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구 칼럼] 그 눈 속에 컵라면이

문경구

 



여행이란 가슴 떨릴 때마다 출발해야지 다리 떨릴 때는 이미 늦었다는 명언 하나로 평생을 여행으로 살아온 지인들이 이제는 그들의 여행 종착지에 도달했는가 보다. 쇠잔해진 모습으로 젊은 날 둘러보았던 추억으로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들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그들의 젊은 날도 찾아낼 수 있다. 찬란했던 동서양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때의 아쉬움이 애석함으로 깊어진다. 내가 선뜻 내 인생의 가장 잊지 못할 여행이 있다면 나는 지인들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역사가 있는 유럽여행이 아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소박하게 떠났던 무전여행은 내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여행이었다. 내가 최초로 시작한 무전여행은 등 뒤에 책가방을 메고 뛸 때마다 가방 속 책들이 들썩대던 국민학교때 혼자 한 무전여행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내가 서 있던 뒤로 스쳐 간 더없이 초라하던 풍경들을 기억하며 피익 하고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다. 서울 한복판 거리에 물건을 싣고 가는 마차와 소구루마가 즐비하게 다니던 때였다. 경사진 무악재 고개를 넘어 가는데 힘든 소구루마를 뒤에서 밀어주고 잽싸게 구루마에 올라타 고개를 내려가는 재미가 제일 기분이 좋았던 세상이었다.

 

그때는 시계를 수리하는 시계방 간판 상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병원시계' '리발소'라고 쓴 상점을 흔하게 보던 풍경이었다. 서울 변두리 문화촌보다 더 시골스런 청량리 밖 중랑교 종점까지 오가는 버스를 내가 사는 서대문에서 올라타고 종점까지 다녀오는 여행이었다. 2원 하던 버스요금과 고구마 달팽이 과자 몇 개 쥐고 처음 혼자서 여행할 때 벌렁대던 가슴을 오십 년을 훌쩍 넘기고도 그 벌렁증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한순간 버스와 나란히 가는 전차가 사라졌다 가는 다시 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흥분을 느끼곤 했다. 버스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들이 내 뒤로 사라지는 게 신기했다. 서대문 동양극장에 그려진 흑백영화 '오발탄'의 영화 간판이 신기했고 부자들만 다닌다는 화신백화점도 슬쩍 보고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수표교 돌다리도 지나고, 대통령이 사시는 곳을 경무대라고 부르던 어른들의 익숙한 말씀도 기억나고 중앙청도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중랑천 다리를 건너가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여행이었다. 논과 밭이 정겹게 보이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새파란 들판이 눈에 아른거리겠는가. 추억을 잊지 못하는 이유이다.

 

좁혀져 있던 가슴이 넓어지면서 그 속을 차지하는 시원한 시골 바람을 평생 잊지 못하며 사는 까닭이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내 삶의 시련을 몰고 온 바람이었고 그 바람 속에는 오늘 이렇게 회상할 수 있는 감사의 바람도 있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시작한 무전여행이 눈을 감고도 갈 수 있을 만큼 반복하면서 나의 몸과 영혼에 걸쳐진 여행의 옷으로 그 어느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바람을 찾아 운명처럼 익숙하게 커갔다. 숱한 세월을 떠나보낸 뒤 성인이 되어서도 마음이 닿는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그때 나의 바람 속 발길에서 배웠다.

 

미국 오십여 개 주중 반쯤은 그렇게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여행을 다녔다. 사람이 분비는 주말, 공휴일이나 여행철이나 이름난 장소는 절대적으로 피하고 사람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나는 떠난다. 늘 내가 가는 한가한 길 반대쪽으로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줄 지어진 차량 행렬들이 피곤해 보이곤 했다.

 

어떤 한 지역에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목적지에 나침판을 잡고 떠나면 호젓한 알짜 여행은 보증할 수 있다. 가면서 중간에 내려서 둘러보는 작은 도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시내라고 해야 시작과 끝이 보이는 길 속에 모든것이 다 있다.

 

은행이라고 간판을 걸은 가정집이 있고, 또 다른 작은집은 시장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주유소에는 장난감 같은 기름펌프기 한대가 지루함을 못 이겨 턱을 괴고 손님을 기다리는 작은 시골 속 풍경이다.

 

내가 간직하며 살았던 초라한 마음속 흑백사진 한 장이 두고두고 여행의 기억들로 나는 더 풍요로움을 즐긴다. 허름한 햄버거 가게에서 먹는 꿀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배가 빵빵하면서도 더 먹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소박한 미국 여행들을 모두 마치려면 몇 세기는 흘러야 할 거다. 미세한 먼지만 한 인생의 여행 기억을 이렇게 웅장한 나라에서 하늘 높이 날린다. 여행의 목적지를 거대하게 잡지 않고 떠나는 나에게는 차라리 잘된 여행 철학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모두 잊지 못할 여행지이다.

 

여행이란 언제라도 갈 때, 바로 그때 여행을 하는 거라고 편하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는 내가 원하는 여행의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화려하고 왁자지껄한 여행 이야기를 듣자면 나는 여행 속 이방인이 된다. 어디서부터 떠나 어디로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의 여행을 이해하기가 벅차다.

 

여행사 버스가 데려다 쏟아 놓은 곳에서 돌아본 스페인, 포르투칼, 마드리드 같은 한 장소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버스로 돌아와 다음 장소로 출발하는 패키지여행에서부터 스위스 몽블랑이며 융프라우, 산 이름 자체가 웅장함을 이야기할 때는 말하는 사람조차도 멋지게 들린다. 눈 덮인 정상을 열차로 올라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경 이야기가 얼마나 벅찼으면 바로 그때 그 대목에서 한숨을 내쉬는 바람에 그다음 이야기를 잊어버린 듯, 쏙 빠지고 갑자기 그 정상 눈 속에서 먹었던 칠천 원짜리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에 환호를 쳤을까.

 

흰 눈 속에서 먹었던 컵라면 이야기를 풍경보다 더 재미있게 했다. 컵라면 하나 값이 미국돈 7불이라면 믿겠냐고 한다. 그 돈을 주고 제대로 된 라면도 아닌 컵라면을 먹었다는 기가 막힌 웃음소리가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여행의 추억이다. 컵라면값의 위상은 그 높은 몽블랑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들은 숨겨진 컵라면 속에서 진정한 여행의 비밀을 찾은 거다.

 

눈 속에서 먹은 그 맛이 가히 환상적이라고 한다면 그런 특이한 여행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야말로 평생 나눌 수 있는 여행 이야기 속에서 여행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웅장한 알프스의 장관들도 그 순간만은 컵라면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흔한 컵라면도 어디서 운명을 함께했는가에 사람들 가슴속 전설이 되기도 한다.

 

내가 사는 미국은 문밖만 나서면 언제든지 전설의 여행지다. 그래서 홀로 떠나는 여행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그 시절 나와 지금의 나, 둘이 하는 여행이다. 어제 떠났던 여행도 내일 떠날 발걸음도 삶을 모두 마치고 다시 떠나야 하는 무전여행 속에 있다.

 

나를 늘 따라다니는 나의 그림자와 함께 운명처럼 걸어온 만큼 또 가야 한다. 그 길은 그 사람들에게 등장했던 컵라면의 맛처럼 함께 가는 거다

 

   

[문경구]

미주한인크리스찬문학협회공모 수필당선

문경구 kimurgin@hotmail.com

 

전명희 기자 

 

 

정명 기자
작성 2020.11.23 10:40 수정 2020.11.2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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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