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야

여계봉 선임기자


최근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스님 한 분이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의 장본인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불똥이 불교계 전체로 튀어 작금의 상황이 이판사판(理判事判)에 이르렀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판사판은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합쳐서 만들어진 불교 용어다.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지향했다. 고려의 숭불정책으로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한 불교의 폐해가 정치·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의 지배세력이 불교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탄압했어야 했다. 한편으로는 신흥 유학자 세력이 조선의 건국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불교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하루아침에 타도 대상이 되어 사찰의 땅과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었다.

 

길상사. ‘본래 내 것이 없으므로 베푼 것도 없다’고 하신 법정스님이 계셨던 곳


그래서 승려들 한 무리는 산으로 들어갔다. 속세를 피해 은둔하면서 참선과 독경으로 불법을 이으려고 했다. 이들이 이른바 이판승(理判僧)이다. 그에 반해 다른 한쪽은 그냥 남았다.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기름이나 종이, 신발을 만드는 잡역(雜役)에 종사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사찰을 지켜냈다. 이들이 사판승(事判僧)이다. 그러니까 불법을 계승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하는 승려 이판승과 살림을 맡아보는 승려 사판승으로 양분된 것이다. 결국 지금의 현대 불교가 융성한 것도 조선시대 이 두 부류의 승려들이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판사판의 진정한 뜻이다. 이판을 하든지 사판을 하든지 결국은 수행의 길은 하나라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 불교가 이만큼이나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두 개의 논리 이판사판이다. 그런데도 이 이판사판이란 용어가 막 나가는 표현으로 잘못 쓰이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판사판의 뜻이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된 데에는 시대적 상황이 크게 작용하였다. 불교에 적대적인 조선의 시대적 상황에서 승려는 최하층의 신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당시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스님이 되는 것은 하류 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을 뜻하므로 이판사판에는 될 대로 되라또는 끝장이라는 의미가 담기게 된 것이다.

 

북한산 원효암. 절집이 마치 여염집을 닮아 꾸밈과 치레가 없다.

평생을 무소유의 정신으로 청빈한 삶을 실천하고 수행에 정진했던 선지식들이 그리운 까닭은 우리 주위에 그만큼 존경받는 수행자들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을 산길을 홀로 걸어보라. 낙엽을 떨구고 있는 나무들은 마치 길 떠나는 수행자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욕심의 나뭇잎들을 달고 살았던가. 어느 자리에 있건 수행자는 삼독(三毒)의 하나인 탐()을 멀리 하고, 항상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으로 정진해야 중생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이판사판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기자의 작은 소망이기도 하다.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20.11.24 12:12 수정 2020.11.2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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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