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우리 모두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코스미안으로 돌아가리

이태상

 

우리가 자연을 구조(救助) 구제(救濟)하려면 무엇보다 제일 먼저 우리 각자 자기 자신의 집과 가정을 돌보듯 책임감을 갖고 자연을 대하는 것이 최 급선무라며 1992년 출간된 자연과 다른 어머니들: 일상생활에 미치는 여성의 미덕에 대한 감상(感想/鑑賞) Nature and Other Mothers: Reflections on the Feminine in Everyday Life’의 저자로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브렌다 피터슨(Brenda Peterson, 1950 - )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각자 대로 제 영역을 주장한다. 전통 인습적으로 남자들은 숫기 숫냄새를 피워, 노래로 아니면 무기나 힘자랑으로 이건 내 것이다. 손대거나 발 들여놓지 마라. 혼나고 싶지 않거든!’ 텃세를 부린다.

 

그런 반면 여자들은 집을 아름답게 매혹적으로 가꾸고 집 주위 나무들에 색색이 수건이나 리본을 매달아 바람에 나부끼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공간을 소유 점유해왔다. 오늘날에도 각 대륙의 토착민들이 집 가까이 제단(祭壇)을 쌓고 그들을 보호해 줄 신령(神靈)들에게 경배(敬拜)하듯이 말이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우리 지구의 환경보호론자들은 전() 세계 지구촌 전부가 우리 집이란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을 떠날 수도, 벗어날 수도, 그 아무것도 이 집 밖으로 내버릴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우리가 다 함께 여기 이곳에 있기를 (살 줄을) 배워야 (알아야) 한다고.

 

여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보살피듯 세계를 잘 건사하고 남자들이 세상을 주름잡듯 그들의 집안 일에 열심히 열정을 쏟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고 훌륭한 삶을 우리가 살 수 있으랴!”

 

20세기 초엽 영국의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며 역사학자였든 크리스토퍼 헨리 도슨(Christopher Henry Dawson 1889-1970)1929년 그 당시 이미 중증(重症)에 걸린 서구식 기계문명의 병폐(病幣)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미숙(未熟)하고 거칠며 추악(醜惡)한 현대 서구 유럽의 생활 방식에 따른 삶이란 자연환경과의 불충분하거나 잘못되고 거짓된 관계를 드러내는 징후(徵候)로써 긴장(緊張)과 헛된 수고(受苦), 도로(徒勞), 반란(叛亂)과 폭동(暴動), 곧 실패(失敗)와 궁극적 (窮極的인 자멸(自滅)을 초래할 뿐이다.

 

기계적으로 작동 운용되는 서양의 생명 없는 물질, 공업 문명은 작업상 불필요한 인간의 노동을 제거해버리기 위해 노동자 직공을 기계의 한갓 보조도구 보충물로 전락(轉落) 도태(淘汰) 시킨다. 그러나 유구(悠久)한 역사와 전통의 위대한 동양문화에서는 이 문화를 계승(繼承)하고 그 아름다움과 혜택을 계속 창조하고 누리는 일에 모든 사람이 다 동참(同參)케 한다.

 

이것은 밭 갈고 씨 뿌리고 추수하는 일에서와같이 가장 자연스럽고 전적으로 본능적인 인간의 역할이고 행위 일뿐더러 이슬람교의 서기가 그의 온 심혼을 다 쏟은 서예 능서(能書)나 동양사회의 정교절미(精巧絶美)한 예의범절(禮儀凡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사회 전체의 복리(福利)와 이익(利益)을 추구(追求) 지향(志向)하는 공동사회(共同社會)의 대동단결(大同團結)이다.”

 

어째서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증권 중개인은 기원전 10세기경의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 (Homeros/Homer)의 작품 일리아드(The Iliad)나 오디세이(The Oddyssey)에 나오는 용사(勇士) 또는 고대 이집트의 사제(司祭)만큼 아름답지 못할까?

 

그 이유는 그가 삶으로부터 분리(分離)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수(必須) 필연적(必然的)이 못되고 우연(偶然) 우발적(偶發的), 거의 기생적(寄生的) 존재인 까닭이리라. 어떤 한 문화가 그 존재의 참된 필요성과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때 그 문화의 모든 분야와 그 분담(分擔) 수행(遂行)이 아름다워지리라.

 

멕시코의 외교관으로 작가 평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카를로스 후엔테스(Carlos Fuentes 1928-2012)의 말대로 고립된 민족과 문화는 멸()하나 다른 사람, 다른 문화와 믿음,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릴 때 우리는 태어나고 다시 태어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 자신에게서도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 Cultures only flourish in contact with others; they perish in isolation; cultures that live in isolation perish and it is only cultures that communicate and give things to one another that thrive, that live. If we do not recognize our humanity in others, we shall not recognize it in ourselves.”

 

근시안적(近視眼的)이고 소아병적(小兒病的)인 서양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利己主義)는 인류사회는 물론 온 지구 생태계(生態系)를 파괴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 두말할 나위 없다면 동양의 물아일체(物我一體)와 피아일체(彼我一體) 곧 우리 단학(丹學)인간은 소천지(小天地)이며 천지는 대인(一身小天地 天地大人)’이라는 천인합일론적(天人合一論的) 세계관 아니 우주관으로 우리 모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코스미안으로 돌아가 자구(自救)할 수밖에 없으리라.

 

세상에 부자연스럽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이란 없다. 무엇이 자연적이냐 하는 우리 지식에 아주 큰 결함이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이 무지의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There are no unnatural or supernatural phenomenon, only very large gaps in our knowledge of what is naturalwe should strive to fill those gaps of ignorance.”

 

이것은 아폴로 제14호 우주비행사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식과 인간정신(人間精神) 및 인간혼(人間魂)을 더욱 개발하여 우리 지구와 인류의 건강과 복리를 증진시킨다는 취지와 목적을 갖고 197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북쪽 페타루마 시()(Petaluma City) 근교(近郊)예지적(叡智的) 심령(心靈paranormal)과학연구소(the Institute of Noetic Sciences(IONS)’를 창설한 에드가 미쳴(Edgar Mitchell(1930-2016)의 말이다.

 

미쳴 박사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주론이나 종교에 의거한 과학이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해주는 이야기는 불충분하고 결함이 있을법하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우주에 그 어떤 분리되고 독립적이며 분별 있는 존재가 있다는 뉴톤의 생각이 전적으로 정확하지 않음을 나는 인지(認知)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가란 새로운 스토리다. I realized that the story of ourselves as told by scienceour cosmology, our religionwas incomplete and likely flawed. I recognized that the Newtonian idea of separate, independent, discrete things in the universe wasn’t a fully accurate description. What was needed was a new story of who we are and what we are capable of becoming.”

- Dr. Edgar Mitchell(1930-2016)


이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주장한다. ‘우리는 탐험가들이다. (We are explorers.)’ 우리가 새로 개척해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절박하고 절실한 미지(未知)의 영역(領域), 우리의 새 변경(邊境)은 인간의 의식세계(意識世界)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인류를 위한 하나의 ‘새 이야기,’ 새로운 창세기를 쓰는 것이다. 과학과 인간의 영성(靈性)을 통합(統合)하여 통일체(統一體)로서의 우리의 온전(穩全)함을 얻고 끊겨가는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지구 간의 필수(必須) 필연적(必然的)인 연관성(聯關性),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 각자 내적(內的) 자아(自我) 곧 자신의 심혼(心魂)과의 관계를 맺는, 아니 그 탯(胎)줄을 잇는 일이리라. 20세기말 인류의 지성(知性)과 양식(良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전(前) 체코 연방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 1936-2011)도 예언하듯 경고했다. “인간의식의 전(全) 세계적 회전(悔悛/回傳)에 따른 혁명적 (革命的) 혁신(革新)이 있기 전에는 인간으로서의 우리 존재 영역(領域/靈域)에서 개선(改善)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리라.

 

(Without a global revolution in the sphere of human consciousness, nothing will change for the better in the sphere of our being as humans, and the catastrophe toward which this world is headed be it ecological, social, demographic or a general breakdown of civilization will be unavoidable. If we are no longer threatened by world war or by the danger that the absurd mountains of accumulated nuclear weapons might blow up the world, this does not mean that we have definitely won. We are still incapable of understanding that the only genuine backbone of all our actions, if they are to be moral, is responsibility.)”

Václav Havel

 

알베르트 아안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도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진지하게 과학적인 탐구(探究)를 하는 사람이라면 우주법칙을 통해 어떤 하나의 신적(神的) ()이 명백히 나타난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Every one who is seriously involved in the pursuit of science becomes convinced that a spirit is manifest in the laws of the Universe-a spirit vastly superior to that of man, and one in the face of which we with our modest powers must feel humble.”

Albert Einstein

 

그가 말하는 우주법칙(宇宙法則)’이란 우리 동양의 ()’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정신적으로 영적(靈的)인 저능(低能) 지진아(遲進兒)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서양 사람들이 서력 기원후 2천 년이 지나서야 아주 뒤늦게나마 철이 눈곱만큼 들려고 하는 것 같다.

 

진리(眞理)를 탐구한다고 하나의 통일된, 아니 모든 것을 내포(內包), 아니 그보다도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맺고 있는 도() 닦는 학문(學問)을 종교다 철학이다 윤리다 예술이다 또는 수학이다 물리학이다 화학이다 생물학이다 천문학이다 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심리 공학 등등 수십, 수백 가지 파편(破片)으로 산산(散散)조각으로 분산(分散), 마치 불꽃놀이하듯 잿더미로 다 만들어 놓고서야.

 

자연을 정복(征服)하고 길들인다고 제 무덤 제가 파듯, 정신없이 자연의 질서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더럽히면서 아름다운 우리 지구촌 강산(江山)과 바다를 쑥대밭 시궁창 쓰레기더미로 다 만들어 놓고서야.

 

인간을 연구하고 조사한다고 영()과 육(), ()과 신(), 분리(分離)시켜 놓고, 멀쩡하게 산 사람을 시체(屍體) 해부(解剖)하듯 댕강댕강 팔다리 다 잘라내고 오장육부(五臟六腑) 다 뽑아내서 원숭이 내장하고 바꿈질까지 해가며 산 사람을 산 송장 아니 기계 로봇으로 거의 다 만들어 놓고서야 말이어라.

 

이것이 다 우리 동양에 뿌리를 둔 백두산 천지에서 흐르는 샘물 같은 진리 물아일체(物我一體)’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코스미안의 길 ()’로부터 멀리 이탈(離脫)해 온 탓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1230ts@gmail.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1.14 02:04 수정 2020.11.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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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