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치자꽃 한 묶음

문경구

 

어린 시절에 들었던 온갖 소리들이 나와 함께 늙어온 것 같다. 국민학교 앞에서 산 병아리가 자신의 빛깔다운 소리로 삐약삐약 몇 번씩 울어 대더니 제법 중닭이 되어가면서 변성기 소리를 내었을 때 나는 세상의 소리 모두를 기억해내는 민감한 소리꾼이라는 기억이었다. 그 소리는 지금도 유명한 멕시칸 치킨집 그릴 위에 훌러덩 벗고 누워 뜨거운 정열을 과시하는 닭만 보아도 어린 시절 들었던 그때의 소리를 기억한다. 잘 들리지 않는 귀로 악보를 써 내려가던 베토벤을 만나 쌓아 두었던 세상 소리를 듣는 느낌이 바로 이 소리일 것 같다.

 

물이 끓어 넘치면서 난로 위에서 떨어져 굴러가는 주전자 뚜껑 소리조차 악보에 담아 두었다는 베르디와 베토벤의 민감한 소리도 빙의 된 귀로 지금 다시 듣는다. 계절이 오는 소리에도 민감하던 그 소년이 지금은 귀뚜라미의 더듬이가 되어 소리를 짚어가니 굳이 찾아 나서지 않아도 옛 소리는 다가와 나를 놀라게 한다.

 

옛날 기억은 감쪽같이 어제 일처럼 찾아와 내 삶의 존재를 확인해 보고 떠나는데 잠시 전이라고 해야 그저 들었던 수저 내려놓고 물 한 모금 마신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기억을 못하게 된다면 어처구니없는 하늘만을 원망하게 된다. 금방 수저를 손에서 내려놓고 끼니를 먹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면 맨정신이라 할 수 없다. 정신을 어디엔가 흘리고 사는 셈이다. 떨어져 나간 만큼 비어 있으니 의학적으로 뇌 위축성 병변이라는 치매를 앓는 정신질환이라고 한다.

 

치매라는 얼굴로 식탁에 마주 앉는 순간 이미 적군에게 점령당한 불안하고 공포스런 도시로 변해가고 날이 밝아도 세상 불빛은 단 한 가닥도 창가로 찾아들지 않는 암흑의 세상 속에 그대로 멈춰져 있게 된다. 식탁을 차려 준 상대에게 언제 먹었냐고 다시 차려 달라는 소리에 상대도 얼마나 놀라게 되는 것일까.

 

모두가 캄캄한 세상이다. 꽁꽁 얼어붙은 죽음의 구소련 땅에도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자유가 찾아왔고 아무리 시리고 아팠던 세상 속에서도 떠났던 봄은 다시 찾아오게끔 되어있다는 인생의 답을 깨고 한번 찾아온 치매의 존재는 영원히 떠나지를 않는다. 어제라는 기억이 모두가 비워져 버렸으니 평생을 함께 일어나 맞는 상대에게 누구시냐고 묻는다면 그런 용서 못 할 배신의 아침이 또 어디 있을까.

 

그 배우자는 무너져 버리는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또 어떻게 버티며 살까. 치매를 앓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렇다고 기억을 무너뜨리려 찾아오는 치매를 맥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미리 반듯하게 정리된 기억으로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전능하신 분만이 꽉 쥐고 있는 비밀의 열쇠를 무슨 수로 받아낼 수 있을까 말이다.

 

평생 지킨 자존심이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추한 모습만으로 살다가 어디를 나선들 제대로 찾아나 갈 수 있을까. 그런 나의 몸뚱이를 다음 세상은 어디서 받아줄까. 다음 세상을 위해 아무런 준비도 해 놓지 못했으니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묶인 두 발로 중천을 떠돌아 다닐 것 같은 내 몸을 생각하면 이미 지옥에 찾아와 있다.

 

지금까지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벌써 혼비백산이 된다. 살면서 기억에 손잡이를 만들어 내 몸에 걸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토록 곱디고왔던 여인이 이름표를 목에 걸고 살아야 한다면 혀 깨물고 죽는 게 훨씬 낫다는 소리도 참 끔찍스럽다. 동네에서 신사임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여인에게 운명은 참으로 가혹하게 이끌어간다. 의식이 없게 되면 절대로 호흡기를 입에 대지 말라고 자식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그 여인의 말은 더욱 잔인하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토록 소중했던 자식의 두 번째 탯줄마저 냉정하게 끊어 버려야만 하는 걸까. 젊은 날 이루지 못한 꿈조차도 예술이었던 그녀다운 자존감의 가치는 아랑곳없이 한 인간이라는 작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을 때는 치매에게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 낼 수가 없다. 그녀에게 다가올 더 참혹한 운명을 피하게 해주기 위해서 자신을 잊게 하려는 것일까.

 

치매를 모르시다 떠나가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닦아놓으신 그 길을 나도 따르고 싶다. 길을 지나다 창이 유난히 넓은 집안으로 보인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들이 반짝반짝 빛나던 기억들처럼 그렇게 투명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간청하고 싶다. 창 넓은 그 집을 둘러싸고 때맞추어 피워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얗고 분홍빛의 꽃들은 아무도 관심 두는 사람 없는 세상 속에서도 치매를 모르고 피고 진다.

 

그때도 현실이었고, 지금도 현실이라는 약속으로 사는데 그 모두를 기억 저쪽으로 보내고 치매 하나로 방황을 해야 한다는 사람만이 슬픈 일이다. 내게 치매가 올 즈음을 알 수 있다면 미리 단도리라도 해놓아야 하겠다. 숨이 멎기 전 내 몸에 모든 장기를 추려내어 쓸만한 것들을 꼭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기증하고 나는 홀가분한 영혼만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고 싶다.

 

곧 다가올 감당 못 할 불행을 느낄 수 없게 미리 타인의 얼굴로 바꾸어 놓는 방법도 이유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어린 시절 이름만 대도 반짝대는 눈으로 모두를 기억해내면서 어떻게 잠시 전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름답던 젊음의 기억들을 간직하면서도 모르는 척 추한 얼굴로 인생을 접으려 하는 걸까. 곧 발등에 떨어질 감당치 못할 커다란 불운을 가져다줄 대상을 알아볼 수 없게 치매가 먼저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치매를 너무 홀대할 게 아님이 틀림이 없다. 먹을 것을 놓고도 치매 하나 나 하나, 치매 둘 나 둘 서로 정겹게 나누어 먹으면서 친구로 만들어야겠다. 커피 향이 번지는 카페에도 데려가 함께 앉아서 매일 이야기꽃을 피워야겠다. 커피집 창가에 수북하게 담겨진 마른 치자꽃 한 묶음 속에 치매꽃도 숨어서 세상 소리를 듣게 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치매를 다독여가며 살다가 토씨 하나 빈틈없는 깔끔한 나의 기억들만을 손에 꼬옥 쥐고 떠나가고 싶다. 신조차도 깜빡하고 생각하지 못했을 나의 모습인 거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1.16 01:35 수정 2020.11.16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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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