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을 잘한다는 게 무슨 뜻이고, 세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당신의 삶에 어떤 보탬이 되었는가? What does it mean to do this work well, and what does it add to the world? What has it added to your life?)”
이 같은 한 기자의 질문에 저명한 평론가요 수필가 에세이스트로 정평(定評)이 있는 영국 작가 제임스 우드(James Wood, 1965 - )는 대답한다.
“(주의 깊게 관찰해) 알아차린다는 건 구출(救出)하고 구제(救濟)하며 삶을 삶에서 구원(救援)하는 거다. To notice is to rescue, to redeem; to save life from itself.)”
이 말은 모름지기 ‘글’이란 ‘그리움’의 준말이란 뜻이리라. 2015년 가을에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무지코 칸타타’에 실린 ‘소설가 이응준 선생님께 드리는 Open Letter’를 아래와 같이 옮겨 보리라.
안녕하십니까.
2015년 6월 26일 자 중앙일보 신준봉 기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 이 선생님께 깊은 경의를 표해 마지않습니다.
특히 “나는 죽는 날, 오늘 이 일을 안 한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결행하고 아프기로 결정했다. 그뿐이다.” 이 말씀을 제 묘비명으로 인용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코스미안 (무지코)’의 지상일지(地上日誌)로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남은 인생, 문단의 공적인 자리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서 지낼 것이다. 문인(文人)들이 모인 곳은 가지 않을 생각이다. 작품을 발표하고 책 출간을 하겠지만, 오로지 아웃 사이더 작가로 묵묵히 살아가겠다.” 이렇게 소회(所懷)를 밝히 셨는데 “이 왕국(한국 문단)의 가장 무서운 점은 비판자의 늑대 유전자를 꼬리 치는 애완견(愛玩犬)의 유전자로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에게라도 이의(異議)를 제기해야 하는 문인들을 ‘문단공무원’으로 전락시켜 버린다”는 지적 참으로 통쾌하도록 신선(新鮮/神仙)합니다.
새삼 미국의 문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말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어떤 언어로 무슨 소리를 해도 당신 이상의 말을 할 수 없다. Use what language you will, you can never say anything but what you are.)”
언젠가 연극인 윤문식 씨가 인터뷰에서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연기를 하는 배우의 입장에선 주인공보다 조연자, 영웅이나 성자(聖者)보다 소인배(小人輩)나 죄인(罪人)의 배역이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매력적이라는. 조연들이 잘해줘야 주연이 빛이 난다고 했지요.
제가 젊은 날 본 미국 음악 영화 ‘남태평양(South Pacific, 1958)’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젊은 혈기와 의협심(義俠心)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동네 어른 ‘골목대장’을 살해하고 피신해 남태평양 섬에 정착한 프랑스인이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 측을 위한 첩보활동에 협조해 달라는 미군 장교들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묻는 말입니다. “무엇에 반대하는 줄은 알지만 무엇을 위해 당신들은 싸우는가?”
우리 옛말에 같은 이슬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지만 매미가 먹으면 노래가 되고 벌이 먹으면 꿀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비행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pery 1900-1944)의 ‘어린 왕자’가 제 별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사막의 독사 도움이 필요하지 않던가요.
제가 인생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거듭 깨닫고 확인해 오고 있는 사실은 세상에 버릴 것이 없고 모두 다 쓸 데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편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벌 받는 죄인을 보면서 옛날 영국의 어느 판사가 ‘신(神)의 은총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바로 저 죄인이었을 텐데. But for the grace of God, there go I.)’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현대 교육심리학자들의 공론(公論)이 한 어린아이의 성격과 인격 형성이 일곱 살, 아니 그보다도 일찍 다섯 살이면 거의 끝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세 살 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거의 모든 것이 어린아이의 선택이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말 아닙니까.
독수리가 달팽이 보고 너도 나처럼 하늘 높이 빨리 좀 날아보지 못하고 왜 낮고 낮은 땅에서 그토록 느리게 겨우 가까스로 기어 움직이느냐고 비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누가 독수리의 삶이 달팽이의 삶보다 낫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독수리는 독수리로 달팽이는 달팽이로 살 뿐인데요.
폐일언(蔽一言)하고 우리 모두 하나같이 ‘무지코’임을 자각해 보자는 뜻으로 망언다사(妄言多謝)이옵니다.
이태상 드림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 -)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인 최고 경영자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미래 커뮤니케이션 유형으로 텔레파시(telepathy)를 꼽았다.
“조만간 기술을 이용해 내 생각 모두를 상대방에게 직접 보낼 수 있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여러분이 뭔가 생각하면 여러분의 친구들이 즉각 이를 알게 되는 것”이라고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문답 형식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마크 저커버그는 밝혔다.
2014년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위해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열어 왔는데 이날 행사에는 영국의 세계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과 할리우드 배우 출신 전(前)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놀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1947 - ), 허핑톤 포스트 (Huffington Post) 공동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톤(Arianna Huffington, 1950 - ) 등 유명 인사들이 다수 참여했다.
“중력과 다른 힘들을 통합하는 이론을 알고 싶다”는 호킹은 저커버그에게 “당신도 과학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묻자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가 궁금하다고 저커버그는 대답했다.
그러면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 최근 시작한 뉴스 서비스‘인스턴트 아티클’이 앞으로 뉴스 구독자들의 주요 소비 경로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최근 발표된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 50대 미만 세대는 뉴스를 구독할 때 TV나 신문, 뉴스 사이트, 인터넷 포털보다 페이스북을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컴퓨터 과학자들은 머지않아 그동안 사람이 하던 다른 언어들 사이의 통역이나 번역 서비스를 기계가 더 신속 정확하게 수행하게 되고, 더 나아가 언어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런 날이 오면 저커버그가 언급한 텔레파시로 모든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되면 인류 유사 이래 지금껏 있어 온 ‘말 다르고 맘 다른 온갖 속임수’가 없어지게 되지 않겠는가. 연애하는 남녀 간은 물론 특히 거짓말을 밥 먹듯 해온 정치인들의 입지가 아주 곤란해지리라. 어디 그뿐일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고 인간과 다른 동식물 심지어 광물과도 자연스럽게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전부 자기가 혼자 힘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이 우리는 10분도 숨 쉴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자 내 생명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은 투쟁보다는 상생(相生)으로 갑니다. 그것이 중도연기(中道緣起)죠.”
한국 간화선의 대표 선승인 혜국 스님(금봉선 원장)은 2015년 7월 2일 충북 석종사(釋宗寺) 조실채에서 하안거 중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스님이 쓴 책 ‘신심명(信心銘)’ 출간을 기념한 것이었는데 ‘신심명’은 1,400년 전 선종시대 조사 승찬 대사가 불교철학의 원리를 74구절 짧은 글로 담아낸 선어록(禪語錄)이라고 한다. ‘신심명’을 통해 오늘날 되새길 정신이 무엇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혜국 스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결국 상생입니다. 떠다니는 구름이 만든 비와 대지에서 나오는 음식이 내 몸 만든 것인 줄 알 때 남을 어떻게 내 몸처럼 대접할까를 고민하게 되니, 지구와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원리가 되죠. 그걸 깨치고 나면 구절마다 덩실덩실 춤이 나옵니다.”
그러니 정녕 피아일체(彼我一體)요 물아일체(物我一體)라면 나와 나의 분신심혼(分身心魂)들 사이에, 그리고 소우주(小宇宙)로서의 소아(小我)인 나와 대우주(大宇宙)로서의 대아(大我)인 나 사이에 무슨 말과 글이 필요하리오. 애오라지 깨달음의 느낌이면 족하리오. 이를 우리말로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니 심신상인(心心相印)이라 하고 영어로는 텔레파시(telepathy)라 하는 것이리오.
따라서 저커버그의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100만 배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할 수 있을까’란 궁금증과 의문도 자연(自然)스럽게, 아니 우연(宇然)스럽게 풀리게 되리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모든 코스미안이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과 함께 덩실덩실 춤출 뿐이리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전명희 기자