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휘 기자 칼럼] 농교육을 생각하고 말하다

(11) 농정체성이란 무엇인가

김건휘 기자

 



누구나 한 번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정체성이 형성된다. 정체성은 자아개념의 핵심으로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인지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자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농인 학생들의 경우는 어떨까? 이번 시간에서는 글리크먼의 이론을 바탕으로 농정체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글리크먼의 이론을 통해 살펴본 농정체성

1993년에 발표된 글리크먼의 논문 농정체성 발달: 이론적 모델 구축과 검증

(Deaf identity development: construction and validation of a theoretical model)은 이후 농정체성 발달 이론의 척도처럼 많은 학자들에게 인용되어 왔다. 글리크먼은 농정체성의 발달 단계를 4단계로 보았으며 각각의 단계에서 농인이 겪는 현상들을 소개하고 이중문화 단계를 최종적인 발달 단계로 평가하였다. 이 이론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연구물들을 통해 다양하게 인용되었으며 농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림 1. 글리크먼의 이론>

          

이러한 글리크먼의 이론은 결정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글리크먼이 제시한 단계들은 상황, 태도,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단계 자체에 정체성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예를 들어 글리크먼이 이중문화에 대해 농인으로서 자기 인식과 자부심을 가진 동시에 청인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태라고 설명한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정체성이란 이름을 붙이면 혼란이 생긴다. 정체성 발달의 최종 단계가 농인과 청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몰입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다. 몰입은 청능주의(오디즘)와 구화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피해 의식을 가지고 청인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이 점에서 몰입은 정체성이 아니라 이중문화 환경에 반응하는 태도를 설명하는 용어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청인과 농인은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다.

농인과 청인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청인과 농인을 통합한다는 의미의 이중문화에 정체성이란 용어를 붙이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이중문화는 농인이 살아가야 하는 환경일 뿐이며, 그 환경에 대한 태도와 그 환경 속에서 농인이 가지게 되는 정체성은 별개의 것이다. 농인의 정체성은 장애 인식과 수용이 아니라 문화 인식과 수용으로 형성된다.

 

한편 글리크먼 이론은 소수자의 주류 사회 통합을 기본 가치와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 사회 통합 이라는 개념이 장애 영역에서는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명제인 반면 문화 영역에서는 그리 간단하게 환영받을 수 있는 명제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중문화라는 환경이 정체성이라는 이름을 입고 농정체성 발달의 최종 단계이자 모범인 것처럼 왜곡되면서, 농인 개개인이 실제 삶에서 드러내는 정체성과 자부심, 그리고 정당한 저항과 문제 제기를 억압에 대한 반발심이 가져온 부작용이나 위험한 우월주의로 치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문화 환경에 적응하여 자아실현을 해 나가는 것과 이중문화 환경에서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지켜 나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디아스포라의 대표적 집단인 유대인들, 예컨대 미국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미국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 자신을 이루는 핵심은 유대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에 둔다. 이들은 몰입 정체성이라 불릴 만한 내적 태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미국 문화와 유태 문화의 이중문화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조절하며 살아간다.

결국 몰입 정체성의 범주로 평가됐던 특징들은 오히려 건강하고 강인한 자아상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요소들이야말로 상호 존중의 시공간을 구축하고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렇게 자신으로존재하게 하는 무형의 거점에 뿌리내린 이들이 이중문화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환경이 되는 상황과 사건이 다양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단계와 발달의 기조를 가진 글리크먼의 이론처럼 인간의 정체성과 태도가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면서 출발점과 도착점을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글리크먼의 이론을 바탕으로 농정체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정립된 정체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직 농인 학생들의 경우 정체성의 형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농교육 교사는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농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형성해 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청인들의 농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김건휘 기자 loveseoulmirae0921@naver.com


편집부 기자
작성 2020.11.24 09:36 수정 2020.11.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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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