결혼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요. 하기는 간혹 죽은 사람과 올리는 ‘영혼의 결혼식’도 있기는 있지만서도요. 장편 체험소설 ‘잃어버린 너’의 김윤희와 엄충식의 경우에서처럼.
젊은 날 나는 친구의 결혼식에서 주제넘게 주례사가 무색할 사회를 봐 주례선생님을 화나시게 한 일이 있습니다. 참다운 결혼이란 영혼과 영혼의 결합일 것임으로 결혼식은 두 사람이 이 세상 떠날 때 하기로 하고 우선 두 사람의 육신이 결합하는 ‘결육식’부터 거행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지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소년 시절에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의 ‘에반잴린,’ 알프레드 테니슨의 ‘이녹 아든’, 쿠라다 하쿠조의 ‘사랑과 인식의 출발’ 등을 탐독했고,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로 사형수와 처녀의 순애 일기 ‘사랑과 죽음이 남긴 것’을 너무도 감명 깊게 읽고 그런 결혼관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본의 어떤 살인범이 사형 언도를 받고 사형수로 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옥중에서 쓴 그의 수기가 신문에 발표되자 어떤 한 여성 독자가 이 사형수를 위로하는 편지도 보내고 그를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결혼까지 하여 법적인 부부가 되나 단 하루도 부부생활을 못 해본 채 부인의 애절한 구명운동도 허사가 되어 남펀은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맙니다. 나도 이같이 절대적인 사랑을 해보고 싶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그래도 평생토록 이런 꿈만 꾸어오다가 다 늦게나마 나 대신 내 아이가 그런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2년 7월 만으로 42세가 된 내 둘째 딸이 그동안 제 눈에 드는 남자를 못 만나 싱글로 지내다가 피부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환자 기금 모금 하러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린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 2013년 2월 16일 그의 장례식이 아닌 그의 삶을 축하하고 기리는 Life Celebration Party를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성(城)에서 그리고 3월 16일 이 남자와 에딘버러 아카데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우생의 졸저 ‘어레인보우: 무지개를 탄 코스미안’ (자연과인문, 2011)의 영문판 ‘Cosmos Cantata: A Seeker’s Cosmic Journey’(2013)를 출간한 미국출판사 Mayhaven Publishing, Inc. 대표 Doris R. Wenzel이 시 한 편을 써 보내와 나는 이 시를 결혼식에서 낭독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남녀 한 쌍에게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두 젊은 남녀는
이들을 아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이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네.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두 젊은 연인들은
서로에 대한 헌신으로 똘똘 뭉쳐 오롯이
호젓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삶의 축배를 드네.
내가 만난 적은 없어도 이 두 사랑스런 영혼들은
저네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전 세계에 여운으로
남는 감미로운 멜로디를 창조하네.
도리(도리스의 애칭)
To The Couple I Do Not Know
I have never met those two young people,
Impressing those who know them,
Inspiring those who don’t.
I have never met those two young lovers,
Wrapped in devotion to one another,
Celebrating life alone and with others.
I have never met those two sweet souls,
Securing a world of their own,
While creating a lingering melody for the world.
Doris
결혼한 지 5개월 후 46세로 남편이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딸에게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Gordon이 평화롭게 숨 거두기 전에 네가 하고 싶은 말들 다 하고 그가 네 말을 다 들었다니 그 영원한 순간이 복되구나. 난 네 삶이 무척 부럽기까지 하다. 너의 사랑 너의 짝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삶과 사랑을 그토록 치열하게 시적(詩的)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이 장수하여 백 년 이상을 산다 한들 한 번 쉬는 숨, 곧 바닷가에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에 불과해 우주라는 큰 바다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니. 그러니 우리는 결코 우리 내면의 코스모스바다를 떠날 수 없단다.
사랑하는 아빠가.
Dearest Su-a,
It is good to know that Gordon listened and understood what you had to say for an ‘eternal hour’ before he stopped breathing and he was gone so ‘peacefully.’
Su-a, you are such an amazing girl. I’m even envious of you, not only for having found the love of your life but more for living it to the best, to the fullest, so intensely, so poetically, very short though it was only for 13 months.
Even if one lives to be over a hundred, still it will be nothing but a breath, a droplet of waves breaking on the shore, returning to the Sea of Cosmos. Thus we never leave ‘the sea inside.’
Love, DadXX
다음은 딸 아이의 조사(弔辭) 일부입니다.
그를 만난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도록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는지, 우리가 같이한 13개월이란 여정에서 아무런 후회도 없고, 나는 내 삶에서 완벽을 기하거나 완전을 도모하지 않았으나 어떻게 우리 자신 속에서 이 완전함을 찾았으며, 우리는 불완전한 대로 완전한 사랑이란 절대 균형을 잡았습니다.
I spoke of how ridiculously lucky I felt to have met him.
How I had no regrets about anything on our journey.
I told him that I had never sought for perfection in anything in my life.
But that somehow I had found it.
I had found it in ‘us.’
We were perfect.
Perfect in our imperfections too.
Our imperfectly perfect balance.
(이 딸 아이의 에피소드는 2015년 5월 5일 자연과인문에서 출간된 ‘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에 기록되었음)
“사랑이 다가오는 순간은 미세한 떨림에서 시작된다. 첫 떨림의 순간이 파장을 일으켜 첫 만남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사랑하니까. 그리고 또 사랑하니까. 영원이 되는 것이다.”
용혜원의 시 ‘사랑하니까’ 중에도 사랑이라는 정의가 나옵니다. 카릴 지브란이 그의 ‘예언자의 뜰’에서 말하듯 ‘영겁을 두고 떨어져 있는 연인들 사이를 맺어주는 영원한 순간이 있나 하면, 그리워하는 생각 다함이 이별이란 망각’이라면 지금의 내 입장은 어떤 것일까. 자문해봅니다.
사랑은 스스로 길을 찾는다 했던가요. “사랑이 나를 끌고 갈 때, 내 침묵에 파문이 일어나고 말에도 결이 생겼습니다. 그 파문이, 그 무늬가, 물결처럼 바람처럼 숨결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스몄으면 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내 몫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독자여, 읽는 내내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읽으시라.”
그동안 실존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한계와 고독을 성찰해온 천양희 시인이 환갑을 맞아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며 시로 쓴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고백한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는가’를 몇 년 전 펴내며 주문한 말입니다.
정녕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의 순수성과 영원성 그리고 운명성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요. 한 편의 영화가 떠오릅니다. 그 제목은 ‘영원한 사랑(Love Eternal)’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한 가극 오페라를 멜로드라마로 각색해 만들어져 1960년대 중국 특히 대만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다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로 오늘날까지 매번 볼 때마다 눈물을 쏟는다”며 자기가 만드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이 영원한 사랑이 주는 영원한 감동의 진수를 되살려 보려는 것뿐 이라고 ‘와호장룡’의 감독 리안이 언젠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영원한 사랑’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보죠.
어느 조그만 마을 부유한 집에 태어난 리디는 영리하고 호기심이 많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남자애들처럼 학교에 갈 수 없다. 남자들만 학교를 갔으니까. 궁리 끝에 남자아이로 변장을 하고 학교에 가겠다고 부모님을 졸라 설득한다. 남자아이들만 있는 기숙학교로 가는 길에 개울가의 석탑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는 링포를 만나 금세 친해진다.
그러면서 리디는 링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둘은 맺어지지 못하고 리디가 다른 사람과 정혼하게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된 링포는 그 소식에 절망해 열병을 앓다 죽는다.
이 비보를 들은 리디는 시집가는 날 링포의 무덤 앞을 지나다가 신부복을 벗어버리고 속에 입고 있던 상복차림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워하며 애절한 사랑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링포의 무덤이 갈라지고 리디가 그 무덤 속으로 뛰어들면서 합장되어 버린다.
이것이 앞에 언급한 김윤희의 감동적인 장편 체험소설 ‘잃어버린 너’라기보다 ‘되찾을 나’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참고사항’으로 아래와 같이 여러 사람이 결혼에 대해 한 말 좀 인용해 보겠습니다.
“My most brilliant achievement was my ability to be able to persuade my wife to marry me.” – Winston Churchill
“If I get married, I want to be very married.” – Audrey Hepburn
“By all means marry; if you get a good wife, you’ll become happy; if you get a bad one, you’ll become a philosopher.” – Socrates
“An archaeologist is the best husband a woman can have. The older she gets, the more interested he is in her.” – Agatha Christie
“Marriage lets you annoy one special person for the rest of your life.” – Unknown
“Marriage is not just spiritual communion, it is also remembering to take out the trash.” – Joyce Brothers
“There is no such cozy combination as man and wife.” – Menander
“Never marry the one you can live with, marry the one you cannot live without.” – Unknown
“Marriage is not about age; it’s about finding the right person.” – Sophia Bush
“True love stands by each other’s side on good days and stands closer on bad days.” – Unknown
“Don’t ever stop dating your wife and don’t ever stop flirting with your husband.” – Unknown
“A perfect marriage is just two imperfect people who refuse to give up on each other.” – Unknown
“May this marriage be full of laughter, our every day in paradise.” – Rumi
“Marriage, ultimately, is the practice of becoming passionate friends.” – Harville Hendrix
“A good marriage is the union of two good forgivers.” – Ruth Bell Graham
“A good marriage is a contest of generosity.” – Diane Sawyer
“A happy marriage is a long conversation which always seems too short.” – Andre Maurois
Then Almitra spoke again and said, And what of Marriage, master:
“You were born together, and together you shall be forevermore.
You shall be together when the white wings of death scatter your days.
Ay, you shall be together even in the silent memory of God.
But let there be spaces in your togetherness,
And let the winds of the heavens dance between you.
Love one another but make not a bond of love:
Let it rather be a moving sea between the shores of your souls.
Fill each other’s cup but drink not from one cup.
Give one another of your bread but eat not from the same loaf.
Sing and dance together and be joyous, but let each one of you be alone,
Even as the strings of a lute are alone though they quiver with the same music.
Give your hearts, but not into each other’s keeping.
For only the hand of Life can contain your hearts.
And stand together, yet not too near together:
For the pillars of the temple stand apart,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 Khalil Gibran
아, 그래서 우리 옛날 선인들이 ‘한 포기 풀잎에서 온 우주를 감지할 수 있다’고 했듯이,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도 그의 ‘천진무구함’에서 이렇게 읊었는가 봅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헤르만 헤세가 그의 작품 ‘데미안’에서 한 말이 떠오릅니다.
그렇습니다. 삶 이상의 모험 없고 모험 중의 모험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주저치 마시고 모험을 감행해보시라고 적극 권면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