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대 칼럼] 누비처네 사기등잔

문용대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목성균의 수필 전집 누비처네는 오래된 책이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누비처네라는 제목이 생소하다.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누비처네라는 한 편의 글을 책 제목으로 정한 것이다. 누빈 포대기, 즉 두 겹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줄줄이 바느질을 한 조그마한 이불 포대기를 말한다. 이 책은 수필 쓰는 많은 이들로부터 교과서처럼 여겨지고 있다.


책 속에 돼지 불알이라는 제목의 글도 있다. 그런 글을 쓸 생각을 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제목부터 입에 올리기에 쑥스럽고 남사스럽기까지 하다. 목차를 보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 책 중간에 있는 글을 먼저 읽어 보았다. 입덧하는 새댁 며느리가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시어른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잔치를 벌일 요량으로 구해 온 소중한 귀물(貴物 )돼지 불알을 훔쳐 야반에 뒷집 새댁을 불러 몰래 구워 먹어버린 사건(?)이다.


몸체의 뽀얀 살결과 동그스름한 크기가 아직 발육이 덜 된 누이의 유방 같은데, 등잔 꼭지는 여러 자식이 빨아 댄 노모(老母)의 젖꼭지같이 새까맣다. 그 못생긴 언밸런스를 우리는 당연히 고마워해야 한다.”


누비처네의 백 한편 수필 중 여섯 번째 글 사기 등잔에 나오는 대목이다. 하얀 사기(砂器)로 된 등잔을 어쩌면 이렇게 누이의 유방에 비유하며 절묘하게 표현을 했을까? 목 수필가는 나와 열두 살 차 띠동갑인 셈이다. 50~60년대 글이 많아 내게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겪지 않은 전깃불이 들어오기 전 이야기다. 내 또래는 등잔불을 떠 올리게 된다. 목성균이 쓴 사기 등잔을 읽으니 어릴 적 생각이 밀려온다.


등잔이란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는 사기 부분을 말하지만 등잔대 전체를 말하기도 한다. 우리 집 등잔대는 대대로 물려받아서였는지 때와 석유가 찌들어 색이 거무스름하다. 바닥 닿는 판은 좀 넓은 편이다. 거기에 4~50센티미터쯤 길이의 나무를 세우고 그 위 받침대에는 사기로 된 등잔을 올린다. 등잔 밑에는 제비 표 성냥 통이 늘 놓여 있고 쓰고 난 성냥개비가 모인다.

 

사기 등잔 뚜껑 안쪽 구멍에 창호지를 말아 심지를 끼워 넣은 뒤 사기로 된 등잔 속에 석유를 붓고 심지에 불을 붙인다. 심지가 너무 꽉 끼이면 기름을 못 빨아올리고, 너무 가늘면 심지가 사기 등잔 속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에 적당히 굵어야 한다. 너무 길게 올라온 심지에 불을 붙였다가는 콧구멍이 새까맣게 그을리게 된다.

 

등잔 꼭지 끝 불을 붙여 검어진 불똥은 성냥개비나 바늘로 자주 털어 줘야 불빛이 맑고 밝다. 심지를 몇 번이고 쑤셔 올리다 보면 짧아져 석유를 못 빨아올려 갈아야 한다. 갈고 나면 불이 한결 밝아진다. 어쩌다가 머리가 등잔불에 너무 가까이 갔다가 눈썹과 앞머리를 태우고 창피해서 밖을 못 나간 적이 여러 번이었다. 무엇보다 불붙은 등잔을 넘어뜨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바닥에 석유가 엎질러지는 것은 둘째치고 바닥에 불이 붙어 초가를 모두 태우기도 한다.


등잔불을 떠 올리니 호롱불 생각도 난다. 웬만히 부는 바람에도 유리 커버가 있어 등잔불 같이 쉽게 꺼지지 않아 좋다. 처마 밑에 호롱불을 매달면 마루나 마당 전체를 밝히는데 그만한 게 없다. 등잔이건 호롱이건 밑에서 위를 쳐다보게 돼 있으니 아래쪽이 어두운 것이 흠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했다.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을 오히려 잘 모를 때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내가 중학생쯤일 때 우리 집에는 소수레(달구지)가 있었다. 지게에 물건을 저 나르지만 멀리 가기는 어렵다. 시골에 짐차가 있을 리 만무하고 읍내나 도시로 물건을 옮기기에 이만한 게 없다. 아버지께서 저녁 어둑어둑할 때까지 안 오시면 호롱에 기름을 채워 들고 마중 가는 것은 늘 내 차지였다. 멀리 가지 않고도 아버지를 만날 때가 있지만, 때로는 읍내 삼 십리 길을 다 가서야 만나기도 한다.

 

어두운 굽이 길을 몇 번이고 돌 때마다 만날 것 같던 아버지를 못 만나면 힘이 빠지고 다리가 아프지만 그건 둘째고 무서워서 걸음이 더 빨라진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만나면 눈물이 확 쏟아지기도 한다. 오래도 아니고 아침에 헤어진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몹시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처럼 기쁜 것이다.
  

이 같은 등잔불이나 호롱불 이야기가 한 세기를 지낸 일도 아니고 내가 어릴 때 겪은 일들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문용대]

월간 한국수필로 수필가 등단

한국수필, 문학광장, 한국예인문학, 문학의봄, 문인협회 회원

매일종교신문, 코스미안뉴스 오피니언 필진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주간종교신문사, S&T중공업, 전문건설업체 근무

현재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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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희 기자


전명희 기자
작성 2020.12.01 10:00 수정 2020.12.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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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