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는 51년간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수많은 콩트를 썼다.
발자크의 대표작으로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사를 묘사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관련한 소설 작품 들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총서인 '인간희극'이 있다. 인간희극은 프랑스 전국을 배경으로 약 2천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발자크는 '유년기, 사춘기, 노년기, 정치, 사법, 전쟁, 여성 어느 한 상황도 누락하지 않고' 귀족, 벼락출세가, 자본가, 소매상, 장인, 기술자, 범죄자, 화류계에 걸쳐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그렸다. 발자크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를 통해 "인간 마음의 모든 가닥과 사회의 모든 요인을 검토했다."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작중 인물들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연관되어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는데, 각 소설이 한 시대를 나타낼 하나의 완전한 역사라는 평을 받는다.
샤베르 대령'(Le Colonel Chabert)은 발자크의 '인간희극' 가운데 하나인 1832년의 소설이다.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하는 ‘페로 백작부인’, 그녀의 계획을 알아채고 삶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 사회적 매장을 택하는 ‘샤베르 대령’의 이야기다.
법률사무소에 끔찍한 몰골을 한 캐릭코트 차림의 사내가 방문한다. 그는 자신을 ‘샤베르 대령’이라고 소개한다. 샤베르 대령은 이미 전장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인물이다. 법률 대리인 데르빌은 이 사내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기고 그의 신분을 증명해 줄 유일한 증인 페로 백작부인을 만나 보기로 한다.
샤베르 대령은 매춘부 로즈와 결혼을 하고 나폴레옹 군대의 명예로운 기병대 장교가 된다. 아일라우 전쟁에서 크게 부상을 입은 샤베르는 사망자로 처리가 되었지만 죽지 않았고 현지 농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되찾는다.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안고 파리로 돌아와 보니 아내 로즈는 페로 백작과 재혼을 하여 아이 둘 엄마의 백작부인이 되었고 샤베르의 모든 재산은 정리가 된 상태여서 남아 있는 그의 몫은 별로 없다. 그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재산, 지위, 부인을 되찾으려고 노력을 한다. 로즈는 자신의 지위와 돈과 남편을 잃을까 두려워 샤베르의 존재를 부인한다.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샤베르는 재판을 하는 대신 합의를 하려고 하는데 합의 단계에서도 로즈가 감언이설로 샤베르를 속인다. 그는 부인을 경멸하며 자신의 몫을 포기하고 양로원으로 들어간다.
이 작품은 생환한 인물이 다시 어떻게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지 보여 주는데. 출간 이후 ‘샤베르 신드롬’(그가 죽은 줄 알았을 땐 눈물을 흘리다가 막상 살아 돌아오면 반기지 않는 심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반향이 컸던 작품으로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 돌아왔음에도 그에 대한 미안함은커녕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하나도 내주지 않으려는 로즈를 통해 인간이 자신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잔혹 스러운 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물질과 지위 앞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물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 초반기에 나오는 샤베르 백작이 데르빌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나폴레옹의 군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 샤베르 대령의 명에는 물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물질과 돈과 현재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는 부인의 비양심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작품 속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 어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출세를 위해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고 타인을 딛고 일어서지는 않았는지, 사랑은 온데간데없고 물질을 보고 상대를 택하지는 않았는지, 입신양명과 물질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리하여 나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불행은 상관없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스스로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변 동료들에게, 친구들에게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인지 물어보라. 그러면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라고 현재의 세상과 인간에게 발자크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결국 인간성이 상실된 삶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며 비양심의 인간들이 가득한 이기적인 세상을 비판하고 양심과 인간성을 회복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민병식]
인향문단 수석 작가
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문학산책 공모전 시 부문 최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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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詩한 남자 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2020 코스미안상 우수상
전명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